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모든 글의 초안은 끔찍하다
[기자수첩] 모든 글의 초안은 끔찍하다
  • 곽미경 준기자
  • 승인 2016.09.26 20:05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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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 반의 휴학을 끝내고, 복학 후 첫 과제를 할 때의 일이다. 리포트를 작성하는 과제였는데 ‘첫 문장을 잘 써야 지루하지 않고,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에 글을 써내려가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결국,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다 시간에 쫓겨 하고 싶은 말을 채 담아내지 못하고 과제를 제출해야만 했다. 후에 돌아온 교수님의 피드백은 ‘성의 없는 과제’라는 것이었다. 참담했다.

 신문사에서 첫 보도기사를 쓸 때도 시작이 망설여졌다. 처음부터 완벽한 문장을 만들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힘들게 작성한 기사를 직속 기자 선배에게 넘겼다. 그때부터 긴 퇴고가 시작되었다. 고민했던 문장은 다시 보니 비문투성이였고,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했던 내용도 중복되는 것이 많았다.

 퇴고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직속 선배의 퇴고가 끝나면 부장 기자 선배 그리고 편집국장 선배……. 편집국 내 퇴고가 끝난 기사는 교정 선생님께 맡겨져 한 번 더 다듬어졌다. 그리고 마지막엔 지도 교수님의 퇴고가 있었다. 이처럼 한 기사가 지면으로 내보내지기까지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치게 된다.

 그러던 중 신문사 하계방학 과제로 『문장기술』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의 서문에는 잘 써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면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하니, 부담을 버리고 일단 쓰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유명한 작가인 톨스토이와 헤밍웨이 역시 완성도 있는 작품을 위해 초안을 수십 번 고쳤다는 사실과, 글은 써놓고 다듬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이 적혀 있었다. 기사도 이와 마찬가지다. 글은 한 번에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퇴고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것임을 새삼 깨닫는다.

 이것이 어디 글쓰기뿐일까. 모든 일이 그렇다. 한 번에 잘할 수는 없다. 시행착오를 겪는 것은 필연적이다. 잘하고자 해서 생기는 부담은 아이러니하게도 본인의 능력을 반도 보여주지 못하게 만든다. 일단 일을 시작하고 부족한 부분은 채워나가면 된다. 완전한 결말을 보기 위해, 끔찍한 초안은 기꺼이 고쳐나가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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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2016-09-28 21:08:38
노지루 퍼펙트!

빅영미 2016-09-27 09:58:57
잘 읽히고 좋아요! 멋진 글 감사합니다

여신 2016-09-26 23:30:49
비록 초안이끔찍했을지언정 지금은 이렇게 여러사람에게 의미담긴 기사를내고있잖아요! 멋져요 ㅎㅎㅎ좋은기사잘읽었어요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