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화장품, 알고 쓰자

2016-11-28     박정학 교수(자연과학대학 화학생화학부)

 신화 속의 화장품
 큐피드(Cupid)는 여기 저기 사랑의 화살을 쏘고 다니며 사람들로 하여금 사랑에 빠지게 하는 사랑의 신이다. 그런데 큐피드의 아내인 프시케(Psyche)가, 늘 나돌아 다니며 멀어진 남편 큐피드의 마음을 되돌리려고, 위험을 감수하면서 저승의 신 하데스(Hades)의 아내인 페르세포네(Persephone)의 화장품(메이크업) 상자를 훔쳐왔다는 신화는 아이러니하다. 하데스는 제우스(Zeus)와 수확의 여신인 데메테르(Demeter) 사이의 딸인 페르세포네의 아름다움에 반해 그녀를 납치하여 아내로 삼은 것이다. 상자 속의 메이크업이 무엇이기에 페르세포네를 그렇게 아름답게 해주는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페르세포네가 립글로스와 주름제거제를 애용했다는 설이 있다), 그 메이크업으로  큐피드의 사랑을 되찾겠다는 열망에 프시케는 저주가 담긴 상자를 열어 보게 되고 깊은 잠에 빠지게 된다. 다행히도 돌아온 큐피드 앞에서 프시케가 깨어나 함께 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신화처럼 화장품이 인간에게도 사랑을 가져다주는지는 모르지만 현대인은 아름다운 피부와 건강한 머릿결을 가꾸기 위하여 다양한 화장품을 사용하고 있다. 현재 시중에는 말 그대로 수 천 가지의 화장품이 판매되고 있는데 이들 화장품을 제조·판매하는 회사는 혼란스럽고 때로는 거짓일 수도 있는 정보를 내세워 자기 회사의 제품을 광고하면서 소비자를 유혹한다.

 몇 가지의 화장품에 대해 화장품 제조사들이 내세우는, 혼란과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거짓일 수도 있는 정보를 화학에 기반하여 설명함으로써 화장품 사용자들이 자신에게 유용한 화장품을 적정하게 구매하고 올바르게 사용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화장품 제조사의 ‘과장’ 광고
 1. ‘유일 제품’ 주장. 자기 회사 제품만이 특정 효과를 나타내는 ‘유일한’ 제품이라며 ‘우리 OOO 제품만이 당신의 피부가 필요로 하는 포괄적, 맞춤형의 스킨케어를 제공해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새로운 ‘특허’ 등을 제시하지 못하면 과장광고일뿐이며, 대부분의 경우 여타 회사와 ‘동일한’ 기술을 사용하여 제조하며, 카탈로그를 보면 여타 회사와 다를 바 없는 전형적인 클렌저, 토너, 로션 등을 포함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2. (근거자료 제시 없이) ‘월등한 기능’ 주장. ‘종전의 건조, 지성 스킨케어 기능을 훌쩍 넘어 우리 OOO는 혁신적, 맞춤형 접근을 통하여 토털 스킨 건강을 보장한다’ 고 주장하며 어느 회사의 제품보다 자기 제품이 더 우수하다고 광고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실험 자료를 제시하지 않으면 과장일 가능성이 높다.

 3. ‘매직(magic) 성분’ 주장. 예컨대 ‘심해深海의 회춘 광물을 넣어 특별히 제조한 제품’이라는 식의 광고가 있었는데, 화장품 속 여러 성분이 함께 효과를 내는 것이지 한 특정 성분이 마술과 같은 효과를 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 보습제라면 몰라도 광물질이 피부를 회춘시킬 수는 없다.

 ‘유기농’ 재료로 만든 화장품이 더 좋은가?
 최근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영향으로 소비자들은 합성 화학물질로 된 제품은 건강에 해롭다는 인식이 더욱 심화되고, ‘자연’, ‘그린’, ‘무화학물질’, ‘무방부제’, 무첨가’라고 생각하는 유기농 화장품이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화장품에는 ‘유기농’의 기준이 없다. 바디 워시 (body wash)의 경우, 85~90%는 물이며 온갖 종류의 합성세제 중 일부, 향료, 보존제와 색소를 함유하고 있다. 한 제조사가 “90% ‘천연’ 또는 ‘유기’”라고 주장해도 거짓은 아니고 (물은 천연에 존재하므로) 적법하지만 소비자가 생각하는 ‘천연’의 개념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유기농 화장품은 정말 더 좋으며 더 나은 효과를 나타내는가?’ 100% 천연재료로 제조한다고 주장하는 회사 제품은 사실 여타 제품보다 못하거나 별 다를 바 없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얘기이다. 같은 성능의 소위 ‘유기농’ 화장품에 엄청나게 비싼 값을 치를 필요가 과연 있을까? 화장품은 식품이 아니라는 점과 ‘유기농 재료’ 화장품이 효과가 더 좋다는 것을 증명한 연구결과는 현재까지 발표되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화장품 사용에 관한 걱정
 화장품은 여러 가지 화학물질로 만들어진다. 화학물질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심화되다 보니, 남성에 비해 화장품을 더 자주 사용하는 여성의 경우 화장품 속의 화학물질로 ‘중독’될 가능성에 대해 걱정할 수 있다. 어느 잡지에 천연(유기농) 화장품 제조회사의 주장 (근거자료 없는 진술)을 인용하여, ‘화장품 사용으로 여성은 년 평균 약 2 킬로그램의 화학물질을 흡수한다’는 기사가 난 적이 있었다. 피부가 과연 (스펀지처럼) 화장품의 화학물질을 흡수하는가? 그렇지 않다. 사실 피부는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화학물질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는 방어벽이다. 법으로 허용된 화장품 재료는 피부 깊이 침투하지 않으므로 혈액으로의 유입은 (거의) 없다. 이는 대부분 천연(유기농) 화장품 제조회사의 과대 ‘주장’일 뿐이다.  단, 선크림의 경우 구성 성분인 벤조페논-3, 그리고 니코틴, 카페인은 피부를 통해 혈액으로 유입될 수 있다. 선크림의 경우 장시간 사용을 피하고 사용 후에는 깨끗이 씻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피부 트러블을 일으키는 화학 성분
 사람에 따라 화학 성분은 피부에 일시적으로 발진, 홍반, 가려움 등의 트러블을 일으킬 수 있는데 미국 메이요 클리닉 (Mayo Clinic)이 ‘패치(patch)’ 테스트를 통하여 발표한 톱 10 성분 (화학물질 이름; 함유 제품)은 다음과 같다: (1)니켈(황산니켈 육수화물; 목걸이 등 장신구나 옷), (2)금(티오황산소듐 금; 목걸이 등 장신구), (3)염화코발트(머리 염색약, 발한 억제제 등), (4)황산 네오마이신 (응급처치 약품의 항생제, 화장품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음), (5)바시트라신(항생제), (6)티머로살(항진균제)와 백신에 든 수은 화합물), (7)페루 발삼(마이록실론 페레이라; 나무에서 얻는 천연 향료), (8)향료 믹스(일부 향료성분은 알레르기 유발), (9)포름알데히드(독성이 큰 보존제), (10)콰터늄 15(화장품 용 보존제. 포름알데히드 방출).

 파라벤
 파라벤(parabens)은 최근 20년간 거의 모든 화장품에 첨가된 ‘보존제’로, 미생물의 생장을 억제하여 화장품을 오래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발암물질로 의심된다는 글이 엄청나게 많이 떠오른다. 그러나 미 국립보건원(NIH)과 국립 암연구소(NCI)의 연구에 따르면 현재까지 파라벤을 함유한 겨드랑이용 발한억제제나 탈취제의 사용과 유방암 발병 사이에 확정적인 관계가 있다는 결론에는 이르지 못하였다고 한다.

 파라벤을 걱정하게 된 계기는 영국 리딩대학교 필립파 다버(Philippa Darbre) 교수가 2004년 응용독성학 저널에 발표한 연구결과에서 비롯되었는데 (Journal of Applied Toxicology, Vol. 24, pp. 5-13, 2004), 파라벤 함유 발한억제제/탈취제를 사용한 20명의 유방암 환자의 유방조직에서 파라벤이 검출되었으며, 발한억제제/탈취제의 겨드랑이 도포 시 유방암 유발가능성이 의심은 되나, 유방암 발병 기전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며, 파라벤-유방암 발병 사이의 상관관계가 확실히 있다는 결정적 증거는 없다는 것이다. 2005-2008년에 이루어진 40명의 유방암환자를 대상으로 한 필립파 다버 교수의 후속 연구에서도, 파라벤 함유 발한억제제/탈취제를 사용하지 않은 유방암 환자에 비해 이를 사용한 유방암환자의 유방조직에서 더 많은 양의 파라벤이 검출되기는 하였지만, 파라벤과 유방암 발병 사이에 관계가 있다는 증거는 여전히 없다고 발표하였다.

 많은 화장품 회사들이 자몽씨 추출물, 페녹시에탄올, 소르빈산칼륨, 소르빈산, 토코페롤,  비타민 A, 비타민 C를 대체 보존제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모두 파라벤에 비해 보존력이 약하며, DMDM 하이단토인(포름알데히드 방출)과 같은 다른 보존제는 안전에 더 문제가 있다. 다만 건강을 위하여 파라벤 함유 제품을 지나치게 자주 장시간 사용하는 것은 좋지 않다.

 임신과 화장품
 화장품의 성분 중에는 임신 중 태아의 건강을 위하여 피해야 할 성분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①레틴-A(‘이소트레티노인’. 처방이 필요한 여드름치료제; 태아에 심장문제 유발 가능성), ②녹시딜(‘로게인’): 탈모 치료제; 선천성 기형 유발 가능성), ③살리실산 함유 제품(피부박리제; 색소침착, 아주 낮지만 기형 유발 가능성, 과용하면 임신 중이 아니라도 위험), ④플루코나졸(항진균제; 기형 유발 가능성).

 자외선차단제와 무일광 선탠 제제는 태아에 문제를 일으킨다는 보고가 없으며, 오히려 지나친 자외선은 산모에 엽산 결핍을 초래해 태아에 ‘척추갈림증’과 같은 신경관결함을 일으킬 수 있는데 자외선차단제는 이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화장품 라벨의 성분 목록
 어떤 화장품을 구매할까 저울질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화장품의 성분을 수록한 라벨(label)을 잘 읽어 보는 것이다. 성분 라벨을 읽는 법을 알아보자. 함량이 1% 이상인 성분은 반드시 ‘함량 순’에 따라 성분을 표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1% 미만인 성분은 표시 순서가 따로 없으며, 보존제, 향료, 색소는 보통 맨 끝에 기재한다. 다음은 전형적인 피부보습제의 라벨이다.

 성분: 물, 글리세린, 세티아릴 알코올, 바셀린, 미네랄 오일, 세티아레스 20, 디메티콘, 디로릴산 글리세릴, 에리스룰로스, 퍼시 그라티시마 열매 추출물, 아베나 사티바 곡물 추출물, 북아메리카 소관목 씨앗 추출물, 금잔화 추출물, 올리브 오일, 토코페롤, 시클로펜타실록산, 스테아린산, 아크릴레이트/C10, 알킬아크릴레이트 교차중합체, 메틸파라벤, 프로필파라벤, 구연산, EDTA, 수산화나트륨, DMDM 하이단토인, BHT, 향료, 카라멜, 이산화티탄, 운모, 디하이드록시아세톤

 (1)첫째 성분은 물이며 이 피부보습제의 약 80%는 물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로션의 약 80%는 물이다. (2)보습제인 글리세린이 그 다음으로 함량이 많은 성분으로 약 5%이다. 세티아릴 알코올, 바셀린, 미네랄 오일도 보습제이며 대략 1-3%를 차지한다. (3)세티아레스 20은 유화제(비온성계면활성제)인데, 유화제는 오일과 물이 서로 잘 섞이게 하여, 오래 두어도 물 층과 오일 층으로 갈라지지 않게 해준다. (4)디메티콘(폴리디메틸실록산)은 윤활제이며, (5)디로릴산 글리세릴은 또 다른 유화제이다. (6)에리스룰로스는 무일광 선탠제로 표피의 죽은 피부세포와 반응하여 자연스런 갈색 물질이 생기도록 해준다. (7)그 다음, 퍼시 그라티시마 열매 (아보카도) 추출물 같은 ‘천연’ 느낌이 나는 이름의 성분들은 모두 1% 미만으로 들어 있는데, 제조회사는 이렇게 아주 작은 함량의 성분을 크게 내세우며 자기 회사 제품을 광고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천연 성분은 비싸고 함량이 워낙 적기 때문에 효능이 낮은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제조회사는 이런 ‘특징 있는’ 미량 성분을 많이 나열하며 자기 제품이 타사 제품과 다르다고 광고하는데, 사실은 함량이 ‘1% 이상인 성분들’이 그 제품의 실제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렇게 성분 라벨이 나타내는 정보를 제대로 알면 다음에 화장품을 구매할 때 이를 활용해볼 수 있다. 3만 원대인 제법 고가의 컨디셔너와 5,000원 정도의 컨디셔너의 성분 라벨을 살펴보면 성분의 리스트가 아주 유사함에 놀랄 것이다. 들어 있는 성분 화합물이 같다면 기능도 비슷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