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자의 아트무비] <안개 속의 풍경>; 시적 사유와 삶의 비극에 대하여
[하기자의 아트무비] <안개 속의 풍경>; 시적 사유와 삶의 비극에 대하여
  • 하지은 기자
  • 승인 2016.05.23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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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안개 속의 풍경> 포스터

 영화 <안개 속의 풍경>은 그리스의 테오 앙겔로풀로스(Theo Angelopoulos)가 연출했다.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두 남매의 여정을 그린 로드 무비이다. 낙엽처럼 여행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시적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이 영화에 대해 윤종욱 교수(독어독문학과)와 얘기해봤다.

 영화에서는 멈춰있는 것들 가운데 동적인 것의 배치를 반복하고 있다. 소란스러운 기차 역사에, 흰색 몸에 빨간 볏과 수염을 가진 닭이 천천히 들어오자 모두 그 닭을 조용히 주시하는 신비한 순간이 있다. 움직이는 것의 행위에 집중하게 되는 이런 장면 구성을 어떻게 봤는가?
 우리 인간은 목적지향적인 행동에 익숙해지기 쉽다. 그렇지만 아무 목적 없이 잠시 멈춰 있어도 되는 순간은 우리에게 숨 쉴 공간을 제공한다. 이 순간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볼라는 바닷가에서 유랑극단의 청년 오레스테스와 춤을 추기 위해 손을 맞잡고 눈을 마주친 순간, ‘사랑’이라는 감정을 처음 느끼게 된다. 시대, 사회의 어둡고 중요한 부분을 보여주는 영화의 구성 속에 소녀의 ‘첫사랑’은 어떤 의미일까?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여러 이야기 중 사랑에 대한 부분은 단연 빛나는 것 같다.
 영화는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자연 파괴, 기계 문명의 폐해, 고전 예술의 쇠퇴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주제는 유년기와 작별하고 미지의 미래를 향해 출발하는 인간의 성장과정이라고 본다. 유년기 이후의 청년기에는 무엇보다 사랑에 기반한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안정적 관계는 현실 속에서 실현되어야하기 때문에 첫사랑이 이뤄지지 않는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태초에 어둠이 있었고, 어둠에서 빛이 생겨났다” 이 말이 영화의 처음과 끝을 장식한다. 무슨 의미일까? 창세기와 관련된 것 같지만, 문장 그 자체로 해석하면, 어둠에서 빛이 생겼다는 것은 무언가 희망적인 것 같은데 이 영화를 다 보고나니 더 비극적이었다.
 영화의 초반부에 볼라는 알렉산더에게 어둠에서 빛이 생기고, 거기에서 세상의 만물이 생겨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엄마가 방문을 열자 한 줄기 빛이 들어오고 문은 곧 다시 닫힌다. 아이들은 보호자가 허락하는 정도의 빛에 만족할 수 없다. 이제 이들은 스스로 길을 떠난다. 안개 속 같이 희미한 풍경을 지나서 결국 아이들은 막연히 꿈꾸던 장소에 도착한다. 눈부시게 환한 곳은 아니지만 안개는 차츰 사라진다. 그렇게 영화는 끝나지만 관객은 영화 이후의 삶에 대해 조금의 희망은 가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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