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회 천마문화상-가작(시)] 돌의 기원

2022-12-01     이형초(단국대 문예창작과)

 

돌의 기원

 

우리가 물밑에서 가까워질 때, 노인들은 말했지

인간의 얼굴은 담이 낮은 마당과도 같아서 안쪽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고 그럴 때마다 난 작고 연약한 집을 들키기 싫어 강가에 돌을 높게 쌓아올렸다 아주 높은 여름을 떠올렸다 눈물을 왈칵 쏟아내기 위해 강둑의 뼈를 하나씩 빼내는 것처럼

 

노인들은 눈동자의 가장자리에서 물의 무늬를 기억했다 강가의 경계선 같은 자신의 발끝을 평생 찬찬히 바라보는 일

 

겨울이 오면 언제나 여름 음식이 전 애인처럼 떠오르고, 시렁 위에 차갑게 식어가는 저 메밀묵도 결국 물밑의 시절을 품에 안고 굳어갈 것이었다 할머니가 쇠고리에 꿰어 걸어둔 비계 가득한 돼지고기를 철썩 때리며 중얼거리는 저녁에도 김이 폴폴 나는 국물 냄새가 낮은 담을 넘어갔다 나는 돌 틈에서 이끼처럼 메말라가면서 뜨끈한 메밀묵으로 만든 태평추가 참 여름을 닮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한참을 우리 집 담에 쌓인 돌의 개수를 세어보다가

언제부터 당신들의 돌은 아주 둥글고 부드러웠나요

사실 중요한 건 돌의 모양이 아니라 돌 사이의 틈새잖아요

 

집집마다 노인들은 쉬지 않고 돌을 쌓아올렸지만

헛간에는 헛헛하게 그늘이 쌓이고 강의 물밑에는 물소리가 쌓이고

 

서로가 서로의 얼굴에 세워둔 담이 허물어지는 날이 온다고 해도

언제나 그랬듯 부엌의 아궁이는 시큰거리듯 불을 피우겠지

 

우리가 사는 집은 아주 작았고 어느 계절의 가장자리처럼 담이 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