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택한 길 후회란 없다! 자신의 신념과 열정을 잃지 않아야 ···
농구선수에서 미술작가로 -구근화씨(서양화석사수료)를 만나
2007-05-29 배한율 기자
3번째 개인전을 갖는다는 그녀의 말에 따르면, 전시회는 ‘결혼식’과 같다. “기분이 들떠 있으며, 개인전에 대한 환상과 함께 전시회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다”는 그녀는 “하객들이 결혼식 때에만 모였다 사라지는 것처럼 관객들도 전시회 오픈 당일에만 많이 오기 때문에 다음날에는 관객이 적어 많이 허무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개인전을 열 때마다 새로운 신부가 되는 느낌이 든다는 그녀는 다른 사람들보다 꽤나 늦은 시기에 미술에 입문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중 · 고등학교때부터 미술을 시작하지만 구근화씨는 25살부터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다. 이후 그녀는 27살이 되던 해인 97년도에 본교 조형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기초가 부족해 어려워하던 그녀에게 대학 동기들은 가장 큰 힘이 되었다. 그녀는 “동기들이 매우 열정적이고, 적극적이었어요. 그래서 함께 소모임을 만들어 미술 작가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도 하고 직접 작업 방식을 배우기도 했어요”라는 말로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게 찾아다니면서 느낀 점들을 서로 공유하고, 미술사와 미학을 공부하여 함께 논문을 작성하기도 하면서 보낸 4년은 그녀에게 가장 큰 보탬이 되었고 재미있는 기간이었다고 한다. 또한 그때 만난 동기와 현재 행복한 가정도 꾸리고 있어 더욱 남다르다고 한다.
그렇게 미술을 시작하기 전, 구근화씨는 13년간 프로 농구 선수 생활을 했었다고 한다. 특히 현재는 해체된 프로 농구팀인 SK 농구단에서 3년간의 선수 생활과 1년간 코치직을 맡기도 했었다. 남부럽지 않은 선수 생활을 하던 그녀가 미술을 시작하게 된 것은 미술에 대한 환상과 동경, 자유로움 때문이었다. “농구 선수 생활을 했었다고 이야기를 하면 모두들 의아해 해요”라며, 단체 생활에서의 규율이나 사회제도의 억압 등에서 벗어나 구속 없이 자유로워지고 싶었고, 또한 그러한 바램을 표현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예술분야라고 생각했기에 미술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농구 선수 시절 포지션이 가드였던 그녀는 3점 슛을 던지던 손가락 감각 덕분에 만들거나 하는 미술 작업에서 많은 이득을 보았다고 웃었다. 선수시절이 그립지 않은가라는 물음에 그녀는 서슴없이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선수 생활을 했고,
하지만 미술을 선택한 것이 쉽지 않은 길이었음에는 틀림없다. “우선은 남편의 도움과 이해가 작업하는 데 있어 많은 보탬이 되었고, 그 외에도 선배나 친구, 교수님들의 격려와 조언 등도 저에게 많은 힘이 되었죠”라며, 혼자서는 지금까지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녀는 또한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아요. 모든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그것을 내 것으로 재창조하는 것이 작가의 몫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또한 그녀는 단면적인 것만을 보고 현혹되어 쉽게 감동하거나 흥분하지 말고, 한 발짝 물러서서 다양한 방면에서 사물을 보고 느끼길 바란다고 미술을 전공하는 후배들에게 당부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겉모습이 아닌 내면의 깊이를 알 수 있고 새로운 것을 찾고, 창조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힘이 들수록 ‘이것 하나만은 바보처럼 지켜나가야겠다’는 믿음이 있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것 같아요”라며, 어려운 난관이 닥칠수록 자신이 가졌던 신념에 대해 믿고 지켜 나가려고 노력했고, 또 지금도 노력하고 있는 구근화씨. 자신에게 주어진 몫과 역할에 충실한 그녀의 모습이 무척 아름다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