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가 본 지상특별전시회 ;화상석(畵像石)과 무씨묘지(武氏墓地)
미리 가 본 지상특별전시회 ;화상석(畵像石)과 무씨묘지(武氏墓地)
  • 편집국
  • 승인 2007.06.21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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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에 새겨진 유토피아 -漢代武氏祠畵像石-

영남대학교 박물관(관장 이청규)에서는 4월 29일부터 6월 4일까지 한나라 화상석에 대한 특별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이 전시회는 화상석을 전부 탁본하고, 그 내용을 세세히 해석해 내어 한나라때 돌에 새긴 그림들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를 돕는다. 또한 모형 사당까지 지어 현장을 체험하게 한다. 전시의 주류를 이루는 산동성 가상현에 있는 무씨사 화상석(武氏祠 畵像石)은 김재원 박사에 의해 단군신화의 기원을 밝히는 그림이라고 하여 주목을 받은 적도 있다. 김원룡 박사는 이를 부인하기도 했다. 본 대학 박물관에서는 김용성 학예연구원을 중심으로 5년간 이 전시회를 준비해 왔다.

무영사 감실 후벽-사주수제도(祠主受祭圖)

화상석은 중국 한나라 때의 무덤(墳墓), 무덤 앞의 사당(祠堂), 무덤의 문인 궐(闕), 신을 모시는 신묘(神廟)의 궐(闕)의 축조에 사용된 네모진 돌판(石板)의 겉면에 일정한 이야기를 그림으로 새겨 표현해 놓은 것을 말한다. 한대에 전형성을 보이며 유행하였기에 한화상(漢畵像)이라 부른다. 서한후기에 출현하여 동한시대에 가장 유행하였고 일부지역에서는 삼국시대에도 제작되었다.

♠서한초 무덤널 장식 그림에서 유래
무개명사 앞면 서쪽 천장-천벌도(天罰圖)
화상석은 서한조기 널을 장식한 옷감에 그림을 그린 백화(帛畵)와 널 자체에 칠을 해서 그림을 그린 칠관화(漆棺畵)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한대 유학(儒學) 사조의 영향으로 장례를 풍성하게 치르는 풍습(厚葬風習)이 성행하자 기왕에 옷감과 널에 그려지던 그림이 돌판으로 옮겨져 장식되기 시작하였고, 서한후기에 이르러서는 무덤 주인이 살았을 때와 죽은 후의 각종 이야기들이 체계를 갖춘 하나의 화상석 셋트를 이루어 무덤 방과 사당내의 벽면과 천장 및 석궐의 겉면에 장식되기에 이르렀다.
그림의 내용은 하늘세계를 묘사한 그림(天上世界畵像), 선인세계를 묘사한 그림(仙人世界畵像), 인간세계를 묘사한 그림(人間世界畵像), 지하세계를 묘사한 그림(地下世界畵像)으로 나누어지는데, 이들은 사당 등에 당시 사람들의 우주관과 세계관에 따라 일정한 규칙성을 보이며 질서있게 배치되었다. 또 특히 인간세계화상은 한나라 때의 사회 및 생활과 관련된 많은 그림이 표현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화상석을 통해 한나라 때의 정신문화로부터 물질문화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면을 파악할 수 있다.
한대의 화상석 가운데 하늘세계를 표현한 화상은 해, 달, 별자리 등을 그린 성신도(星辰圖), 상서로운 물건이나 생물을 묘사한 상서도(祥瑞圖), 뭇신들이 출행하는 제신출정도(諸神出征圖), 하늘에서 벌을 내리는 천벌도(天罰圖), 하늘의 문을 지키는 수호신이 귀신을 쫓는 나신도(儺神圖) 등 하늘의 모습을 그대로 묘사하거나 관념 속의 하늘 즉 하느님(天帝)을 비롯한 뭇신(諸神)들의 세계를 묘사한 것을 말한다.
선인세계를 표현한 화상은 서왕모그림(西王母圖)과 동왕공그림(東王公圖)을 표지로 하는 것을 말하는데, 선인세계는 사람이 죽은 후 선인이 되어 하늘 가까이 곤륜산으로 올라가 영원한 삶을 누린다는 승선사상(昇仙思想)의 보급에 따라 관념화된 것이다. 그림은 서왕모와 동왕공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날개 달린 선인(仙人)들이 좌우에 서서 시중들고, 꼬리가 아홉인 여우(九尾狐), 하나의 몸에 머리가 많이 달린 신비한 짐승인 개명수(開明獸), 세 발 달린 까마귀(三足烏), 두꺼비와 불사지약(不死之藥)을 찧어 만드는 옥토끼 등 곤륜산(崑崙山)의 다양한 선금신수(禪禽神獸)가 배치되는 것이 보통이다.

♠하늘세계, 선인세계, 인간세계, 지하세계를 그려
인간세계를 표현한 화상은 고대의 제왕그림(帝王圖), 공자그림(孔子圖), 역사고사그림(歷史故事圖) 등이 있는데, 역사상의 성현, 충신, 효자, 열녀 등 유교사상에 부합하는 인물과 관련된 고사를 표현한 것과 쌍궐(雙闕)과 누각(樓閣), 그리고 배례하는 장면으로 구성된 사당의 주인 또는 무덤주인과 관련된 제사를 받는 그림(受祭圖), 그리고 후자와 관련된 부엌과 요리의 장면(敍廚圖), 사냥 장면(狩獵圖), 무덤의 나무(樹木圖), 음식을 즐기는 장면(宴飮圖), 음악의 연주와 여러 가지 곡마단의 장면(樂舞百戱圖) 등이 있다. 또 사당 주인이 살았을 때의 사회적 신분 및 지위를 나타내는 수레과 말의 행렬 장면(車騎出行圖), 농사를 짖는 장면(農耕圖), 고기잡이 장면(捕魚圖), 가축을 기르는 장면(牧畜圖), 옷감을 짜는 장면(紡織圖), 쇠를 다루는 장면(冶鐵圖), 수레를 만드는 장면(造車圖), 술을 빚는 장면(釀酒圖), 학생을 가르치는 장면(講學圖) 등의 생업도(生業圖) 또는 생전도(生前圖)가 있다.
지하세계를 표현한 화상은 정작 지하세계 자체를 묘사한 화상은 많지 않은 반면, 무덤주인 또는 사당주인이 제사를 받기 위해 지하세계로부터 현실의 인간세계로 오는 장면이 주로 묘사되었다. 대표적으로 들 수 있는 것이 제사를 받기 위해 지하명계(地下冥界)로부터 인간세계로 오는 수레와 말의 행렬(車騎行列圖), 지하세계와 인간세계 사이에 놓인 다리에서의 싸움 장면(水陸交戰圖) 등이다.
이와 같은 화상이 장식된 사당(祠堂)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무덤 앞에 세운 건축물을 말하는 것으로써, 흔히 묘전사당(墓前祠堂)이라 부른다. 사당은 국가(國家)나 종족(宗族)의 제사공간인 종묘(宗廟)로부터 유래한 것으로써, 중국 상고시대의 “불봉불수(不封不樹, 무덤에 봉토를 올리지 않고 나무를 심어 표시하지 않는다)”로 상징되는 전통적인 묘지와 제사관념이 변화하여 “능방입묘(陵旁立廟, 무덤의 앞에 사당 등 제사용의 건축을 세우는 것)”라는 새로운 체계의 묘지구성과 제사의식이 성립됨으로써 출현하게 되었다. 사당은 목조사당과 석조사당으로 나눌 수 있는데, 목조사당은 현재 남아 있는 것이 없고 석조사당에 사용된 화상석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 중국전국중점국가문물보호단위 지정
한대의 화상석사당과 관련된 것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무씨묘지(武氏墓地)이다. 이 묘지는 산동성(山東省)의 서남부인 가상현(嘉祥縣)의 남쪽 15km에 있는 지방집(紙坊集) 무적산(武翟山)이란 구릉의 북록에 자리하고 있다. 묘지에서는 두 기의 한대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그 주변에서는 사당에 장식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많은 수의 화상석이 발견되었다. 또 한 쌍의 석궐(石闕), 한 쌍의 석사자(石獅子), 무량비(武梁碑), 무개명비(武開明碑), 무반비(武斑碑), 무영비(武榮碑), 무자비(無字碑) 등 5개의 비석이 발견되었는데, 세간에서는 이러한 석조유물 모두를 일괄하여 무가림(武家林)이라 일컬었다. 현재는 무씨석각군(武氏石刻群)이라 불리며 1961년에 전국중점국가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다.
이 무씨묘지에는 원래 네 채의 사당이 세워져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으나, 한대 이후 자연 및 인위적인 파괴가 이루어진데다 화상석이 계속해서 반출되어, 지금은 거기에 남아 있는 화상석에 근거해 세 채의 사당에 대한 복원안이 나와 있다. 복원될 수 있는 세 채의 사당으로는 무량사(武梁祠), 무영사(武榮祠), 무개명사(武開明祠)가 있다.
무량사의 주인 무량(武梁)은 자가 수종(綏宗)으로 장제(章帝) 건초(建初) 3년(78년)에 태어나 환제(桓帝) 원가(元嘉) 원년(151년)에 죽었고, 젊은 시절 “예주종사(豫州從事)”라는 벼슬을 하였다. 사당은 단칸의 맞배지붕식 건축으로 여섯 판의 화상석이 남아 있다. 이 중 두 판은 천장석으로 화면의 마모와 탈락현상이 심하여 구체적인 내용이 분명하지 않다. 나머지 네 개의 판은 화면의 보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편인데, 뒷벽(後壁)을 중심으로 하여 그 좌우의 동벽과 서벽에 배치되었던 것들이다. 화상의 배치는 뒷벽을 기준으로 할 때 위쪽에 역사고사화상(歷史故事畵像)을, 아래쪽 중앙부에 누각(樓閣), 쌍궐(雙闕), 무덤의 나무(樹木), 활로 새 잡기(射獵), 수레와 말(車騎)로 구성된 주인이 제사를 받는 장면의 그림(祠主受祭圖)을 배치하였다. 서벽과 동벽에는 위층 합각부분에 동왕공그림(東王公圖)과 서왕모그림(西王母圖)을 대칭이 되게 배치하였고, 그 아래 최하층을 제외한 전체에 많은 역사고사화상을 배치하였다. 그리고 뒷벽의 아래층을 중심으로 동, 서벽의 가장 아래층에는 수레와 말의 행렬(車騎出行圖)과 부엌과 요리 장면(敍廚圖)을 배치하였다. 이와 같은 무량사 화상에는 한대인의 우주관과 상장관(喪葬觀)이 압축적으로 잘 반영되어 있는데, 화상석과 그림 또한 우주와 세계의 상관관계와 위계에 따라 질서있게 배치하였다.
무영사 감실 후벽-사주수제도(祠主受祭圖)

♠동한시대 지방 귀족집안의 묘지
무영사의 주인 무영(武榮)은 무개명(武開明)의 둘째 아들이자 무량의 조카로서 자는 사화(舍和)이다. 집금오승(執金吾丞)이란 벼슬을 하였고 동한 영제(靈帝) 건녕(建寧) 원년(168년)에 죽었다. 사당의 건축구조는 뒷벽의 아래쪽에 감실(龕室)이 덧 부쳐진 두 칸의 맞배지붕식이고 화상석은 16판이 남아 있다. 그리고 무개명사의 주인 무개명(武開明)은 무영(武榮)의 아버지이고 무량(武梁)의 동생으로 효염(孝廉)으로 천거되어 오군부승(吳郡府丞)이란 벼슬을 역임한 사람이다. 화제(和帝) 영원(永元) 3년(91년)에 태어나 쉰일곱이 되던 해인 환제(桓帝) 건화(建和) 2년(148년)에 죽었다. 사당의 건축구조는 무영사와 같고 16판의 화상석이 남아 있다. 두 사당의 화상 내용은 배치면에서 무량사와 유사하나, 역사고사화상 가운데 공자(孔子) 관련 화상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지하세계에서 올 때 다리에서의 싸움 장면(水陸交戰) 등의 다른 주제도 부가되어 차이를 보인다.
무씨묘지에서 사당 이외에 주목할만한 것으로 쌍궐(雙闕)이 있다. 궐(闕)은 성곽, 궁전, 사묘, 능원 입구의 양측에 석재를 쌓아 패방(牌坊)과 유사한 형태로 세운 것을 말하는데, 문의 역할을 하기에 문궐(門闕)이라고도 한다. 무씨묘지의 쌍궐은 동한 환제(桓帝) 건화(建和) 3년(147년)에 묘지의 신도(神道)를 닦을 때 세운 것으로 기단(基壇), 궐신(闕身), 누신(樓身), 궐지붕(闕頂)으로 구성되었고, 주궐(主闕)에 자궐(子闕)이 붙여진 형식이다. 이 쌍궐에도 화상이 배치되었는데, 사당의 천장에 배치되는 천상세계화상만이 없을 뿐, 여타의 지하세계, 인간세계, 선인세계의 화상들이 위계에 따라 배치되었다.

♠고구려 고분벽화와의 연결자료
정리하면, 무씨묘지는 묘지 전반의 설계 및 석조건축의 구조와 배치면에서 전형적인 동한시대 지방 귀족 집안의 묘지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가운데 사당과 석궐에 배치되어 있는 화상석의 경우 동한사회 전반에 유행하였던 우주관, 세계관, 내세관 등이 상징적으로 잘 압축되어 있다. 따라서 무씨묘지 화상석을 통해 동한 사회로 상징되는 동북아 중심문명의 단면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근 이천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 의미가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화상석의 그림들은 우리나라 고구려의 벽화고분에 나오는 그림과 유사한 것이 많아 앞으로 고구려 벽화고분을 해석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용성 학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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