잊혀져가는 5ㆍ18 광주 민주화 운동
잊혀져가는 5ㆍ18 광주 민주화 운동
  • 정재훈 기자
  • 승인 2007.05.21 15: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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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계승으로 사회문제 대응의 본보기 삼아야

오월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등 가족과 함께 하는 기념일이 많은 가정의 달이다. 특히 기념일이 있는 날에는 가족과 가정에 대해 한 번 더 뒤돌아보고 추억하곤 한다.
이런 5월에 잊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기념일이 있다. 바로 5월 18일 광주 민주화 운동(이하 5ㆍ18이다. 하지만 이런 5ㆍ18은 27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면서 잊혀져만 가고 있다.
지난 18일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고 있느냐”는 물음에 대부분의 학우는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상경대의 한 학우는 “처음에는 몰랐으나 핸드폰에 있는 날짜를 보고 한참 생각하니 5ㆍ18인지 알 수 있었다”며, “5ㆍ18이 예전과 다르게 학생들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점차 잊혀지고 그 의미도 약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2명이 5ㆍ18민주화 운동을 폭동이나 사태로 인식하고 있다는 결과가 발표됐다. 지난 8일 5?8기념재단에 따르면 20세 이상 1천5백명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 5?8을 어떤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하느냐는 질문에, 10.2%가 ‘폭동’, 10.1%는 ‘어쩔 수 없는 사태’라고 답했다고 한다. ‘민주화 운동’이라고 답한 사람이 47.4%로 가장 많았으며, ‘민중항쟁’은 24.8%였다. 심지어 5월 18일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것을 아느냐는 질문에는 66.2%가 ‘모르고 있다’고 답했는가 하면, 5ㆍ18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25.9%가 ‘대체로 잘 모르는 편이다’ 내지 6.2%가 ‘전혀 모르고 있다’고 응답해, 5ㆍ18에 대한 인지도가 매우 낮음을 보여주었다.

사진출처 : 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


● 다시 보는 5ㆍ18

1980년, 12?2 사태 이후 집권한 신 군사정부(이하 신군부)가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로 인해 위기를 맞게 되자 신군부는 전두환, 노태우 등을 중심으로 권력을 찬탈하려 하였다.
이를 눈치 챈 학생운동 세력이 서울에서 움직임을 보였고, 이에 신군부는 즉각 군 병력을 배치하였다. 군 병력에 의한 동요로 학생운동 세력은 점차 후퇴하였고 그 후 신군부는 군사 쿠데타를 단행하여 국회 해산, 대학 휴교, 언론 검열 등을 단행했다.
그 후 대부분의 지역이 침묵을 지키는 가운데 5월 18일 광주지역 학생들이 시위를 시작했다. 이에 신군부는 무자비한 진압을 자행했고, 분노한 시민들이 가세하면서 학생 시위가 시민 항쟁으로 번졌다.
20일에는 운수 노동자들의 차량 시위로 시민과 계엄군이 전면으로 대치하게 되었고, 22일 계엄군의 집단 발포로 다수의 시민이 희생되었다. 이후 시민들이 예비군 무기고를 급습하여 시민군을 조직하고 계엄군을 시 외곽으로 몰아내었다. 당시 시민군이었던 한 생존자에 따르면 총을 들면 무서워야 하지만 당시는 이제 살았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또 그는 당시 언론은 광주를 폭동과 무법천지의 아수라장이라고 표현했으나 평소 이상으로 질서가 유지됐었다고 전했다.
27일 미국의 승인 이후 2만 명의 군부대가 최후의 진압작전을 위해 광주시내에 투입되었고, 시민군은 마지막으로 전남도청 사수투쟁을 전개했으나 물리적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시민군은 비겁하게 물러나지 않음을 보여 주기 위해 끝까지 항전하였으나 결국 자기나라 군대에게 포로가 되는 신세가 되었고 그렇게 광주는 잊혀졌다.
그 후 역사적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이 계속 되었고, 그 정신을 계승하는 87년 6월 항쟁이 일어났으며 현재는 국가에서 당시 시민군 참전자에게 국가유공자급의 예우를 하고 있다.


● 27년이 지난 지금, 왜 돌이켜봐야 하는가


경북대에서 지난 14일 ‘열린 다시 쓰는 현대사 - 5ㆍ18’ 강연이 열렸다. 이날 강연에서 5.18구속부상자회 대구경북지부 대표 백현국 씨는 “내 나이의 사람들이 해방을 보는 것이나 여러분들이 5ㆍ18을 보는 것은 비슷할 것이다”라는 말로 현재의 실태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또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부원장이자 ‘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의 저자인 박세길 씨는 “5ㆍ18은 민중운동의 큰 봉우리다. 우리는 이러한 봉우리를 넘어서면서 거대한 전진을 이룩했으며, 이들 중에서도 5.18은 민주화의 획기적인 전환점이었다. 5ㆍ18 없이 현대사를 이야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 씨는 “5ㆍ18은 대한민국 국민의 의식전환의 계기로 군부와 미국에 대한 저항을 표현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져 세계에서 보기 드문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밝혔다.


● 현재 5ㆍ18의 의미


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이후 27년이 지난 지금 5ㆍ18은 어떤 의미이며 어떻게 되새겨야 할까? 박세길 씨는 “지금 한국 역사상 헌법이 가장 오래 유지되고 있고 지금의 헌법은 선출된 엘리트들이 마음대로 정치를 하게 되어 있다. 그 완결판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한미FTA다. 한미FTA는 우리 산업이 미국 자본에 의해 잠식당할지도 모르는 국가적 위기인 것이다. 지금 우리는 자본과 대기업들에 지배당하고 있다. 과거 지배 권력에 당했던 시대와 달리 이제는 국민주권의 시대이다. 마찬가지로 5?8 때와 같이 사회에 저항해야 한다”라는 말로 현재시대에 5ㆍ18에 대한 의미와 함께 그 정신을 계승하여 사회문제에 대응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5ㆍ18의 정신이 계승되어 그로부터 7년 후 6월 항쟁이 일어났고 그 후 20년이 지났다. 당시 사회의 주체는 바로 우리 대학생들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대학생들은 사회 현상에 관심을 두지 않고 단지 취업에만 급급한 것이 현실이다. 우리도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사회를 변화시켜야한다. 또한 5ㆍ18을 계승하여 전 국민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투쟁의 물결을 이루었던 내달의 6월 항쟁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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