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생애주기와 금융문맹
[시론] 생애주기와 금융문맹
  • 이용우 교수(경제금융학부)
  • 승인 2016.09.26 2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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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1
 2009년 9월경 서울시 구로구에 위치한 유한공업고등학교 1학년 어느 교실. JA코리아의 청소년 금융교육에 참가한 산업은행원이었던 필자는 약 6개월간의 ‘봉사’활동을 위해 교탁에 섰다. 첫 시간의 과제는 신용카드란 무엇인가에 관해 청소년들과 토론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는 ‘신용’이란 단어 자체가 이미 너무나 생소하였고 확신하건데 주어진 50분 동안 필자는 학생들에게 신용카드란 물건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해시키는데 실패하였다.
 

 장면 #2
 2013년 10월 서울시 을지로 동양증권 앞은 피켓을 들고 항의를 하는 수많은 투자자들로 가득 찼다. 이들은 몇 년 혹은 몇 십 년간 모은 돈을 소위 후순위채권에 투자했다가 동양그룹이 유동성위기에 몰리자 투자금회수가 요원해져 낭패를 본 사람들이었다. 당시 특히 문제가 되었던 것은 후순위채권이라는 고도의 리스크를 내포한 금융상품을 판매자들이 ‘원금보장’이라는 터무니없는 감언이설로 속여 판매(소위 불완전판매)했다는 점이었다. 대부분 저소득층이었던 투자자들은 결국 생애주기의 마지막 단계에서 금융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러한 예들(?)을 통해 필자가 하고자 하는 얘기는 간단하다. 사회적·교육적 차원에서 개인의 생애주기에 맞는 경제교육의 설계를 통해 우리사회의 구성원들이 금융문맹을 벗어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문맹이란 개인이 자산을 관리하고 금융관련 의사결정을 하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과 기술을 결여한 상태를 의미한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상품의 생산 및 소비가 주를 이루는 그러한 자본주의의 국면 속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지 않다. 지난 2007년 서브프라임모기지사태가 촉발한 국제금융위기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듯 우리는 이제 금융이 실물을 지배하는 고도 금융자본주의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금융자본주의 사회에서 금융기관 종사자들은 때때로 실적의 향상을 위해 유혹을 받는 경우들이 있다고 한다. 이러하기 때문에 세계 각국은 금융소비자들의 보호를 위해 금융규제를 강화해 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2년 금융감독원 내에 금융소비자보호처를 신설하여 이러한 노력에 동참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정부기관을 통한 금융회사규제와 금융회사에 대한 도덕적 비난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규제만능주의는 개인들의 행위에 대해 의도하지 않은 부정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할 가능성도 가지기 때문이다. 금융업은 상당한 불확실성 하에서 이익을 창출할 가능성을 발견한 판매자와 소비자가 동참하는 산업으로 규정지을 수 있다. 따라서 판매자와 소비자는 최종적으로 자신의 의사결정에 책임을 져야한다. 만약 금융투자자들이 소비자보호관련규제를 통해 어찌됐든 자신들의 투자에 대한 부정적인 결과도 금융회사에 대한 비난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금융시장은 도덕적 해이로 가득찰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인들의 능동적인 금융의사결정능력의 제고가 필요하다. 더 나아가 근본적으로 생애주기별 금융교육의 문제를 좀 더 넓은 시야 속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즉, 금융문맹의 문제를 고령화에 대한 개인들의 대비라는 측면에서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향후 우리나라에서 복지가 획기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고 생각한다. 결국 개인들은 한정된 평생소득을 통해 은퇴국면을 관리할 자산을 마련해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많은 청년들이 직장을 얻은 후 연금가입을 고려할 때 실제 변액연금의 성격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생애단계별로 필요한 금융지식과 기술들을 점진적으로 익힌다면 인생의 후반기에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막다른 골목에 몰릴 가능성을 최소화 할 수 있지 않을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생애주기별 사회적·교육적 차원에서의 금융교육이 걸음마 단계에 있다. 이러한 체제가 수립되기를 기다리지 말고 우리 청년들은 세심하게 준비해 나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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