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시는 가족돌봄청년 실태조사를 통해 약 900명의 가족돌봄청년을 확인했다. 가족돌봄청년에 대한 관심이 커짐에 따라 이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이에 본지에서는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돌봄청년이 겪고 있는 어려움과 지원에 관해 알아보고자 한다.
가족돌봄청년의 새로운 삶을 위해
‘가족돌봄청년’이란 자신도 사회에 발을 디디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돌봐야 하는 청년을 말한다. 최근 가족의 질병, 부상 등 다양한 원인으로 어린 나이에 가족을 돌보는 청년들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가족돌봄청년의 현황 및 지원 체계의 발자취를 좇아봤다.
가족돌봄청년의 보이지 않는 장벽=지난 2021년, 대구의 20대 가족돌봄청년(영 케어러)이 생활고로 아버지를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사건을 통해 가족돌봄청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가족돌봄청년들이 겪는 어려움과 상황의 심각성은 쉽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가족돌봄청년의 어려움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손꼽았다. 실제 서울시 가족돌봄청년 실태조사 결과, 가족돌봄청년이 겪는 어려움 중 경제적 어려움이 48.8%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용교 광주대 교수(사회복지학부)는 “가족돌봄청년들은 돌봄 대상이 되는 가족의 치료비 및 주거비로 인해 경제적인 문제에 처하게 된다”고 말했다.
심리적 어려움 역시 가족돌봄청년들이 겪고 있는 문제점으로 제시된다. 지난해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가족돌봄청년이 삶에 느끼는 불만족도는 일반 청년 대비 2배 이상, 우울감은 7배 이상 높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가족돌봄청년이 시간적·심리적 여유가 없다는 점이 배경이 됐다고 주장했다. 해당 주장에 따르면, 가족돌봄청년은 돌봄의 주체로 활동하고 있어 타인과의 유대관계를 맺기 위한 시간적·심리적 여유가 부족하다. 이용교 교수는 “타인과 유대관계를 맺을 시간적·심리적 여유가 없어짐에 따라 가족돌봄청년들의 우울감이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대구·경북의 가족돌봄청년들을 책임집니다=일부 기관에서는 가족돌봄청년에 대한 지원이 이뤄져야 함을 인지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다. 실제 대구시 월성종합사회복지관에서는 청년베이스캠프 운영을 통해 ▲결연금 지원 ▲보건의료 서비스와 같은 복지 ▲전문심리상담 등의 서비스를 지원한다. 이에 김희숙 월성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는 “해당 캠프의 운영을 통해 가족돌봄청년들이 심리적 지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했다.
더불어 기관과 지자체가 협약해 가족돌봄청년을 지원하고자 하는 모습도 보인다. 지난 3일 경산 정신건강복지센터와 경북휴먼복지&상담연구소 청년 사업단은 가족돌봄청년, 돌봄 필요 청년 및 중장년층의 정신건강 증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경북휴먼복지&상담연구소에서는 이를 통해 가족돌봄청년들의 어려움에 대한 세부적인 분석이 이뤄진다. 정소희 대구대 휴먼복지&상담연구소 소장은 “가족돌봄청년들이 어려움 속에서 마음을 털어놓을 기회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또한 지난해 11월 대구시와 밀알복지재단은 ‘가족돌봄 청소년·청년 등 위기가구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지난 1월부터 가족돌봄청년들은 1인당 의료·주거비로 최대 500만 원 이내의 지원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 강은혜 밀알복지재단 대구경북지부 대리는 “이 협약을 통해 가족돌봄청년들이 장기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했다.
구체적인 지원 기준이 필요해요!=정계 역시 가족돌봄청년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1일,「가족돌봄아동·청소년·청년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 대표 발의됐다. 해당 법률안은 ▲가족돌봄아동·청소년·청년에 대한 국가와 지자체의 책무 규정 ▲가족돌봄에 필요한 수당 및 서비스 지원 ▲5년 단위의 지원 계획 수립 의무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34세 이전부터 돌봄을 시작한 경우 현재 청년이 아니더라도 지원 혜택을 받으므로 지원의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다. 소병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해당 법률안을 통해 가족돌봄아동·청소년·청년에게 종합적·체계적인 지원이 가능해 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가족돌봄청년에 대한 구체적 지원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음을 지적했다. 현재 보건복지부에서는 가족돌봄청년의 연령 기준을 13~34세로 권고하고 있으나, 각 지자체에서는 ▲9~24세 ▲9~34세 ▲9~39세 ▲19~34세 등 다양한 연령 기준을 채택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지자체마다 다른 연령 기준으로 인해 지원이 제한되는 가족돌봄청년이 존재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이세원 강릉원주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가족돌봄청년의 지원 기준이 지방자치단체 조례가 아닌 법령으로 명시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가족돌봄청년에 대한 제도적 지원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사회적 인식 및 공감대 형성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 한국 월드비전에서는 오는 5월 말까지 응원 메시지 작성, SNS 가홍보 이벤트 등의 가족돌봄청년 인식 증진 캠페인을 진행한다. 이에 대해 김보영 교수(휴먼서비스학과)는 “인식 증진을 위한 노력이 가족돌봄청년의 고립성을 해소하고 제도적 지원 환경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공간, 경북휴먼복지&상담연구소
가족돌봄청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하며 가족돌봄청년을 지원하는 단체들이 등장했다. 실제 대구·경북 지역의 경우, 경북휴먼복지&상담연구소가 개설돼 가족돌봄청년을 심리·정서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정소희 경북휴먼복지&상담연구소장을 만나 가족돌봄청년에 대한 지원 현황을 들어봤다.
경북휴먼복지&상담연구소에 대한 소개 부탁드려요.
경북휴먼복지&상담연구소는 대구대 휴먼복지&상담연구소가 ‘2024년도 청년사회서비스사업단’ 사업에 선정돼 개설된 기관이에요. 가족돌봄청년, 돌봄 필요 청·중장년층의 심리상담을 주 업무로 하고 있죠.
경북휴먼복지&상담연구소는 가족돌봄청년의 상담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상담 서비스는 어떻게 진행되나요?
가족돌봄청년 상담 서비스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진행돼요. 상담을 받고자 하는 이는 본인 부담금을 지불하고 행정복지센터에서 상담받을 수 있죠. 이후 서비스 대상자임이 확정되면 센터 소속 상담사들과의 심리상담이 진행됩니다. 하지만 현재는 상담자 등록 초기 단계에 있어 이용률은 낮은 상황이에요.
상담 서비스의 기대효과는 무엇인가요?
가족돌봄청년은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기가 힘들 수 있어요. 상담 서비스는 이들을 대상으로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죠. 또, 상담사가 일종의 멘토 역할을 수행해 가족돌봄청년들의 심리적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줄 거라 생각하고 있어요.
기억에 남는 가족돌봄청년 내담자의 사례는 무엇인가요?
한 내담자가 자신이 관심 있는 여학생의 주변인들이 본인을 싫어한다며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어요. 자신의 사소한 고민을 털어놓으며 속마음을 나누기 시작하는 것이 새로운 변화라고 생각해 이 사례가 특히 기억에 남네요.
보건복지부가 주최한 2024년 청년사회서비스사업단 발대식에 참여해 가족돌봄청년에 대한 심리 지원 등의 계획을 밝히셨습니다. 구체적인 심리 지원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먼저 가족돌봄청년들에 대한 데이터 축적이 우선이에요. 데이터가 축적되면 이에 근거한 심리검사와 사전면담을 거치죠. 이후 대구대, 경산시청년지식놀이터 등의 장소에서 사업단 소속의 심리 상담사와 주 1회씩 인터뷰를 진행해요. 종료 후에는 사후 점검을 진행해 제공된 서비스가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 확인합니다.
가족돌봄청년의 심리적 건강을 위해 추가로 필요한 지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가족돌봄청년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주거비 부담 등 가족돌봄청년들의 어려움을 사회 서비스로 지원하고, 일자리를 창출해 내려는 노력이 필요하죠.
가족돌봄청년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어요!
가족돌봄청년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본지에서는 박소현 톡 에듀 대표를 만나, 자신의 가족돌봄청년으로서의 삶을 들어봤다.
돌봄 경험이 꿈을 타고 내려옵니다=저는 어린 시절 할머니께서 치매에 걸렸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어요. 할머니가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는 정도에 이르러서야 상황을 알게 됐죠. 이러한 상황 속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경제적인 부분을 담당하게 되며, 당시 24살이었던 제가 할머니를 돌보는 가족돌봄청년이 됐어요.
할머니를 돌보던 시기, 제 일과는 돌봄으로 시작해 돌봄으로 끝났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할머니께서 제가 없으면 불안해하셨기 때문에 돌봄 시간은 더욱 길어졌죠. 20대의 나이에 누군가를 돌본 경험이 없어서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판단하기가 어려웠어요.
이때의 경험에 빗대어 보면, 많은 가족돌봄청년이 책임감으로 인해 학업과 진로에 대한 어려움을 겪을 거라 생각해요. 이러한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가족돌봄청년 지원 제도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고 접근성을 향상하는 것이 중요하죠. 이를 위해 원스톱 온라인 채팅 서비스 등이 개발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족돌봄청년이 다양한 문제에 대한 맞춤형 지원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또한 우리 사회에는 숨어 지내는 가족돌봄청년이 많다는 점을 유의해야 해요. ▲의료기관 ▲지역사회 단체 ▲학교 등과 협력해 가족돌봄청년을 식별하고 지원을 할 수 있는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죠. 더불어 그들에게 더욱 많은 관심을 두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함께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해요. 우리 학생들도 가족돌봄청년에 관심을 갖고 이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주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