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훈 인터뷰

2010-12-03     강보람 준기자

러브로드를 러브길이라고 부르며 빽빽한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러브길 한 번 가보면 안 되나’하고 말하는 그의 눈빛은 사탕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의 눈빛이었다. 대기 중이던 자동차도 마다하고 트렌치코트를 휘날리며 우리 학교 캠퍼스를 구경하던 작가는 거울못을 보곤 아주 예쁜 캠퍼스를 가졌다며 밝게 웃었다. 오랜만에 대학교에 와서 대학생들과 아름다운 캠퍼스를 보니 너무 좋다는 김훈, 그는 아직 숲에 있었다.

 

 


◆신간 「내 젊은 날의 숲」=지난달 9일에 나온 따끈따끈한 신간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이번 책의 제목은 매우 낭만적인 사랑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이 소설에 낭만적인 사랑은 없다. 죽음, 전쟁, 인간의 야만, 비굴, 더러움, 비열함이 나온다. 낭만적 사랑이라는 것은 멀리서 어른거리는 그림자처럼 가냘프게 조금만 나오는 구도로 만들었다. 젊은이들은 깨끗하고 순수한 낭만과 사랑이 따로 존재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런 사랑은 없다. 인간의 낭만적 사랑은 이 세상의 더러움 속에서 나온다. 곧 낭만과 사랑이 따로 존재할 수 없다. 젊은이들은 멀리서 인간을 비추는 등대와 같은 희망과 꿈같은 사랑을 바라지만 그런 것은 없다. 매일매일 이런 더러운 일상 속에서 조금씩 사랑이 돋아날 뿐이다. 이것을 젊은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장편 최초 여성주인공=김훈은 이번 책에서 장편에서는 최초로 여성을 주인공으로 했다. 경험해보지 못한 성을 작가의 말을 대신하는 주인공으로 설정한다는 것은 매우 큰 도전이었을 것이다. “이번 책에 나오는 말과 아버지의 이미지는 허세와 기만에 가득 찬 남성성을 상징한다. 삶의 허위, 고단함, 폭력성, 이런 것들을 상징하는 것이다. 현대화 과정 속에서의 비참한 남성성을 이미지로 그려놓았다. 아버지, 할아버지, 말 등 남성의 세계, 우리나라 산천에 널린 병사자들의 뼈다귀의 세계를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서는 여성을 경위해서 쓸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여성을 주인공으로 했는데, 이러한 세계를 여성을 통과해 표현하기가 아주 힘들었다.” 그때의 고통스러웠던 시간들을 회상하는지 창밖을 보며 인상을 쓰는 그의 얼굴에서 고뇌의 흔적들이 비춰졌다.

◆김훈의 사전=작가의 말에 있었던 ‘미수에 그친 문장들’이라는 단어가 계속 떠올랐다. 이것의 의미에 대해 물어보자 그는 “말이나 글은 삶이 아니므로 모든 문장은 미수에 그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말과 삶의 차이를 젊은이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이해가 잘 가지 않아 다시 물어봤다. “예를 들어 개라고 쓰는 것은 개가 아니다. 써 놓은 개는 단지 기호일 뿐이다. 말은 기호와 표상에 불과하지 실재가 아니다. 그 차이는 엄청난 것이다. 바로 말하여질 수 없는 것들인 것이다. 나는 자유, 평등과 같은 큰 말을 쓰지 않는다. 그 말들은 내가 검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전엔 그런 말들이 가득 차 있지만 나는 쓸 수가 없다. 내가 몸으로 검증하지 않은 단어는 쓰질 않는다. 사랑이나 희망이란 단어도 안 쓴다. 그래서 내가 쓰는 단어는 적다. 살아갈수록 쓸 수 있는 단어가 점점 줄어들더라. 나 또한 이제 몇 개 남지 않아 그 단어들이 더 줄어들지 않게 노력하고 있다. 내겐 그것이 글을 쓰는 어려움이다. 그런데 젊은이들은 그런 말들을 잘 쓰더라. 젊은이들은 사전에 나와 있는 많은 단어들을 자기가 다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또 그것들로 글을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림도 없는 소리다. 그것으로 글을 쓰면 다 허위가 되는 것이다.”

◆책 속에는 길이 없다=학생들의 점점 낮아지는 독서량 때문에 대학과 취업 면접에 읽은 책 목록을 요구하는 요즘 시대를 김훈은 어떻게 평가할까? “어른들이 청소년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하지만 나는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을 수 없게 어른들이 만들어 놓았다. 책을 읽으면 신세를 망치게 어른들이 만들어 놓고 책을 읽으라고 몰아세우는 것은 야만적이다. 때문에 책을 읽으라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 책이 뭐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책 속에는 글자밖에 없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하지만 내가 책을 많이 읽어봤는데 내가 보기에는 책 속에 길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책 속에는 그냥 글자가 있고 길은 이 세상의 땅바닥에 있는 것이다. 당신과 나 사이에 내가 너를 위해서 갈 수 있느냐는 것에 길이 있는 것이지 책 속에 무슨 길이 있겠나. 나는 책을 읽는 것보다 청소년들이 친구의 얼굴을 잘 들여다보고 그것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인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책을 읽으면 더 좋겠지만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해서 더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그것으로써 삶의 더 유리한 입장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책을 쓰는 작가가 책 속에 길이 없다니, 그의 말이 아이러니 하면서도 진실돼 보였다.

 ◆취업난은 기성세대들의 죄악=할 말은 하고 마는 김훈. 대학생들의 취업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젊은 세대들이 기성세대들의 체제에 편입되지 못하고 세상의 외곽에서 방황하고 있다면 기성세대들의 체제가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기성세대들의 죄악이다. 계약직 문제는 봉건제도처럼 사회에 신분을 만들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젊은이들을 정규직과 계약직이라는 사회신분을 만들어 차별하는 것이다. 그런 문제가 대두된 것이 벌써 십 년이 넘었는데 해결되지 않고 있다. 나는 정치권이나 재벌들이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은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비극이다. 또 이상한 것은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이념적인 것에 분노를 하고 실제적인 일에는 분노를 표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령 프랑스 젊은이들 같은 경우는 지난 달에 큰 시위를 했다. 기성세대가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았다는 것이다. 기성세대가 빼앗아 가면 그렇게 격렬하게 분노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그렇지 않다. 이념적인 것에 대해서는 분노를 하고 자신의 일자리를 뺏어 가는 것에는 분노를 하지 않는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나는 프랑스 젊은 이들의 권리 주장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프랑스 젊은이들의 이러한 행동을 꼭 ‘정의’라 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을 ‘불의’로 볼 수도 없다. 이는 그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정당한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상황에 대해 정당한 삶의 태도를 취하지 않고 분노를 표출하지 않는다. 걱정만 많은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안타깝다.”

◆무엇이 정의인가?=프랑스 젊은이들의 정의와 불의에 대해서 논하다가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최근 베스트셀러가 된 ‘정의는 무엇인가’라는 책으로 옮겨갔다. 김훈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번역이 틀렸다고 한다.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어 보았는데 이 책 제목은 틀린 번역인 것 같다. 옳은 번역은 ‘무엇이 정의인가’라고 해야 한다. ‘정의란 무엇인가’와 ‘무엇이 정의인가’는 하늘과 땅의 차이다. 앞 질문은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정의의 개념을 묻는 것인 반면 ‘무엇이 정의인가’는 인간의 구체성을 묻는 것이다. 인간의 구체성 속에서 어디까지가 불의이고 어디까지가 정의이냐를 묻는 아주 과학적인 질문이다. 세상에게 어떤 식으로 질문을 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나는 젊은이들이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기보다는 무엇이 정의인가를 묻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학교에서도 세상에 질문을 제기하는 방법을 배웠으면 좋겠다. 정의와 불의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선명하게 구별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불의와 정의가 명확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세상은 불의와 정의가 뒤섞여 있다. 이 세상에 포개져 있는 정의와 불의의 모습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복잡한 일이다. 이 세상을 선과 악의 흑백대립으로 생각한다면 세상의 편협한 이해밖에 되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그것을 알아야 한다.”

◆그의 문학=김훈은 이십 년 동안이나 글을 쓴 원로 작가이다. 그가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글을 쓰는 것은 남과 소통하기 위해서이다. 나를 표현함으로써 남과 소통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써 나의 목적은 달성된 것이다.” 이런 그에게도 문학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을까? “나는 글을 쓰고 뿌듯함이 없다. 나는 책을 한 권 써내면 거들떠보지도 않고 다신 글을 쓰지 않는다. 그러다 몇 달 지나면 다시 또 쓰고 있더라. 글을 쓴 후에 뿌듯함이나 만족감은 없고 내가 쓴 글을 보면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되나’ 하는 자기혐오에 빠진다. 다시 고치고 싶은 마음이 없고 그냥 만지기가 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계속 문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더 내 마음에 드는 글을 다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하면 다신 안 해야겠다고 하고……그런 고통의 연속이다.” 멋쩍게 웃는 그의 얼굴을 보면서 영원히 작품을 쓸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더 많이 놀고 싶은 게 내 꿈=원로 작가인 그에게 작가를 넘어선 목표를 물어보니 더 많이 놀고 싶단다. 60이 넘은 할아버지가 더 많이, 깨가 쏟아지게 놀고 싶다니, 이게 무슨 말일까? “아침에 일어나서 9시부터 12시까지 세 시간 동안 글을 쓰고 나머지는 모두 노는 시간으로 보낸다. 그런데 나는 더 많이 놀고 싶다. 재밌게, 깨가 쏟아지게 놀았으면 좋겠다.”

 


노는 것이 친구들과 만나 술 먹는 것이냐고 물어봤더니 전혀 아니란다. “나는 혼자 논다. 강에 나가서 뛰어다니고 자전거를 타고 새를 본다. 망원경이 다섯 개나 있어 망원경으로 온갖 세상을 다 본다. 멀리 있는 것도 클로즈업해서 보고 저녁 노을도 보고 새도 본다. 연도 날리고 온갖 재밌는 것들을 혼자 다한다. 나는 사람이 몰리는 곳에는 안 간다. 혼자 노는 것이 제일 재밌다.” 망원경이 다섯 개나 있다며 자랑을 하는 그의 눈이 자기 장난감을 자랑하는 아이의 눈 같아 같이 놀고 싶어졌다.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쓴다는 그의 말은 거짓말이다. 그는 그가 혼자 놀면서 보고 느낀 재미있는 것들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