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만주(국)와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
[학술] 만주(국)와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
  • 손승회 교수(역사학과)
  • 승인 2018.04.02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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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만주사와 관련하여 기존의 ‘제국주의론’과 ‘국경사’를 대신한 ‘제국론’과 ‘변경사’와 같은 새로운 연구경향이 등장했다. 이들의 입장에서 새롭게 만주(국)를 이해할 경우 기존과 같이 괴뢰국 또는 (반)식민지로 이해하는 방식 이외에 또 다른 접근이 가능할 것 같다. 동일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괴뢰국이면서 독립국 혹은 이상국이라는 만주국의 모순적 상황을 해명하기 위해 국가를 실재하는 구조로서가 아니라 그런 구조로 보이게 하는 시각적, 언술적 실행, 즉 ‘국가담론’으로 접근하려는 연구가 있다. 이 모순을 해명하기 위해 만주국을 머리가 사자(관동군), 몸뚱이가 양(천황제 국가), 꼬리가 용(중국 황제 및 근대 중국)으로 이루어진 괴물 키메라로 상정되기도 했다. 또한 ‘탈영토성’에 기반을 둔 제국의 새로운 지배 영역으로서의 만주국은 권위주의 통제 하의 신속한 산업화에 경도된 동아시아 탈식민 발전국가의 전조를 보였고 이 가운데에서 ‘동아시아적 근대’가 새롭게 규정됐다. 그것은 그에게 ‘근대적 실행과 의 지구적 순환에 대한 지역적 조율’이었다.

 그런데 두아라는 ‘탈중심적 제국주의’(ex-centric imperialism) 혹은 ‘탈식민화의 제국주의’의 대상인 만주국에서 실행된 새로운 통제전략, 통치성(governmentality) 그리고 정체성 형성 프로젝트 제도화에 주목하면서 그것을 공간적 기술에 의지했다. 그것은 “지구적 담론들을 민족적 순수성의 것들로 바꾼 변성의 장인 만주국의 역사에서 근대의 문제를 찾는 방식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그것은 만주국, 동아시아의 지역적 맥락 그리고 지구적 국민국가체계라는 세 공간적 수준에서 위의 프로젝트 실행을 추적하는 것이었고 인과적, 진화론적 방법에 기초를 둔 헤겔적인 단선적 역사관을 극복하는 공간적 양식의 역사서술이었다.

 본래 역사의 종적 축인 시간은 주체의 차이를 종합·통합·배척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공간 개념은 더 많은 차이와 병존의 가능성을 남길 수 있다. 사실 19세기가 ‘역사의 시대’라면 그 이후는 ‘공간의 시대’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발전과 정체, 위기와 순환, 과거의 축적, 죽음의 엄청난 과잉, 세계를 위협하는 기온 저하 등과 같은 주제에 의해 사로잡힌 전자에 비해 후자의 시대에는 동시성의 시대, 병렬의 시대, 가까운 것과 먼 건의 시대, 인접성의 시대, 분산의 시대이다.
이렇게 공간적 시각에 주목할 경우 헤테로토피아라는 개념을 만주에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낯선, 다른, 혼종·혼재하는 공간’이라는 뜻의 헤테로토피아는 미셀 푸코와 관련된 철학이나 문학 연구에서는 간혹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역사학 분야에서는 여전히 낯선 주제라 할 수 있다. 푸코에게 역사란 ‘지금’의 시간적 타자인데 반하여 헤테로토피아는 ‘여기’의 공간적 타자이며, 역사가 ‘우리의 현재’에 내재한 정상성을 비추는 거울인데 반하여 헤테로토피아는 ‘우리의 이곳’에서 작동하는 배치의 규범 바깥으로 나 있는 미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헤테로토피아는 편협한 민족주의 관점이나 단선적 역사관을 넘어 만주를 새롭게 조망하는 하나의 분석틀로서 다양한 문제를 제기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왜냐하면 만주는 ‘민족 문제의 십자로’, ‘아시아의 발칸’, ‘동방의 알자스 로렌’, ‘극동의 탄약고’, ‘분쟁의 요람’, ‘항일운동의 배후지’였다는 평가 이외에, 중국, 일본, 식민지 조선과 관련하여 그곳은 간극·문턱·편차를 의례화하고 국지화시키는 이종성의 공간으로 간주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토피아와 달리 현실에 존재하지만 현재의 일상과 정상과 구분되는 복수적·이질적 공간으로서의 헤테로토피아를 근대 만주에서 적용하려는 노력이 경주된 것은 이러한 희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2014년 2월 영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가 주최한 학회 주제가 ‘만주와 헤테로토피아’로 설정된 것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사실 만주와 헤테로토피아를 처음 연결시킨 인물은 만주 연구의 대가 야마무로 신이치(山室信一)였다. 그는 저서 『키메라-만주국의 초상-』(소명출판, 2009)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유토피아가 현실에는 없는 몽상의 세계라면 이에 반해 헤테로토피아는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사회입니다. 그렇지만 자기가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세계와는 다른 이질적인 세계를 말합니다. 거기에 감으로써 완전히 다른 체험, 완전히 다른 의식을 가지게 되는 공간을 헤테로토피아라고 합니다만, 저는 만주가 그런 공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야마무로 신이치는 이 발언은 공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즉 그는 만주를 균질적인 근대 공간 속에 위치시키는 것이 아니라 ‘반-공간(counter-space)’이며 ‘타자의 공간’으로 간주했다. 푸코의 정의에 따르면 이러한 헤테로토피아는 보편성의 원리, 고유기능의 원리, 이질성의 병존 원리, 헤테로크로니(Heterchronies)와의 연결 원리, 개방성의 원리, 전체 공간에 대한 기능원리를 지녔는데 이는 곧 헤테로토피아의 특징이 되기도 했다. 균질적 시간은 민족·국가사에서의 ‘민족 주체’라는 하나의 주체를 생성하거나 근대화 이론에 따른 ‘세계 역사’ 즉 거대 담론으로서의 history 또는 histories가 아닌 한 가지 History를 창출할 뿐이다. 하지만 이질적 시간 개념 헤테로크로니는 다원적 주체의 역사를 상정한다. 또한 이 역사공간인 헤테로토피아는 상대적이고 자주적인 대리인 시스템=인격적 지역 개념이 될 수 있고, 시간 구조상의 통일성-차별성을 뛰어넘는 그러면서 지역의 중첩성·모호성·이동성·안정성과 동시 병존하는 새로운 시간 개념이 곧 ‘횡적 시간’이 되며 중국의 고전적 ‘시세’(時勢) 개념과 관련을 맺기도 했다.

 그런데 위 특징 가운데 특히 마지막의 기능원리는 푸코에 따르면 ‘환상의 방식’과 ‘보상의 방식’으로 작용하는데 전자의 대표적 예가 집창촌이라면 식민지는 후자의 전형적 예가 된다.

 "(헤테로토피아의) 이러한 기능은 두 가지 극단적인 축 사이에서 펼쳐진다. 한편으로 헤테로토피아는 환상 공간을 만들어 내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 공간은 모든 현실 공간을, 그리고 인간 생활을 구획하는 모든 배치를 [환상 공간보다도] 더욱 환상적인 것으로 드러낸다....이와는 반대로 우리 공간이 무질서하고 정리되어 있지 않고 뒤죽박죽이라 보일 만큼 완벽하고 주도면밀하고 정돈된 또 다른 공간, 또 다른 현실 공간을 만들어냄으로써 그 기능을 가지게 되는 헤테로토피아도 있다. 그것은 환상의 헤테로토피아라기보다는 보상의 헤테로토피아이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일부 식민지들이 작동하는 방식이 아닌지 자문한다."

 이어 그는 “식민지들은 전 지구적 수준에서 공간의 조직화라는 문제와 관련해 헤토로토피아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지적하면서 17세기 아메리카에 영국인에 의해 건설된 청교도 사회, 남아메리카에 세워진 예수회의 식민지를 예로 들었다. 그곳은 완전히 규율 잡힌 경이로운 공간이었고 그 안에서 완벽한 인간성이 추구되었다. 결국 헤테로토피아로서의 식민지는 지상에 위치한 현실적 장소를 상상에 입각해 완벽히 새롭게 구성·창조될 터였다.

  이상, 푸코의 헤테로토피아 개념이 반드시 만주에 그대로 적용될 수도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족협화’(五族協和, 민족협화), ‘왕도낙토’(王道樂土), ‘선정주의’(善政主義), ‘아시아 부흥’, ‘인류 해방’, ‘순천안민’(‘順天安民), ‘민본주의’ 등을 이상으로 한 ‘(반)식민지’ 만주국 건립과정에 등장한 다양한 건국 논의와 실천을 헤테로토피아의 시각 속에서 재검토하는 것은 만주(국)는 물론 근대 공간에 대해 새롭게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렇다면 그곳은 결국 단순한 ‘저항의 공간’, ‘친일의 공간’을 넘어선 ‘자유(해방)의 공간’, ‘희망의 공간’, ‘대안의 공간’, ‘비판의 공간’, ‘도피의 공간’, ‘낭만의 공간’, ‘틈새의 공간’, ‘생존의 공간’, ‘이종·이질·혼종의 공간’, ‘분단·배제가 아닌 융합·교류·변용의 공간’, ‘반(자본주의·사회주의)근대의 공간’-결국 헤테로토피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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