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주 교수의 따뜻한 시 읽기] 사랑의 변주곡
[김문주 교수의 따뜻한 시 읽기] 사랑의 변주곡
  • 김문주 교수(국어국문학과)
  • 승인 2016.11.28 2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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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로 위에 끓어오르는 주전자의 물이 아슬
아슬하게 넘지 않는 것처럼 사랑의 절도(節度)는
열렬하다
간단(間斷)도 사랑
이 방에서 저 방으로 할머니가 계신 방에서
심부름하는 놈이 있는 방까지 죽음같은
암흑 속을 고양이의 반짝거리는 푸른 눈망울처럼
사랑이 이어져가는 밤을 안다
그리고 이 사랑을 만드는 기술을 안다
눈을 떴다 감는 기술-블란서혁명의 기술
최근 우리들이 4.19에서 배운 기술
그러나 이제 우리들은 소리내어 외치지 않는다.
(중략)
아들아 너에게 광신(狂信)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랑을 알 때까지 자라라
(중략)
이 단단한 고요함을 배울 거다
복사씨가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거다!
복사씨와 살구씨가
한번은 이렇게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
- 김수영의 「사랑의 변주곡(變奏曲)」(1967.2.15) 부분

 4월혁명의 시인 김수영(1921∼1968)의 작품입니다. 1967년에 씌어졌으니 4월혁명의 열기가 모두 사라지고 5.16군사정변(軍事政變)으로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의 첫 대통령 임기가 마무리될 무렵에 창작된 작품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4월혁명을 통과하며 들떠 있을 때 김수영은 혁명이 실패할 것을 예감하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사람들이 희망을 놓아버렸을 때 그는 다시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것”을 예견합니다. 김수영은 간단(間斷), 즉 ‘그치거나 끊어져 있는’ 어떤 암담한 시간에 관해 말하지만, 이를 “푸른 눈망울처럼 사랑이 이어져가는 밤”으로 명명합니다. ‘간단(間斷)의 시간’에서 “푸른 눈망울”을 볼 수 있는 이 능력이야말로 그를 한국시사의 독보적인 시인으로 자리하게 한 핵심 자질이라고 할 수 있지요.

 김수영은 우리에게 “사랑을 알 때까지 자라라”고 당부합니다. 그가 말하는 이 ‘사랑’은 허황된 “광신(狂信)”이 아니라, 그것을 이루어낼 주체들이 배우고 자라는 과정 그 속에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고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씨앗중의 하나인 “복사씨와 살구씨”에서 “사랑에 미쳐 날 뛸 날”을 볼 수, 아니 그 날에 당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둠을 응시하는 고양이의 “푸른 눈망울”을, “복사씨와 살구씨”의 “단단한 고요함”을, 이 혼란스러운 정치의 계절에 생각합니다. 혹 당신이 개인적으로 ‘간단(間斷)의 세월’을 지나가고 있거든 어둠을 응시하는 저 고양이의 “푸른 눈망울”을 생각하십시오. 어둠 속에서 반짝거리는 당신의 눈망울이, 그리고 우리가 든 작은 촛불이 “사랑에 미쳐 뛸 날”로 번져가도록, 사랑으로, 사랑을 배우는 장(場) 속에서 자라갑시다.

 “아들아 너에게 광신(狂信)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랑을 알 때까지 자라라“

 이 연재를 시작한 지 두 해, 학기로는 네 번째 학기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한 학기에 6편 정도의 시를 소개했으니 스무 편이 훌쩍 넘는 작품이 이 난(欄)을 통해 여러분을 찾아간 셈이지요. 시를 읽으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를, 여러분의 삶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연재를 진행해왔습니다. 또 한해가 저물어갑니다. 소중한 여러분과 한 시절을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모두 모두, 고맙습니다. 당신을 생각하며 이 연재를 여기까지 이어왔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Good L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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