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봉]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추억(追憶)의 사전적 의미는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하는 것’이다. 추억은 과거의 기억 중 특별하고 인상 깊었던 기억으로, 대개 행복한 순간들을 의미한다. 빈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인간은 누구나 한 번쯤 멈춰 추억을 되새김질한다. 그 행위가 만족스럽지 못한 현실태에 대한 반대급구든, 막연한 동경이든. 그 순간 추억은 지친 나를 곧추세우는 용기가 되기도 하고, 희망을 꿈꾸는 자양분이 되기도 한다.
이번 영대신문 1671호에는 과거 1990년대와 2000년대 우리 대학교의 학교 생활을 담은 특집을 기획했다. 기사를 준비하며 여러 선배님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아주 오래전 일이라 생각이 날지 모르겠다던 선배님들은 한 자락의 추억이 생각나자 실타래에서 실을 풀 듯 이야기를 풀어내셨다. 필자는 재밌는 이야기를 들을 땐 턱을 괴고 다리를 동동 구르는 습관이 있는데, 선배님들의 대학 시절 이야기를 듣는 내내 턱을 괴고 다리를 동동 구르기 바빴다.
겪어보지 못했던 선배님들의 대학 시절 이야기는 필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응답하라 1994, 스물다섯 스물하나 등 텔레비전 드라마의 보너스 씬, 에필로그를 보고 있는 기분이랄까. 살아 있는 역사들을 만난 나는 한껏 들 떠 연거푸 질문을 해댔다.
무선호출기(삐삐)의 암호에서는 그 시대의 몽글몽글함을, 천마로에서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시던 이야기에서는 그 시절 청춘들의 활기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도서관의 빈자리를 옮겨 다니는 메뚜기를 위한 자리 주인의 작은 배려와 커피 한 캔의 답례에서는 그 시절만의 따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도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비슷한 무언가들이 존재하겠지만 그 시절만이 줄 수 있는 감성이 있음은 분명했다.
결핍에서 오는 부러움이였을까. 문득 허무하게 지나가 버린 지난 2년이 너무나 아깝게 느껴졌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전혀 추억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코로나19와 함께한 대학 생활도 나름의 낭만은 있었다. 코로나19로 늦은 개강을 한 일, 방역 수칙 덕분에 2:2 과팅을 한 일, 칸막이가 쳐진 강의실에서 수업을 들은 일 등등. 코로나 시절 대학을 다닌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을 갖게 됐다. 이 추억들은 인생이라는 한 권의 책 속에 대학 생활 단락을 채우는 소중한 페이지들이 될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추억을 되새김질 할 나이가 되면 필자도 이 추억들을 양분 삼아 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여러 선배님들을 만나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지금 생각해보니 참 즐거웠던 것 같아요’였다. 지나간 것은 다 아름답다고 했던가. 시간이 흐르다 보면 인간의 뇌는 과거의 기억들을 미화 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미 결정된 과거의 상황에 시간의 감정이 덧칠해지면서 기억도 윤색되는 것이다.
필자가 좋아하는 노랫말 중에 ‘지금 이 순간이 다시 넘겨 볼 수 있는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란 구절이 있다. 소중하지 않은 추억은 없다. 영대신문 독자분들도 다시 넘겨 볼 수 있는 추억들을 많이 모아 자신만의 책을 만들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