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봉] 역할과 종속성 사이의 차전놀이
[영봉] 역할과 종속성 사이의 차전놀이
  • 조규민 편집국장
  • 승인 2017.04.02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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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3일 서울대학교 학보사 ‘대학신문’은 1면을 백지로 발행했다. 이는 전 주간 교수와 학교 당국의 편집권 침해에 항의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다. 뿐만 아니라 최근 청주대학교 학보사인 ‘청대신문’은 학교와 재단 측의 편집권 침해에 반발하여 발행을 중단하기로 했다.

 신문은 한 사회에서 발생하는 사건이나 사실을 신속하게 전달하는 간행물이다. 신문은 여론 형성의 과정을 거쳐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대푯값’을 설정하는 역할을 해야 하며, 이를 위해선 사회에 흩어져 있는 의견들을 종합하여 자유로운 토론이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 즉, 공론장(公論場)을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론장은 지면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느냐에 따라 다르게 형성된다. 대학신문 전 주간 교수는 기자들이 쓰고자 했던 ‘10.10 학생총회’, ‘본부 점거 이슈’보다 ‘개교 70주년 기념’ 이슈의 비중을 늘릴 것을 강요했다. 필자는 대학신문 기자들과 주간 교수가 형성하고자 했던 공론장이 달랐고, 그러한 과정에서 편집권 갈등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신문과 같은 인쇄 매체는 사건의 발생과, 그것이 인쇄되어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시간적 지체 현상이 발생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필자는 대학신문의 백지 발행이 공론장 형성에 있어 시간을 지체한 것이 아닌, 더 깊이 있는 공론장 형성의 기회를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대학신문의 백지 발행은 기성신문에서도 이슈화됐다. 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학보사라는 개념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고, 타 대학교 학보사들에게 편집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끔 만들었다.

 과거 영대신문 1479호(11월 8일 자)가 발행되지 못했다. 당시 주간 교수와 편집국 기자들 간의 편집권 마찰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편집권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학보사들은 편집권의 범위를 명확하게 정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학보사는 ‘언론의 자율성과 공론장 형성’의 역할과 ‘학교 안에서 학보사가 가진 종속성’을 동시에 품고 있는 모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학보사는 편집권 갈등 해결에 앞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 정체성을 찾는 가장 명백한 방법은 사적·문화적 경험을 형성하면서 스스로를 행위 주체로 인식하는가에 달렸다. 그러한 과정에서 학보사의 백지 발행, 발행 중단은 어쩌면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신문이 언론으로서 ‘대푯값’을 설정하고, 공론장을 형성하는 데 있어 편집권 갈등은 불순물과도 같다. 독자들에게 다양한 뉴스를 제공하고, 원활한 사회 커뮤니케이션을 끌어내기 위해선 하루빨리 편집권 갈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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