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학기 어느 날이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를 피해 중앙도서관에 들어서는데, 놀라운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수많은 학생이 의자에 앉거나, 의자 팔걸이에 걸터앉거나, 혹은 선 채로 바깥 비 구경을 하고 있었다. 문을 밀친 나는 이 의도치 않은 환대에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급히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밖의 빗줄기가 세차졌다. 학생들의 얼굴은 푸릇푸릇 싱그럽고, 비 따위는 상관없다는 투였다. 타과 학생들은 어떻게 생겼는지, 우리 학교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흥분된 표정이었다. 소나기가 만들어낸 일시적 파라다이스, 하나의 젊음의 연대가 중앙도서관 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지난 코로나 기간 우리는 얼마나 외로웠던가. 사회적 거리두기는 팬데믹이 끝나고도 우리들 사이에 커다란 심리적 맨홀을 파놓았다. 그동안 학생들은 서로의 등을 보며 강의실에 앉아 있었고, 혼밥을 하고, 혼자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연못을 파두면 개구리가 모여들듯이 중앙도서관에 의자가 놓임으로써 뒷골목을 헤매던 이들이 가까이서 서로의 존재를, 숨결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우리에게 결여돼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 조금 느껴져 왔다. 우리 모두에게 학교생활에서 뭔가 광장적인 요소가 더 필요했었던 것일까.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원초적 욕망에 속한다.
학생들이 쉽게 구성원들과 접촉할 수 있는 또 다른 장소로 식당이 있다. 대학의 음식은 학생들의 젊은 뇌와 신체를 자극하여, 캠퍼스를 다이내믹하게 살아 움직이도록 만들 수 있는 궁극의 에너지원이다. 그리고 대학의 구내식당은 학생들이 따뜻한 ‘공공성’을 배울 수 있는 일상의 공간이자, 학과별 경계를 넘어선 사귐과 토론의 장소이기도 하다. 지금 학교에는 자기 역할을 기다리며 비어 있는 식당들이 더러 있다. 이와 같은 유휴공간들을 제대로 살려낼 필요가 있다. 굳이 실내공간이 아니더라도 하버드 교정에도 있는 시간제 푸드 트럭 같은 것도 고려해 볼 수는 있지 않나. 맛있고, 영양가 있고, 값싼 음식이 존재할 수 있는 곳이, 대학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디겠는가. 대학이 여전히 이 시대의 헤테로토피아가 아니라면, 우리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처음으로 대학에서 ‘천 원의 아침밥’ 제도가 시행됐을 때, 뭔가 발설하지 못했던 내면의 꿈이 현실로 나타난 것만 같아 가슴이 두근거렸었다. 한국이 먹는 문제를 해결하게 된 시점은 가파르게 선진국 대열에 들어설 가능성이 열린 시점이기도 했다. 기본적인 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아카데믹하고, 미래지향적인 대학의 이상도 모래 위에 지은 성이 될 수 있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성장이 가능하다. 세계 역사를 보더라도, 누군가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을 누군가는 가장 단순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실현의 첫발을 내디딤으로써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오지 않았던가.
영남대가 세계를 향해 *퀀텀 점프를 하기 위해서 먼저 광장으로서의 식당에 대한 상상력부터 발휘해 보는 것은 어떨까. 특별히 영남대는 세계 그 어느 대학보다 풍부한 캠퍼스 음식으로 유명해진다면 어떨까. K-food의 하위 범주로 YU C - food(Campus food)를 구상해 보는 미니멀리스트들이 앞으로 곳곳에서 출현해 주기를, 고대해 본다.
*퀀텀 점프: 낮은 에너지 준위에 잇는 양자가 높은 에너지 준위로 올라갈 때, 계단 모양으로 뛰어오르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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