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서구 포퓰리즘적 정치언어의 두 가지 특징
[학술] 서구 포퓰리즘적 정치언어의 두 가지 특징
  • 임성우 교수(문과대학 유럽언어문화학부)
  • 승인 2016.11.1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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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중 그 누구도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물론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20만 표를 더 획득했다고는 하지만, 그가 대선 기간 동안 보여준 다양한 자극적 표현들과 정치·수사적 전략들이 많은 미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이 현상. 낯설지 않은 언어 구사. 전형적인 정치적 수사들. 나는 이러한 ‘트럼프 현상’을 보면서 포퓰리즘에 기반한 서구 정치인들의 정치·수사적 전략과 이를 실천하는 언어사용을 떠올린다. 지금 이 시점에 기존 논의들을 되돌아보면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트럼프 현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언어학적 차원에서 포퓰리스트들의 언어사용을 연구하는 분야는 그리 많지 않다. 있다 하더라도 이론적 차원에서 논의하고 있는 정도다. 실질적인 정치언어 연구는 언어에 대한 형식적 요소들을 기반으로 정치적 맥락에 대한 담화분석까지 다루어야 한다. 정치적 의사소통 과정에서 나타나는 폭력적이고 적대적이며 비이성적인 언어사용의 양상은 정치적 상황과 더불어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되고 기술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 일부를 여기에 소개한다.

 대중선동정치의 메커니즘
 우선 유럽에 나타난 포퓰리즘, 즉 대중선동정치의 대표적인 사례를 살펴보자. 2014년 5월 26일자 연합뉴스에 따르면 2014 유럽의회 선거 결과를 ‘정치권의 지각 변동’으로 표현하고 있다. 기존 정치질서에 반하는 반(反)이민, 반(反)EU 성향의 극우정당들이 의회에 진출한 것이다. 특히 프랑스의 경우 극우정당인 마린 르펜(Marine Le Pen)의 국민전선(FN)이 1972년 창당 이래 40여 년 만에 25%를 득표하면서 1위를 차지했다. 독일과 더불어 유럽의 통합을 실질적으로 이끈 프랑스에서 극우정당이 선전한 것은 높은 실업률과 경기 침체, 사회 전반에 불어 닥친 반이민, 반EU, 반유로화 정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사진 1: 마틴 르펜(FN)]

  이러한 극우정당의 약진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속되어온 유럽 전역의 극우 포퓰리스트들의 활동이 밑거름이 되었다. 유럽에서 포퓰리즘이 광범위하게 부상한 것은 1980년대 이후다. 프랑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뿐만 아니라 동유럽에서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유럽의 포퓰리즘은 대부분 대중선동에 탁월한 특정 인물 중심으로 나타난다. 이들은 대중의 성원에 힘입어 기존 정당이나 제도 및 이념에 저항하고 대항한다. 1980년대 이후 극우 성향의 포퓰리스트들이 자신들의 대중적 인기와 일반 서민들의 반(反)정치적 정서를 발판삼아 유럽, 특히 서유럽 국가들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주로 기존의 이민정책을 거부하고 불안한 치안문제를 부각시키며 유럽 통합에 반대할 뿐만 아니라 세계화에 대한 적대적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포퓰리스트들의 대중 선동은 주로 민족주의, 국가주의 또는 극우보수주의자와 그렇지 않은 이들을 적과 동지로 구분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러한 포퓰리스트들의 언어 사용을 보면 미국 대선 기간 동안 트럼트가 쏟아냈던 일련의 언어적 표현들과 수사적 전략들을 상당부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포퓰리스트들의 연설에는 ‘우리 대중’, ‘우리 국민’과 같이 그들만의 가치와 특성을 공유하고 있는 하나의 통일된 집단이 등장한다. 여기서 ‘우리’는 대중들과의 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장치지만, 동시에 이러한 ‘우리’는 ‘그들’ 또는 ‘너희들’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늘 대립과 적대감을 표출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포퓰리스트들이 형성하고자 하는 대립적 양상은 ‘그들’에 대한 적대감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특정 집단에 대한 단선적이고 표피적인 국가민족주의 감정을 부축이고, ‘그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저소득층을 선동한다. 이런 정치·수사적 전략은 특정 집단에 대한 피해 의식이나 불만을 가진 사람들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고 연대 의식을 고취하는 데 아주 유용하게 쓰인다.

 단순이분법적 세계관
 서유럽의 대표적인 포퓰리스트로는 프랑스의 르펜 외에도 오스트리아 자유당(FP) 소속의 하이더(Haider)도 빼놓을 수 없다.

[사진 2: 하이더(Haider) 현상]

  그는 오스트리아의 보수당 정권의 연정에 참여한 이후 유럽의 대표적인 포퓰리스트로 자리 잡았다. 그는 존폐의 기로에 서 있던 자유당을 회생시켰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대연정 정치체제에 대한 불만 세력들을 특유의 선동 정치로 집결시켰다. 대중의 대변자를 자처하면서 반(反)외국인 감정을 증폭시켰으며 1999년 선거에서는 27%의 지지율을 얻기도 했다. 이로써 유럽의 신포퓰리즘적 정치 노선의 한 축을 형성하게 되었다.

 하이더는 전형적인 포퓰리즘적 전략, 즉 적과 아군의 이분법적 구분을 분명하게 천명했다. 열심히 일하면서 민족적 가치와 전통을 지키는 “선량한 사람들”을 “우리”로 규정한다. 반면 집권당, 노조와 관료, 좌파, 지식인, 외국인(노동자) 등은 “그들”로 구분하여 대립적 구도를 이용한 적대적 감정을 자극했다. 특히 하이더는 외국인들이 “열심히 일하는 선량한 사람들”의 일자리와 “선조들”로부터 전해져오는 전통적 삶의 양식과 가치를 위협한다고 주장하면서 오스트리아인들에게서 반외국인 정서를 자극했다. 포퓰리스트들이 유권자들에게 쏟아내는 정치적 환상은 늘 긍정적 결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이러한 사이비정치에서 사용되는 포퓰리스트들의 언어는 아주 저급한 수준이거나 논리적 모순을 드러낸다는 것이 늘 문제가 된다.

 세상을 적과 아군으로 나누는 단순 이분법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경우는 민주주의가 발달한 미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다수의 보통 사람들과 세련되고 음모에 능한 일부 엘리트 특권층을 대립시켜 양분하는 것도 미국식 포퓰리즘의 특징이기도 하다. 포퓰리스트 정치 선전의 위험성은 비논리적이고 감성을 자극하는데 있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이러한 포퓰리스트들의 상당수는 타자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에 근거하여 부정적 측면을 드러낸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9.11 테러 이후 등장한 ‘악의 축’ 담론이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적대 국가를 ‘악의 축’으로 비난하면서 드러낸 이분법적 단순 논리는 마치 사이비종교의 설교와도 같은 연설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그의 단순 이분법적 세계관은  2001년 9월 20일 의회 연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 그는 ‘악’의 무리에 속하는 테러리스트에 대항할 행동 지침을 재삼 확인하고, 이 세상의 다양하고 복합적인 관계를 단순화시킴으로써 2001년 9.11 사태는 악의 무리가 ‘선한 사람들’을 공격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진 3: 부시 '테러와의 전쟁']

 정치적 타자에 대한 적대감
 전 이탈리아 총리 베를루스코니는 유럽에서 막말에 있어서는 독보적인 존재다.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베를루스코니는 독일출신의 슐츠(Schulz) 유럽의회 의장을 인신공격하는 일이 벌어졌다. 언론에서는 그가 또 다시 독일인들에 대한 ‘정치적 몽둥이’를 꺼내들었다고 표현했다. 그는 역사적으로 “독일인들에게 있어서 강제수용소는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는 것 같다”는 말로 독일인들이 나치의 강제수용소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고 공격한 것이다. 이는 독일인들이 전후 과거사 청산 노력과 유태인 학살에 대한 배상과 보상을 끊임없이 하고 있는 것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이자 중상모략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는 유럽 보수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이러한 공격을 감행했으나 다행히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2014년 4월 26일 토요일 밀라노의 어느 선거 행사에서 베를루스코니는 “독일인들은 간접적으로 홀로코스터를 부정하는 민족”으로 묘사했다. 베를루스코니는 슐츠 의장에게도 아주 경멸적이고 부정적인 표현을 빠뜨리지 않는다. “저기 베를루스코니나 이탈리아인을 좋아하지 않는 슐츠라고 하는 자가 있는데, 좌파 정당을 뽑는 것은 슐츠를 뽑는 것과 같은 의미다.” 여기에 언급된 몇몇 표현만 보더라도 그는 아직도 여전히 동지와 적,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이분법적 선동정치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진 4: 베를루스코니 vs. 슐츠]

  베를루스코니의 이러한 행동의 시작은 2003년 7월에 있었던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베를루스코니는 유럽의회 의장으로 취임하였다. 마틴 슐츠 독일 사민당 의원이 베를루스코니를 ‘마피아’에 비유하자 베를루스코니는 그를 나치 영화 ‘피아니스트’에 등장하는 유대인을 감시하는 유대인의 역할에 어울린다고 비아냥거린 사건이 있었다. 이에 독일이 강력하게 항의하면서 두 나라 사이에는 외교적 마찰까지도 불가피하게 되었다. 일찍이 지젝(Zizek)은 이탈리아 총선에서 이긴 베를루스코니가 ‘탈정치의 제국을 점령했다’고 선언한 바 있다. 베를루스코니 현상에 대해 지젝은 “순수한 탈정치의 전형”으로서 “기성 질서 안에서 신분 상승을 꾀하는 정치 지도자가, 인민의 주권 회복과 이를 위한 체제 개혁을 약속하며, 감성 자극적인 선동 전술을 바탕으로 전개하는” 전형적인 포퓰리즘적 정치행태의 일종이라 지적했다.

 극우 성향의 포퓰리스트들이 사용하는 단순이분법적인 논리와 정치적 타자에 대한 적대감 표출은 자신이 속한 내(內)집단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들의 선동은 일반 대중들이 쓰는 말을 의도적으로 흉내 내면서 직설적이고 단정적인 어투를 구사한다. 즉, 포퓰리스트들은 일상어에서 접할 수 있는 투명하고 간단명료한 언어를 구사하여 기성 정치와 거리를 두고 일반 대중들과의 친밀도를 높여 ‘우리’라는 동지적 유대감을 과시하려고 한다. ‘우리’에 소속되지 않은 ‘그들’을 적으로 간주함으로써 자신이 속한 집단에 도덕적 우월성을 부여한다. 이들은 자신이 관여하는 세계를 두 개의 상반된 실체로 양분함으로써 타자에 대한 무차별적인 반감 또는 적대감을 확대 재생산한다. 포퓰리스트들의 단순이분법적 정치는 언어를 통해 그들의 세계관뿐만 아니라 정치적 분석틀과 대안까지도 단순하게 만든다. 따라서 포퓰리스트들의 정치·수사적 전략을 간파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들이 구사하는 언어 사용 방식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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