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칼럼리스트] 달의 안부
[나도 칼럼리스트] 달의 안부
  • 김현정(국어국문학 박사과정)
  • 승인 2015.10.12 2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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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추석엔 유독 밝고 큰 ‘슈퍼문’이 뜰 예정이라고 했다. 달이 크다는 건 그만큼 지구와 달의 거리가 가까워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슈퍼문이 떠오르던 추석의 밤을 나는 몇 시간째 정체된 도로위에서 보내고 있었다. 어느 주택가 앞 횡단보도에서 신호에 걸려 차가 멈춰 섰을 때, 거의 반쯤 감겨있던 내 눈에 일곱 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하나가 들어왔다. 아이는 파자마를 입고 골목에서 뛰어나왔는데, 그 뒤를 따라 그보다 어려보이는 아이들 서넛이 따라 나왔다. 도로가에 멈춰선 남자아이는 갑자기 양손을 동그랗게 맞대어 모으고는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눈을 감았다. 뒤따라 나온 아이들도 나란히 옆에 서더니 힐끔거리며 형을 따라했다. “어, 쟤네들 소원비나 보네.”하는 옆 사람의 말을 듣고서야 나는 아이들이 ‘달님’에게 기도하고 있단 걸 알아차렸다. 건물에 가려 달이 보이지 않아서 도로가까지 뛰어나온 모양이었다. 추석날 보름달을 올려다보며 소원을 빌 수 있단 사실을, 담아두었던 마음을 은근한 달빛에 내비춰 보일 수 있다는 걸 난 까맣게 잊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베란다에 나가 조금 전 그들이 올려다보았을 달을 쳐다보았다. 듣던 대로 오늘은 달이 참 크구나 생각했지만, 소원을 빌진 않았다. 그렇지만 본 적 없는 신을 향해 기도하는 일이 어쩐지 쓸쓸하게 느껴질 때, 일 년에 한두 번쯤 우리가 달을 보며 손을 모을 수 있다는 사실이 괜히 다행스러웠다.

 루카치의 말처럼 별을 보며 걸어 갈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복되던가. 그 복된 시대는 아마도 지나가 버린 것 같다. 달이나 별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거나 그것들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일은 어쩐지 촌스럽고 쑥스러워졌다. 시인들마저도 더 이상 윤동주처럼 달과 별에 어머니를 그리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가사, “꽉 잡은 밤하늘을 돌봐야 해. 늘 검은 천장으로 여겼더니, 달은 열심히 떠올라 보름달을 보여주네.”를 듣자마자 난 활짝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대목 때문에 혁오 밴드의 노래 가운데 ‘큰새’를 가장 많이 들었다. 답답한 검은 천장이 무한한 밤하늘이라는 걸 알려주는 건, 오늘도 그 자리에 못 박혀 있는 저 달 때문이리라.

 언젠가 사막에 누워 밤하늘을 올려다 본 적이 있다. 그때의 나는 인도의 여러 도시들을 옮겨 다니며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기차 안에서 잠을 자고, 저리도록 차가운 타지마할의 대리석 위를 맨발로 걸어 다니기도 했다. 마지막 여행지인 자이살메르 사막에서 모닥불을 피워두고, 간이침대에 누웠을 때 내 얼굴에 곧 닿을 듯이 가깝던 별과 달, 그 하늘은 설명할 수도 그리고 잊을 수도 없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에서 온 요아브는 곧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나의 말에 자꾸만 그 이유를 되물었다. 방학이 끝나간다고, 그러니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나의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네가 왜 그곳에 다시 돌아가야만 하며, 한 달이나 혹은 일 년 후에 돌아간다고 해도 큰 일이 나는 건 아니지 않느냐는 그의 다그침에 난 어떤 말도 덧붙일 수가 없었다. 그때 나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야 할 이유조차 모른 채 휩쓸리듯 살아온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과 기약 없는 그의 여행에 대한 부러움 사이를 오갔던 것 같다. 

 돌아와서 나는 꼬박 며칠을 앓았는데, 어느 밤엔가는 이유 없이 달려 나와 운동장을 뛰기 시작했다. 열이 오르고 땀이 흐를 때까지, 더 이상 뛸 수 없을 만큼 지쳐서야 무릎을 짚고 멈춰 섰다. 숨을 가쁘게 내쉬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어라, 그때 내가 사막에 누워서 보던 그 달이 거기에 있었다. 그렇지, 내가 어떤 곳에 있더라도 저 달은 같은 달이구나. 그 당연한 걸 깨달으면서 난 왜 그렇게 위로를 받았는지 모르겠다. 그 뒤로도 가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달을 올려다보면서 한 번 더 천천히 그냥 씽긋 웃게 되는 것이었다. 아, 저기 있네. 나의 하루와 상관없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하고 오늘도 저기 있구나. 그걸 고맙다고 해야 할지 어째야할지 모르겠지만 너의 그 둥글고 넉넉한 생김새가, 너무 빛나지 않아 오래도록 바라 볼 수 있는 네 얼굴이 난 좋더라. 그리고 요아브, 난 아직도 학교를 다니느라 인도로 돌아가지 못했고, 이렇게 학교신문에 칼럼까지 쓰고 있다. 상형문자와 같은 히브리어로 쓰인 네가 읽던 책의 책장은 몇 장 더 넘어가긴 했을까. 내가 이곳에서 무엇을 더 할 수 있을 진 여전히 모르지만, 매일 같은 자리를 지키는 데에도 떠나는 것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단 걸 배우고야 말았지. 무슨 일이 있어도 기어코 오늘도 뜨고야 마는 저 고집스러운 달을 보면서 말이야. 달에 모종의 신비가 있다면, 아마 그 자리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긴 밤의 서성거림을 위로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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