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두리] 편 가르기에 무너지는 사회
[넋두리] 편 가르기에 무너지는 사회
  • 박승환 편집부국장
  • 승인 2018.03.04 1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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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는 ‘탕수육을 소스에 찍어 먹는가, 부어 먹는가’ 등의 사소한 문제부터 시작해 편 가르기를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란 편 가르기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또한 다른 사람들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고향이 어디세요?”, “학교는 어디 나왔어요?”, “집이 어디예요?” 등의 질문은 빠질 수 없다.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함으로써 상대방과의 공통점을 찾고, 공통점을 찾으면 상대방은 ‘우리 편’이 된다. 이외에도 편 가르기는 다양한 상황에서 일어난다. 가끔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편 가르기 중독이 아닐까’란 의문이 들기도 한다.

 편 가르기는 기사 작성을 위해 취재를 할 때도 발생한다.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상황에 대한 기사를 쓰기 위해 양측의 대표를 인터뷰하는 상황이었다. 각 측의 대표들은 인터뷰에서 자신들의 상황에 공감해주길 호소하고, 기사에서 자신들의 편을 들어주길 부탁했다. 하지만 기사가 자신들이 바라는 방향으로 작성되지 않자, 나는 그들의 ‘상대편’이 됐다. 이후 그들은 인터뷰에 응하길 거부하고, “인터뷰해도 기자 마음대로 기사를 작성할 거잖아”라고 불평했다. 양측의 견해를 듣고 공정하게 기사를 작성하려 노력했지만, 자신에게 더 좋은 기사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로 비난의 대상이 된 것이다.

 물론 편 가르기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편 가르기는 잘못된 방식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같은 편의 잘못을 묵인하고 용서하는 것이 불문율이 됐고, 같은 편의 잘못을 덮기 위해 앞장서는 사람은 ‘의리 있는 사람’이 됐다. 그렇지만 상대편의 잘못은 사소한 하나까지 콕 집어 질책한다. 정치뉴스만 보더라도 여당과 야당 의원이 서로에게 비난할 때는 쉴 새 없이 말로 쏘아붙이지만, 같은 당 국회의원의 잘못에는 성인군자가 따로 없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옳지 못한 일을 하면 ‘우리 편’이라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배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같은 편에게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면 배신자 취급을 당하기에 십상이다. 2015년 박근혜 정부 시절, 유승민 의원은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박근혜 정부의 복지 정책을 비판했다. 이후 그는 어떻게 됐는가? 결국 그가 속한 정당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혀 탈당할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역사가 중요한 이유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라 생각한다. 역사에서 왕이 옳고 그른 것에 대해 서슴지 않고 말하는 자로부터 귀를 막고, 듣기 좋은 소리만 하는 자를 가까이하면 나라가 망했다. 안타깝게도 역사 속에서 볼 수 있는 모습과 현대사회의 모습이 크게 다르진 않다고 느껴진다. ‘우리 편’에겐 잘한 것만 칭찬하고, ‘상대편’에겐 잘못한 것만 지적하는 편 가르기 사회가 바뀌는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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