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로를 거닌 사람] “오래도록 연기하고 싶어요”
[천마로를 거닌 사람] “오래도록 연기하고 싶어요”
  • 김채은 기자, 윤신원 기자
  • 승인 2018.04.02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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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박승득 동문(영어영문학과74)은 증권계 기업에서 대표이사로서 일하다가, 현재 무대에서 감동을 선사하는 연극인으로서의 삶도 살고 있다. 이에 박승득 동문을 만나 연극 배우가 된 계기와 그의 대학 생활에 대해 들어봤다.

 대학교에 재학하던 시절, 자신은 어떤 대학생이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고 다녔던 대학생이었어요.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도 하고, 영어공부도 틈틈이 하는 학생이었죠. 그리고 연극 동아리인 ‘천마극단’ 활동도 열심히 했어요.

 그렇다면 대학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어떤 활동인가요?

 ‘천마극단’ 동아리 활동이 기억에 남아요. 천마극단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15개 작품에 출연했어요. 저는 영어영문학과 학생이었지만 대학시절을 돌아보면 연극학과 학생이었던 것 같아요.(웃음) 천마극단 연극을 위해 준비하는 기간이 매번 중간고사 기간과 비슷했어요. 그러다 보니 수업에 거의 참석을 하지 못해 학점이 좋지 않았어요. 하지만 ‘천마극단’ 활동이 즐거웠기에 후회하지 않아요.

 대학시절, 만났던 사람 중 선생님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사람은 누구입니까?

 천마극단과 봉사동아리인 운사(UNSA)에서 함께 활동한 친구들이 기억에 남아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기 때문이 아닐까요?

 천마극단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입학하자마자 바로 천마극단에 입부한 것은 아니었어요. 친한 선배 중 한 분이 천마극단의 단원이었어요. 평소 동경하던 분이었기에, 선배를 따라 연극을 해 보고 싶었어요. 이후 선배의 추천으로 천마극단의 단막극에 참여하게 되면서 천마극단과 인연을 맺었어요.

 천마극단은 선배님께 어떤 의미였나요?

 천마극단은 제게 큰 의미가 있어요. 아마 천마극단 활동을 하지 않았다면 경영학 박사학위도 받지 못했을 거예요. 제가 경영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이유가 천마극단의 지도교수가 되기 위해서였으니까요. 연극을 워낙 좋아했기에 천마극단의 지도교수가 되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게 됐어요. 하지만 대학 시절 성적이 낮아 영어영문학과 교수가 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었죠. 그래서 경영학과 교수가 되고자 했어요. 천마극단의 지도교수를 향한 목표가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던 것 같아요.

 천마극단 활동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당시 공연 일주일 전에는 모든 부원들이 대명동 캠퍼스 강당에서 지냈어요. 공연을 위해 일주일 동안 밤을 새면서 연습했지만, 제가 좋아하는 연극이었기에 힘든지도 몰랐어요.

 선배님의 재학시절 천마극단과 지금의 천마극단의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 당시에는 연극에 빠져 사는 사람이 많았어요. 지금은 후배들이 취업 경쟁으로 인해 제가 활동하던 시절처럼 하고 싶은 연극을 마음껏 하지 못하는 것 같아 많이 안타까워요. 그래도 공연을 꾸준히 한다는 것이 대견해요.

 연극 활동을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어요. 연극을 하면서 자신감을 얻었고 성격도 긍정적으로 변했어요. 연극에서는 상대방과의 호흡이 중요하기에 연극 활동을 하면서 단합심을 기를 수도 있었어요.

 취업을 위해 노력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가 대학을 다녔던 시절에는 취업을 위해 기본적으로 영어 공부를 해야 했어요. 저는 연극을 하면서도 영어 공부를 꾸준히 했어요. 두꺼운 대학노트를 영어 단어장으로 만들어 공부하기도 했죠.

 동양종합금융증권과 유리자산운용 등, 증권사와 관련된 곳에서 재직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학시절부터 증권사와 관련한 꿈을 갖고 있었나요?

 증권사와 관련된 꿈을 갖고 있지는 않았어요. 대학을 졸업한 후, 취업을 위해 일자리를 찾던 중 우연히 동양종합금융증권에서 해외학위 소지자를 공채로 모집하고 있었어요. 운이 좋게도 제게 지원 자격이 주어져 증권사에 입사하게 됐어요.

연극 '뇌우'에서 주푸위엔 역을 맡은 박승득 씨
사진제공 박승득
지난달 24일, 서울의 대학로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박승득 동문의 모습

 직장생활을 하면서 힘들지는 않으셨나요?

 크게 힘들었던 기억은 없어요. 같이 일했던 동료들도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어요. 덕분에 직장생활이 즐거웠죠.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사람은 누구인가요?

 동양종합금융증권에 재직할 당시 만났던 제 후배가 기억에 남아요. 그 후배는 증권사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기자’라는 꿈을 지니고 있었어요. 후배는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기자에 도전해 언론사에 입사했어요. 노력을 통해 꿈을 이룬 모습이 멋있어서 기억에 남아요.

 직장을 다니시다가 연극계로 돌아가려니 적응하기 힘들지 않으셨나요?

 직장을 다니면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연극 공연을 보러 다녔어요. 서울에 살고 있지만 대구에서도 공연이 있으면 보러 가기도 했어요. 그리고 직장에서 대표이사를 맡아 하던 중, 천마극단 선·후배 합동공연 준비를 위해 주말마다 대구에서 연습하기도 했어요. 꾸준히 연극을 했기에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도 자연스럽게 연극배우로 활동할 수 있었어요.

 직장을 그만두고 난 후 맡았던 배역 중에 기억에 남는 역할은 무엇인가요?

 작년 12월, 서울 명동성당에서 진행했던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작품의 주인공 ‘세몬’ 역할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왜냐하면 그 연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중·퇴장이 없기 때문이에요. 보통 연극은 극 중간에 중·퇴장이 있는데, 제게 중·퇴장이 없는 연극은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천마극단에서 단원으로 활동할 시절, 연기하기 어려웠던 경험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잉여부부’라는 연극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당시 공연이 일주일 남은 상태였는데, 연출가와 배우들의 호흡이 맞지 않아 1막만 연습했어요. 공연 전날 2막부터 4막까지 단기간에 연습한 후, 공연을 진행해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 대사도 제대로 외우지 못한 상태였고, 배우들과의 동선도 잘 맞지 않았어요. 연극을 하려면 대사를 정말 완벽하게 암기하고 배우들과의 호흡도 잘 맞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지금도 연습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에서 공연을 했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어요. 요즘도 불안할 때 대사를 다 외우지 못한 채로 무대에 오르는 꿈을 꿔요.

 2013년, 제7회 천마극단 선·후배 합동공연 ‘우리 읍내’에 직접 출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배와 후배가 함께하는 공연에 참가했기에, 더욱 본인에게 의미가 클 것 같습니다. 당시 천마극단 선·후배 합동공연에 참가하면서 어떤 감정을 느꼈나요?

 천마극단 선·후배 사이에는 ‘연극’이라는 공통점이 있죠. 2013년 당시에 선·후배합동공연을 하기 위해 서로 시간을 맞춰 연습하고, 십시일반으로 공연을 하니 정말 뿌듯했어요. 이처럼 연극의 매력에 푹 빠진 사람들이 모여 연기했기에, 선·후배 관계가 더욱 돈독하게 맺어질 수 있었어요. 그리고 후배들을 보니 제가 대학생이었던 시절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하기도 했어요.

 연극의 매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우선 다양한 배역을 연기할 수 있기에 많은 사람의 인생을 살아볼 수 있다는 것이에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작품에서 ‘세몬’ 역할을 맡은 적이 있었어요. ‘세몬’의 걸음걸이나 생각, 행동 등 ‘세몬’ 자체에 몰입하며 연기했어요. 그 후 ‘세몬’이라는 역할에 몰입해 있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여운이 남아 허전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볼 수 있다는 것은 연극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무대 뒤에서 자신의 연기 차례를 기다리며 설렘을 느끼는 것도 매력이에요. 그리고 제 차례가 다가오기에 앞서 무대 조명이 꺼지는 순간, 가장 설레요.

연극 배우로 활동하면서 무대 공포증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 있나요?

 연극 배우지만 여전히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는 떨려요. 저는 극 중 인물을 연기할 때 제가 그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해요. 극에 몰입을 하면 역할에 자신감이 생겨서 무대 공포를 극복할 수 있어요.

 기업계와 연극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목표가 생기면 자신감 있게 나아가는 편이에요. 그래서 목표를 달성했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낄 수 있었어요. 연극에서는 극에 대한 관객의 평이 좋을 때 가장 행복해요. 관객의 평이 좋은 것은 배우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라고 생각해요.

 연극배우로서 롤 모델이 있으신가요?

 배우 이호재 씨가 제 롤 모델이에요. 그분은 대사할 때 발음이 정말 좋으시고, 연기를 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할 정도로 베테랑 배우예요.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건강하게 친구들과 잘 지내고, 가족과 잘 사는 것이에요. 70세가 되더라도, 제가 대사를 잘 외운다면 배우 활동을 계속 하고 싶어요. 물론 하고 싶다고 해서 무조건 배우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요. 기회가 주어진다면 하고 싶은 것을 계속 하는 것이 제 목표에요.

 우리 대학교 학생들에게 인생에 대해 조언을 한다면, 어떤 말을 하고 싶으신가요?

 대학교를 다닐 때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찾았으면 좋겠어요. 항상 무엇을 하면 가장 행복한지 고민해 봤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현실적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것도 해야 하지만, ‘생활’도 해야 해요. 여기서 ‘생활’은 삶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에요. 우리 대학교 후배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최대한 빨리 찾아서, 최선을 다하면 좋겠어요.

독자들의 ‘나도! 나도!’

 대학시절에 일탈을 해본 것이 있다면 어떤 일탈을 해보셨나요?

 제가 대학생 시절일 때, ‘야간통행금지’라는 것이 있었어요. 이 때문에 밤 12시에는 외출을 할 수가 없었어요. 어느 날 밤 12시 쯤, 술이 마시고 싶던 적이 있어요. 그래서 밤늦게 대명동 캠퍼스 강당 앞에서 술을 마셔본 적이 있어요.

 인생 선배로서 현재 대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활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자기 스타일에 맞는 서클 동아리에 가입하는 것이 가장 괜찮을 것 같아요. 이를 통해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면 좋겠어요.

 동양종합금융증권, 유리자산운용, 알파에셋자산운용 등 여러 기업에서 일을 하셨습니다. 가장 좋았던 직장은 어디였나요?

 동양종합금융증권에서 가장 오래 근무했었기에, 그 회사가 가장 애착이 남는 것 같아요. 회사 동료들과 협동이 잘됐기에 직장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 없이 일했던 것 같아요.

 청년들에게 추천할 만한 연극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대구시립극단에서 진행하는 연극을 보러 가길 바라요. 대구시립극단에서는 작품성이 좋은 연극을 위주로 선정해요. 좋은 작품을 저렴한 비용으로 볼 수 있기에, 대구시립극단에서 꼭 공연을 보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마친 기자들의 이야기

 서울의 혜화역에 도착하니 대학로가 펼쳐졌다. 연극 포스터가 벽 여기저기에 붙어 있는 것이 인상 깊었다. 한마디로 정의하면 ‘연극’을 위한, ‘연극’에 의한 곳이었다. 그곳 만큼 인상 깊었던 것이 박승득 선배님과의 만남이었다. 멀리서 걸어오시는 모습이 마치 연극의 한 장면 같았다. 연극인들의 열정이 느껴지던 대학로처럼 그에게도 열정이 느껴졌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본 그는 ‘연극인’ 그 자체였다. 그의 인생에서 연극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 만큼 그는 연극에 큰 애정을 갖고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연극 활동을 계속 이어나가는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미래를 비관하고 한계를 정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자신이 하고 싶은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미래를 그리는 사람이 있다. 그가 그런 사람이었다. 인터뷰 중 ‘후회하는 것이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망설임 없이 ‘없다’고 답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대구로 돌아가면서 그 답변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필자는 인생을 살면서 후회를 하지 않는 것은 거짓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후회 없다’고 답변하는 그의 얼굴에 조금의 거짓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얼굴에 인생이 드러난다’는 말처럼 그의 인생은 즐겁고 행복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