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로를 거닌 사람] 문화인, 언론사를 이끌다
[천마로를 거닌 사람] 문화인, 언론사를 이끌다
  • 황채현 기자, 김달호 기자
  • 승인 2018.03.05 17: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 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노병수 동문(경영학과73)은 여러 직업을 거쳐 영남일보 사장이 됐다. 그가 거친 직업만 해도 교수, 대구시장 비서실장, 동구문화재단 대표 등 수없이 많다. 이에 노병수 영남일보 사장을 만나 영남일보 사장이 되기까지의 이야기와 그의 대학 생활에 대해 들어봤다.

 대학 시절에 무엇을 하셨나요?

 입학하기 전에는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막상 입학을 하고선 공부 이외의 다양한 활동을 했어요.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영대신문과 봉사 동아리예요.

 영대신문에서 학생기자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고등학교 선배의 추천을 받았어요. 선배가 영대신문에 한 번 지원해 보라고 추천해서 학생기자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영대신문이 대학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영대신문을 뺀 대학 생활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됐어요.

 영대신문에선 어떤 일을 하셨나요?

 1학년 때 컷기자로 활동하다가 2학년 때 편집부장을 했어요. 원래 2학년은 기자를 맡아야 하지만, 당시 영대신문에 사정이 생겨 제가 편집부장을 맡게 됐죠. 3학년때도 편집부장을 이어 하다가, 4학년 때 편집국장을 맡았어요. 또한 대학원 시절에도 영대신문에 만화를 연재했어요.

 대학교를 졸업하면 영대신문과의 인연이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6년 동안 영대신문에 몸 담은 것과 다르지 않죠.

 학생기자 활동이 힘들진 않으셨나요?

 기사를 쓰고 선배들에게 퇴고 받는 과정이 굉장히 힘들었어요. 한번은 선배가 제가 쓴 기사를 읽지도 않고 바로 찢어버리는 일도 있었죠. 그때 열심히 쓴 기사가 버려지는 걸 보니 서럽고 힘들었어요. 하지만 힘들었던 만큼 기자 생활을 통해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어요. 글쓰기 능력도 향상됐고, 무엇보다 사물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죠.

 대학 시절에 원했던 직업은 무엇인가요?

 다른 사람들처럼 돈을 많은 벌고 싶다는 생각보다 기자나 교수처럼 지적 사치를 누릴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었어요. 이후 대구공업대학교에서 경영학 교수로 재직했으니 어느 정도 제 꿈을 이뤘다고 할 수 있죠.

 대구공업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학생들에게 어떻게 다가갔나요?

 학생들에게 가르치기만 하는 딱딱한 교수보다는 학생들과 어울리는 부드러운 교수로 학생들에게 다가갔어요. 다른 교수들과 달리 같이 운동장에서 뛰놀기도 하고, 학생들이 하는 동아리나 봉사활동을 같이 하면서 함께 어울리기 위해 노력했어요. 다른 교수들은 안 좋게 봤을지 몰라도 학생들에겐 오랜 추억으로 남았으리라 생각해요.

 교수로 재직하시다가 대구시장 비서실장이 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문희갑 전 대구시장님이 먼저 저와 함께 일을 하고 싶다며 비서실장직을 제안하셨어요. 처음엔 비서실장이란 직책이 생소해 고민했지만, 결국 제안을 받아들였죠.

 비서실장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비서실장으로 있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해외출장이었어요. 비서실장이다 보니 공항에 도착하면 대사관, 현지 기업 등에서 마중을 나와 있었죠. 그런 대우가 낯설면서도 즐거웠어요. 또한 해외출장을 가면서 봤던 경관들이 기억에 남아요.

 가장 기억에 남은 경관은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지나갔을 때예요. 그때 마침 달이 막 떠오른 시간이었는데, 달이 떠오르니까 바다가 황금빛으로 물들었어요. 그 모습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떠올라요.

 비서실장으로 재직하시다가 문화 분야에 진출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대학교를 다닐 때 같은 동아리를 했던 친구들이 문화계로 올 것을 제안했어요. 그 친구들은 당시 문화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었고, 지금도 문화 기획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어요. 그런 친구들이 문화 분야에 종사한 적 없는 저를 불러줘서 놀랐죠.

 문화 분야에 종사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무엇인가요?

 2011년에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문화행사기획단장으로 활동했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때 단장으로서 마라톤 코스를 짜고 개·폐회식 관리를 하는 일을 맡았어요. 또한 대회의 중요한 행사 기획도 담당했죠.

 이후 대구시에서 대구컬러풀축제 문화행사기획단장을 맡아달라고 제의해서 겸직을 하기도 했어요.

 동구문화재단 대표직을 맡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대구시 동구청장님께서 저와 일을 하고 싶다고 먼저 연락이 왔어요. 당시 대구시문화재단 대표로 일하고 싶었기에, 고민을 했지만 동구청장님의 제의를 받아들여 동구문화재단 대표로 재직하게 됐어요.

 동구문화재단 대표로서 어떤 업무를 하셨나요?

 피아노 공연이나 대중가요 공연을 기획했어요. 그리고 당시 정부가 지역 문화 발전을 위한 활동을 권장하던 때라 도서관 설립을 통해 지역 문화 발전에 힘썼죠.

 교수, 비서실장, 동구문화재단 대표 등 여러 직책을 수행하면서 느낀 점은 무엇인가요?

 직책을 자주 바꾼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라는 걸 느꼈어요. 내가 기존에 갖고 있던 무언가를 새롭게 바꿔야 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이를 통해 배운 점도 많아요. 항상 새로운 직업에 도전하는 자세로 임하다 보니 내가 모르는 새로운 것을 매번 배울 수 있었죠. 또한 직책에 따라 다양한 나라를 방문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니, 나의 좁은 시야가 넓게 트이는 느낌을 받았어요.

 마지막으로 반드시 이루고 싶다는 꿈이 있나요?

 아름답게 인생을 마무리하고 싶어요. 많은 일들을 맡아 쉼 없이 달려오면서, 이제 직책을 갖고 싶다는 생각보단 아름답게 인생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만약 환생할 수 있다면, 다른 별에서 태어나 또 다른 경험을 쌓길 원해요.

 취업을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하는 청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리의 청년들은 너무 성공에 집착해요. 북경대 학생들은 취업보단 창업을 하고 싶어 해요. 그들은 성공보다 자신이 하고 싶고, 원하는 일을 이루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두죠. 우리나라의 청년들도 성공을 위해 달려가기보단 창업 등 자신이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일에 도전하고 자신의 꿈을 찾아가길 바라요. 더불어 이를 위해 대학교가 창업에 도움을 주는 창조적인 공간으로 변화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어떤 일에 도전하든 두려워 말고, 자신의 부족한 점은 보완하고 강점은 더 부각해 우수한 인재로 거듭나길 응원합니다.
 

지난 22일, 영남일보 대구본사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노병수 동문의 모습

인터뷰를 마친 기자들의 이야기

 이번 ‘천마로를 거닌 사람들’의 주인공인 노병수 사장님은 내게 가장 긴장되는 취재원이었다. 영대신문 사우선배이기에 실수하면 안 된다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일까. 몸이 뻣뻣하게 굳은 채 인터뷰가 시작됐다. 하지만 긴장됐던 마음은 인터뷰를 시작함과 동시에 노병수 사장님의 따뜻한 이야기 속으로 녹아내렸다.

 노병수 사장님과의 인터뷰 중 가장 공감했던 이야기는, 단연 영대신문과 관련한 이야기였다. 노병수 사장님은 당시 신문사 생활이 너무 힘들었지만, 가장 추억으로 남는다고 말씀하셨다. 나 또한 그렇다. 피곤한 몸으로 밤새 기사를 쓰고, 예쁜 후배들에게 고약한 쓴 소리를 전하는 것이 참 힘든 적이 있다. 하지만 돌이켜 봤을 때, 밤새 쓴 기사는 보람으로 다가왔고 건넸던 쓴 소리는 후배들의 성장으로 돌아왔다. 그렇기에 고된 신문사 생활을 ‘추억’이라 부를 수 있었다.

 노병수 사장님 또한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문사 일이 힘들어 보이는 후배에게, 지금 ‘너’의 모습이 ‘예쁜 추억’이라는 말을 전해주신 선배님께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