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논단] 인공지능 시대에 인문학을 생각한다
[천마논단] 인공지능 시대에 인문학을 생각한다
  • 김재오 교수(영어영문학과)
  • 승인 2018.04.0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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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미디어나 학술서적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바로 ‘인공지능’이다. 이에 대한 영어약자인 AI라는 말이 일상어처럼 쓰인 지 오래다. AI와 프로바둑기사의 대결이 AI의 승리로 싱겁게 끝나자 대중들은 인공지능 기술의 위력을 실감하게 되었다. 인공지능은 빅데이터 기술의 첨단이라고 할 수 있으며 앞으로도 발전할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 일부 과학자들은 인공지능이 인간지능을 넘어서 진화할 수 있음을 성급히 예견하기도 한다. 이러한 예견은 이미 대중문화의 상상력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인공지능을 장착한 안드로이드 로봇이 영화와 소설에 등장하면서 인간과 기계의 경계에 대한 철학적 쟁점들이 부각되기도 했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이 인간과 기계의 관계가 어긋나는 결정적 지점이라는 것이다. 안드로이드 로봇이 프로그램화된 지능과 감정의 영역을 벗어나는 순간 로봇은 인간에게 지극히 위험한 존재로 다가오게 되고, 그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인간은 자신이 만든 로봇을 파괴하려고 할 것이다. 올해가 『프랑켄슈타인』이 출간된 지 200주년 되는 해인데, 이 작품의 기본적인 설정이 인간과 기술의 문제를 다루는 대중문화 산물에 끈질기게 영감을 제공하는 셈이다. 인간과 괴물,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쉽게 가로지를 수 없는 장벽이라는 생각은 인간본성에 대한 근대적 관념의 뿌리가 그만큼 깊다는 점을 반증한다. 또한 인공지능, 안드로이드, 사이보그, 포스트휴먼, 트랜스휴먼이라는 등의 기계가 인간을 넘어서 자체적인 의식과 감정을 갖게 될 때 그 양상을 쉽게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의식과 감정이 프로그램화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일정한 수준까지는 가능할지 모르나 프로그램화된 의식과 감정은 과거의 것을 ‘재현’한 성격을 띠게 되므로, 실생활의 다양한 상황에서 인간이 생각하고 느낄 때 실감하는 독특성은 제거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의식과 감정이 미래를 향해 열려 있을 때 이같은 독특성은 창조적 성격을 띠게 된다. 바로 이런 의식과 감정의 생생함이 한 사회의 문화를 지탱하는 핵심적 요소이다.

 대학에서 인문학은 이러한 문화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떠맡아왔지만, 요즘의 현실에서 이러한 역할은 위축되고 망각되었다. ‘융합’, ‘통섭’ 등 과학과 인문학의 분리를 극복하려는 움직임도 있지만, 애매한 절충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의 시대에 인문학은 어떻게 변화하고 진화해야 하는가? 필자도 특별한 답을 갖고 있지는 않다. 다만 인간의 의식과 감정이 변화하는 현실에 대해 어떻게 창조적으로 반응하는지를 따져보는 일은 지속되어야 하며, 이것이 인문학의 진화에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시간이 지나도 어떤 것은 아주 없음이 되는 게 아니라 있지 않음의 상태로 잠겨 있을 뿐”(김금희, 「너무 한낮의 연애」에서 인용)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