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봉] 관심 속에서 피어나는 영남대이기를
[영봉] 관심 속에서 피어나는 영남대이기를
  • 조규민 편집국장
  • 승인 2017.05.15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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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정의의 샘터여 학문의 등대여’ 우리 대학교 교가의 한 구절이다. 4분의 4박자에 맞춰 작곡된 이 교가는 우리 대학교가 출범한 이후 현재까지도 우리 대학교를 대표하고 있다.

 교가라는 것은 학교의 기풍과 건학정신을 되새기기 위해, 그리고 그것을 발현시키기 위해 만들어진다. 그러나 그 가사와 음색을 아는 학내 구성원들은 많지 않다. 건학정신과 현재의 우리 대학교의 모습이 맞지 않아서일까. 혹은 더 이상 정의나 학문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일까. 유감스럽게도, 단지 ‘관심이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올해는 우리 대학교 개교 7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때문에 음악회와 전시회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학생들이 올해가 70주년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한 사회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원인은, 순응하는 것도 정체하는 것도 아닌 ‘무관심’에서 비롯된다. 필자가 우리 대학교의 교가를 외우자고 하는 것은 70주년임을 알아달라는 의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단지 조금이라도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면 등굣길과 하굣길에서 교가가 흘러나오고 있음을, 올해가 70주년임을 깨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에서 나온 것일 뿐이다.

 관심이라는 것은 자신의 이익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에 대한 순수한 물음으로 이뤄진다. 그리고 그러한 물음을 던질 때 관심을 받는 주체는 변한다. 우리 대학교를 이루는 근간은 상징적인 노래나 마크가 아니다. 그것은 구성원들의 의지와 관심이다. 철학자 에르네스트 르낭은 “인간은 어떤 외적인 기준의 강요로 공동체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따라 어딘가에 귀속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필자도 르낭의 말에 공감한다. 사회는 개개인이 귀속되고자 하는 의지가 모여 형성된다. 그리고 의지의 양, 질, 형태에 따라 관심의 척도는 달라지고, 그에 따라 사회의 형태 역시 달라진다.

 그렇다면 우리 대학교가 구성원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학내 구성원들이 단지 각자의 역할에만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우리 대학교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구성원 간에 의무적으로 던지는 물음이 아닌 순수한 관심의 물음을 던졌을 때 서로 발전하게 되고, 우리 대학교에 대해서도 순수한 물음을 던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러한 순수한 물음의 의지로 형성된 사회가 앞으로도 모두의 관심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지성의 전당으로서 애국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인간교육과 …새 역사창조에 기여한다.’ 우리 대학교의 건학정신이다. 필자는 이러한 의지가 어느 개인의 의지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모두는 각자의 의지를 반영함으로써 함께 우리 대학교를 만들어 갈 자격이 있다. 70주년을 기점으로 우리 대학교의 건학정신에 의문을 던져 봐도 좋다. 건학정신은 그 시대의 상황과 배경을 토대로 만들어졌을 뿐이다. 즉, 우리가 원하는 영남대학교를 언제든지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개교 70주년을 환영한다. 그러나 필자 혼자가 아닌, 학내 구성원 모두가 우리 대학교에 관심을 가져야 70주년의 축포는 비로소 빛이 나고 소리가 난다. 관심어린 함성이 없는 축포는 소리 없는 축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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