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경제와 환경위기의 시대, 농업의 새 틀을 짜다
[학술] 경제와 환경위기의 시대, 농업의 새 틀을 짜다
  • 이상호 교수(식품경제외식학과)
  • 승인 2017.03.06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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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득 불안정 대책을 통한 농업경영의 안정화=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농업을 경쟁력이 없는 산업이라고 얘기한다. 한 마디로 돈 안 되는 장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장경제 논리에 따라 농업은 포기해야 하는 산업일까? 농업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금과옥조로 여겨지는 가격으로만 평가할 수 있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다.
 
 농업은 생산과 소비의 특성으로 인해 때때로 가격기구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시장논리에 그냥 맡겨두면 농업생산은 점차적으로 감소하여 종국에는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선진국들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농업을 유지 보존하려고 한다. 특히 농산물 가격안정 또는 농가 소득안정을 위한 다양한 대책들을 마련하고 있다. 그렇다면 선진국들은 왜 경쟁력 없는 농업을 보호하는 것일까? 이들에게 농업은 단순한 1차 산업이 아니라 환경을 보호하고 미래세대를 위한 지속가능한 발전의 근간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농업이 어려운 이유는 생산의 불확실성과 그에 따른 가격 불안정이 크기 때문이다. 만약 농업도 계획생산이 가능하다면, 즉 농산물 생산의 통제가 이루어질 수 있다면 가격안정과 함께 농가소득도 안정화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농업생산은 수확할 때까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일조시간, 강수량, 습도 등 기후조건이 생산에 적합하게 되면 농가의 생산면적이 감소해도 오히려 생산량은 증가하게 된다. 즉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다양한 생산요인들로 인해 농업생산의 변동 폭은 매우 크게 나타날 수 있다.

 생산량이 변동하게 되면 농산물 가격은 폭락과 폭등을 반복하게 된다. 농산물 생산량이 감소하면 가격은 폭등하게 되고, 반대로 생산이 증가하면 가격은 폭락한다. 이는 가격이 비싸더라도 단기적으로 농산물 생산량을 증가시킬 수 없으며, 반대로 농산물 가격이 싸더라도 생산된 농산물의 저장 및 가공을 통한 출하시기 조절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산 변동과 가격불안정은 농업경영을 어렵게 만든다. 농가들은 가격과 생산변동에 따른 농가소득 불안정 때문에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농업경영계획을 수립할 수 없게 된다. 지금까지 정부는 농산물 재해보험을 통해 생산불안정, 정확히 얘기하면 기상재해에 따른 생산감소 및 소득불안정 대책을 마련하였으나 다른 한쪽인 생산증대에 따른 가격불안정 문제는 해결책이 없는 실정이다. 근본적인 대책은 농가소득에 영향을 미치는 생산과 가격 불안정 모두를 해결하는 것이다. 농가소득보험이 도입되거나 가격안정화를 위한 대책이 시급한 이유이다.

 지금까지 일부 경제학자들은 농산물은 시장재화(market goods)가 아니라 정치재화(political goods)라고 비판해왔다. 즉 시장가격의 변화를 통해 수요공급의 균형이 달성되도록 해야 하는데,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서 오히려 문제를 일으켰다는 논리이다. 경제학적 논리로만 따지면 맞는 얘기일 수도 있다. 그런데 식량은 경제만의 문제일까? 농업의 식량안보적 필요성을 얘기하면 내가 감상적 농업경제학자이기 때문일까? 식량은 안보라 할 수 있다. 안보는 미래의 위험 요인을 고려하여 선제적으로 준비하는 것이다. 특히 농업부문은 문제가 생긴 이후에는 단시간에 해결책을 찾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미리 안정적인 식량 생산기반을 유지하는 것뿐이다.

 소농생산체계, 위기의 시대 새로운 대안이 되다=경제와 환경위기의 시대에 식량생산의 기반을 유지할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은 우리의 전통적인 가족농 체계를 지키는 것이다. 시장경제에 기반한 기업농은 경제위기에 취약할 뿐만 아니라 환경오염의 주범이다. 그러나 가족농은 환경과 경제를 동시에 고려하는 지속가능한 발전의 근간이 될 수 있다.

 흔히 한국 농업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 중 하나가 가족농 중심의 소농 생산구조이다. 즉 소규모 생산으로는 수익성이 없다는 것으로 자본주의 시장구조 하에서는 효율성 낮은 방식이라는 것이다. 이는 농업을 시장의 잣대, 즉 가격효율성으로만 평가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는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금융위기를 비롯한 에너지 위기, 환경위기 등 경제와 생태의 위기가 연계되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또한 지금 우리는 공동체 위기 속에서 사람이 소외된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러한 위기의 시대에 소농은 어떤 가치들을 갖고 있는 것일까? 과연 소농생산 방식이 우리를 위기에서 구할 수 있을까? 소농은 오늘날과 같은 위기의 시대에 적합한 생산방식으로, 어쩌면 우리는 소농생산이 갖고 있는 다양한 가치들을 지금까지 잘 알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금융위기에서 촉발되는 경제위기는 자본주의 생산방식 자체를 뒤흔든다. 오늘날 대량생산-대량소비의 시대, 농업도 자본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이는 경제위기가 곧 농업위기가 된다는 것이다. 금융위기로 인한 이자율 상승, 환율 상승은 농업경영비 증가로 이어지고, 이는 농가 부도사태로 연결된다. 그러나 소농체계는 자본보다는 사람중심의 농업구조이다. 또한 외부경제에 대한 의존성이 낮기 때문에 금융위기에 덜 취약하다.

 우리는 에너지와 환경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 따라서 화학 농자재와 에너지 의존적인 고투입 농업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생태환경에 기반한 적정 규모의 생산이 이루어져야 한다. 농지는 생태의 보고(寶庫)이며, 식량은 시장재도, 정치재도 아닌 환경재다. 특히 농사를 지어야만 얻을 수 있는 환경가치가 있다. 이는 농업생산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이다. 한번 파괴된 생태계는 복원이 불가능하거나 천문학적 비용이 발생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소중한 생명체 덕분에 우리가 살 수 있는 것이다. 지구는 우리만의 공간이 아니다. 지렁이도 청개구리도 함께 살아야 우리 후손들도 지구 어머니의 품안에서 살 수 있다.

 농업은 단순히 농산물을 생산하는 일차원적인 산업이 아니다. 농업이 갖고 있는, 농업을 통해 창출되는 다양한 가치들이 더욱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그래서 선진국들은 농업문제를 단순한 농산물 생산만이 아닌 사회, 환경, 생태적 측면에서 다루고 있는 것으로 일차원적인 경제논리로만 농업문제를 접근하는 근시안적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 우리가 농업을 경제문제로만 국한해 버리면 미래세대들을 위한 지속가능한 발전 잠재력을 소멸시키는 우를 범하게 된다.

 농업 생산은 그 자체가 생태활동이다. 신자유주의 체계이자 농산물 시장개방의 첨병역할을 한 세계무역기구(WTO)조차도 농업의 비교역적 기능, 농업의 생태적 기능을 인정하고 있다. 한국 농산물이 값싼 수입농산물에 밀려 낮은 시장가치로 평가받고 있지만, 농업은 일차원적인 잣대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 경제 이상의 생태적 가치, 현 세대를 넘어선 미래세대의 생존문제를 고려한 다차원적인 측면에서 농업을 평가해야 한다.

 농업은 경제와 사회가 분리되어 있는 구조가 아니라 통합되어 있다. 농업이 농촌사회이고, 농촌사회가 곧 농업이다. 지금 우리는 자본주의 시장경제구조에 살고 있어서 경제가 모든 문제의 상위체계인 것으로 착각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경제는 사회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경제는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려고 하지만, 사회는 화폐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소농 생산은 지역 내의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 공동체를 형성한다. 함께 일하고, 먹고 마시며, 나눌 수 있는 농촌공동체가 바로 살맛나는 세상이다. 인간이 진정 행복한 순간은 경제적 소득이 아니라 함께할 사람이 있을 때이다. 농촌의 공동체가 회복되고 지역문화가 살아나야만 지속가능한 사회가 가능하다.

 농업정책, 농업의 다원적 가치를 만들다=농업의 다원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시장기능으로만은 부족하다. 정책은 시장실패를 보완하기 위한 정부의 공공활동으로,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나타나는 구원투수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시장기능에 대한 인식에 따라 정부의 역할도 차이가 있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시장경제주의자들은 정책이 오히려 문제를 낳는다고 여긴다. 가만히 두면 시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데 정부가 개입해서 오히려 시장을 왜곡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불확실성과 위험으로 인한 시장실패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불평등과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책은 가계와 기업,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에 정부라는 제3자가 개입하는 것이다. 정부는 수요와 공급을 원활하게 해 주는 간접적 역할을 할 수도 있고, 때로는 소비자나 공급자가 되어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로인해 누군가는 이득을 보고 누군가는 손해를 보게 된다. 모든 것을 만족시킬 수 있는 만병통치약식 정책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정책이 어려운 이유는 그 파급영향이 종합적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부가 쌀 목표가격을 높이게 되면 쌀뿐만 아니라 전체 농산물 시장, 그리고 가계소비, 조세, 수출입 등 경제 전체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하나의 정책이 모두 부문과 상호 연계되어 피드백(feedback) 되면서 예상치 못한 부작용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모든 시장이 연계되어 있다 보니, 하나의 부분적인 정책으로는 효과가 발휘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70년대 쌀 생산증대를 위해 신품종인 통일벼를 보급했다. 농가는 일반적으로 위험회피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신품종 또는 신기술의 수용도가 낮다. 또한 신품종 보급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병해충 관리, 비료시비 등 생산기술의 보급, 가공 및 유통, 수확 후 판매문제 등 종합적인 정책이 동시에 수행되어야 한다. 최소한 통일벼 품종 보급은 종자보급체계, 생산기술 및 농자재 보급, 가공 및 유통, 수확 후 판매 등 가치사슬단계마다 정부의 정책이 적재적소에서 시행되었기 때문에 단기간에 신품종 보급 및 쌀 생산증대에 성공할 수 있었다.
정책은 미래를 위한 투자이다. 때론 미래지향적이고 선제적인 과감한 투자도 필요하며, 특히 공익성을 갖춘 사업이라면 정부는 결단을 내려야한다. 농업이 바로 그 대상이다. 지도자에겐 어렵고 고독한 순간이지만 결단의 때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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