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주 교수의 따뜻한 시 읽기] 사랑은 불협화음
[김문주 교수의 따뜻한 시 읽기] 사랑은 불협화음
  • 김문주 교수(국어국문학과)
  • 승인 2016.09.26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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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걸으면 아랫도리가 흔들리고
여자가 걸으면 윗도리가 흔들립니다

남자는 윗도리에 흔들릴 게 없어서 윗도리가 흔들리지 않고
여자는 아랫도리에 흔들릴 게 없어서 아랫도리가 흔들리지 않습니다

남자는 흔들리는 여자의 윗도리가 신기(?)하고
여자는 흔들리는 남자의 아랫도리가 신기(?)합니다

흔들릴 게 없으면 흔들리지 않는 것이 당연한데
남자는 흔들림이 없는 여자의 아랫도리를 선망합니다

여자는 자기가 흔들리는 것으로 흔들리지 않는 부분들을 채우려 합니다
여자는 흔들림이 없는 곳을 흔들리는 부분으로 채우려 합니다
남자는 흔들림이 없는 곳을 흔들리는 부분으로 채우려 합니다

사랑은 흔들리지 않는 것에 의해 흔들리고
흔들리는 것에 의해 더욱 흔들립니다

흔들리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것에 대한 사랑이고
흔들리지 않는 것은 흔들리는 것에 대한 사랑입니다.

「사랑은 불협화음」 전문 박상우

 사랑에 관한 현실의 윤리를 정리하면 이렇다. <사랑이 위대한 것은 그것이 현실의 난관을 넘어설 수 있는 정신적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남녀간의 사랑에 대해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그러한 점에서 정신성이 결여된 육체적 사랑은 가장 천박한 수준의 사랑이거나, 혹은 사랑이 아니다. 반면 육체를 넘어선 사랑은 지극히 위대하고 숭고하다.> 사랑에 대하여 현실의 윤리가 방점을 두는 곳은 사랑의 정신성이다. 현실의 윤리는 정신성을 빌어 인간의 육체를 통제하고, 나아가 우리의 의식을 식민화한다. 위의 시는 이러한 윤리적 기율과 관념을 전복한다. 이 시는 사랑을 육체로 환원한다. 시에 의하면 사랑은 “흔들림이 없는 곳을 흔들리는 부분으로 채우려는” 욕망이다. 흔들림에 대한 동경과 갈망이 이성(異性)을 부른다.

 사랑이 온전히 육체적인 것이어서는 안 되는가. 이 발언은 위험한가. 아니면 위태로운 현실을 반영하는가. 당신은 여기서 무엇을 위험하다고 생각하는가.

 박상우의 「사랑은 불협화음」은 사랑에 관한 윤리적 규범들을 천연덕스러운 리듬과 어조로 공격한다. 육체의 욕망을 괄호치고 통제하려는 현실의 윤리는 적어도 이 시에서는 힘을 잃는다. 이 시는 사랑을 육체로 환원하자는 게 아니라, 육체적인 것으로서 사랑을 호명하고 규정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랑의 육체성, 육체적인 사랑을 낮추어볼 아무런 이유가 없다. 이 시는 우리들의 의식 속에 뿌리 내린 사랑에 관한 윤리적 자의식을 돌아보게 한다. 시의 윤리는 현실의 윤리와 규범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하는 메타-윤리이며, 윤리적 자의식과 표층의 사태/현실을 전복하는 바깥의 윤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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