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대학생이 개발한 적정기술의 적용과 성과: 라오스 사회를 대상으로
[학술] 대학생이 개발한 적정기술의 적용과 성과: 라오스 사회를 대상으로
  • 정용교 교수(사회학과)
  • 승인 2016.09.12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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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장과 효율성에서 비롯된 수많은 역설적 현상을 목도하면서 새로운 대안사회를 어떻게 열 것이냐에 관심이 점증하며, 그에 따른 신질서 패러다임 형성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대안적 사회질서의 모색은 지속가능사회의 형태로 등장한다. 지속가능사회는 생태환경을 고려한 유기적 성장, 인격성을 담보할 수 있는 질적 발전, 그리고 관계와 다양성의 원리를 강조하는 홀리즘적 가치체계의 실현 등과 관련된다. 지속가능사회의 조건을 달성하는 데 적정기술의 개발 및 적용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다.

 적정기술은 지속가능성에 대한 지향, 개개인의 자유로운 계발에 기여하며 현지사회의 자연재료를 활용해 현지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한발 가깝게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이다. 적정기술은 인간친화형 기술개발과 적용을 통해 지속가능사회를 실현하는 데 관심을 둔다. 이때 적정기술은 스스로 진화하고 역동적인, 발전에 관한 완전한 시스템적 접근이며, 지식, 기술 그리고 그것의 기반이 되는 철학으로 구성되어 이에 의한 공동체적 발전을 지향한다. 특히 적정기술은 기술과 더불어 인간에 대한 이해를 위한 인문적 소양을 요구하며 적정기술이 처한 사회적 맥락을 읽어낼 수 있는 통찰력을 중시한다. 적정기술이 추구하는 인문적 소양발휘와 그에 의한 지역친화성은 현지의 재료를 활용해 현지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우선적 관심을 부여한다.

  여기서는 라오스 사회(특히 몽족)를 대상으로 우리의 대학생들이 직접 설계하여 제작한 적정기술의 몇 가지 실천사례를 살펴보고, 그런 사례들이 라오스 현지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어떤 의미와 의의를 던져줄 수 있을지에 대해 검토하고자 한다.       

 적정기술은 무엇을 말하는가?
 적정기술 관련 본격논의는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촉발되었다. 적정기술은 저개발국의 토착기술보다는 우수하지만 부자들의 거대기술에 비해 값싸고 소박한 ‘중간기술(intermediate technology)’ 형태를 취하며, 아울러 현지에 존재하며 일반적인 사용이 가능할만큼 충분히 싸고 상대적으로 간단한 기술과 현지재료를 활용할 수 있고, 그리고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바커 한스(B. Hans)는 적정기술을 인간의 기본적 필요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모든 종류의 기술이라 보았고, 또 인간 삶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하였으며, 그리하여 하위 20%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기술이라 하였다. 아부바카 압둘라리(A. N. Abullalli)는 기술이 한 사회의 자립적이고 문화적 혼란을 야기하지 않으면서 지역주민의 복지향상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고, 피터 듄(P. Dunn)은 기술이 해당 커뮤니티의 문화, 전통 등과 양립가능하여 사회적으로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적정기술은 합리적 가격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지역문화의 현재와 미래에 바람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그리고 개인의 건강한 생활방식을 촉진하여 지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지 등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런 입장에서 적정기술은 현지인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본다. 현지인은 적정기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수혜자라기보다 적정기술의 개발에 필요한 자원과 정보를 보유하고 있으며, 따라서 적정기술의 개발과 확산을 위해 중요한 파트너 내지 사업주체로 바라본다. 적정기술은 최신기술이 제공하는 다양한 기회를 활용하는 데 관심을 갖기보다 제한된 자원과 상황을 유용하게 활용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삶의 질 향상에 더 큰 관심을 부여한다.

 적정기술은 기술 그 자체의 의미를 넘어선 사고체계를 의미하며, 곧 그것은 하나의 철학을 내포한다. 적정기술의 핵심은 기술을 적정한 수준으로 한정하는 것이 아닌 기술사용에 대한 책임 있는 사람들의 자세와 태도를 고양시키는 데 둔다. 따라서 적정기술은 해당기술을 사용할 때 개인의 자유가 확대되고, 그 사용이 환경이나 타인에게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한다. 이런 점에서 적정기술은 인간 삶의 질 향상에 목표를 두며, 기술진보가 아닌 인간성 그 자체의 진보를 우선시하는 사고체계 혹은 철학으로 정의할 수 있다.

 적정기술은 인간에게 고통을 가하는 근본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의 해결을 통해 인류 삶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실천적 행위와 맥락이 닿는다. 다시 말해, 적정기술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윤을 추구하려는 거대기술체계에서 벗어나 기술의 인간화를 추구한다. 이런 점에서 적정기술은 사회기술의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때 사회기술은 보건복지, 의료, 교육, 위생, 환경, 안전 등의 차원에서 저개발국 주민들이 당면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적정기술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기술, 공익기술, 사회지향적 기술, 대안기술, 중간기술, 수행되지 않은 기술 등의 의미를 띤다.

 공학영역에서 적정기술의 적용과 성과
 A팀은 전자력 방식의 에너지 하베스팅에 의한 Wind Belt를 기획․제작하였다. 신재생 에너지인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은 주변에서 에너지를 수확하는 모든 기술을 일컫는다. 풍력발전, 조력발전, 태양광발전 등이 이런 에너지 하베스팅에 속한다. 이에 A팀은 풍력에너지로부터 진동을 만들어낼 수 있는 필름을 발전기 코일 사이에 두고 불어오는 바람을 활용하여 전력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필름과 코일을 고정하는 형태로 Wind Belt를 설계・기획하였다.

 첫째, 설계배경과 동기는 다음과 같다. 세계적인 추세는 원자력과 화력의존도를 줄여가고 대신 신재생에너지의 필요성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풍력에너지를 활용한 재생에너지는 배터리구입이 힘든 오지나 전력공급이 잘 되지 않는 곳에서 에너지 공급을 가능케 할 수 있다. 에너지 하베스팅의 경우 소규모의 비용으로 아주 간단한 원리를 활용해 라오스를 비롯한 저개발국의 에너지 문제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라오스와 같은 산악지역이 많은 곳에서 바람을 이용한 에너지체계는 태양광, 수력발전보다 더 나은 효율성을 줄 수 있다.

 둘째, Wind Belt의 구체적 설계는 패러데이 전자기 유도법칙에 의거해 진행되었다. 전자기유도에 의해 회로 내에서 유발되는 기전력의 크기는 회로를 관통하는 자기력선속(磁氣力線束)의 시간적 변화율에 비례하는 점을 감안하여 자석에 가까이 다가가면 밀어내려는 방향으로 자석에서 멀어지면 당기는 방향으로 유도기전력이 생긴다는 원리를 활용하였다. 설계흐름은 전자력방식의 솔레노이드와 네오디움 자석을 이용한 전력생산과 발전부분인 Flutter Band의 설계, 정류회로 설계 등의 세 영역으로 이루어졌다. 발전부분은 공기흐름을 이용하여 벨트의 진동대역을 사용하였다. 충전회로의 제작으로 배터리에 전력을 충전하여 인버터를 통해서 일상생활에 응용할 수 있게 했다. 최종파형에서 7.1V가 나왔으며 이는 건전지 및 기타 전자 전기제품에 두루 활용될 수 있다.

윈드벨트에 의한 전력생산은 적은 부피와 저렴한 가격으로 에너지를 얻을 수 있으며, 특히 차량보다 자전거와 오토바이 이용이 잦은 라오스 상황에서 조명등과 배터리 충전용도로 활용될 수 있다. 특히 청정에너지원인 풍력을 이용할 때 50만원 이내의 비용으로 6V이상의 전압을 가동할 수 있다. 또 이 제품은 대기오염이나 원전의 위험이 따르지 않고 무공해 에너지를 얻을 수 있으며, 풍차에 의한 풍력발전에 비해 움직임이 적어 제한된 공간에서도 쉽게 이용될 수 있다. 옥상난간, 차량, 가로등과 같은 풍력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곳이면 활용이 가능하고, 크기를 늘리거나 축소할 수 있어 공간에 맞게 제작할 수 있다. 이 제품은 바람이 있는 곳이면 누구나 언제라도 쉽게 에너지원으로 활용할 수 있어 실생활에 바로 적용될 수 있다.

 인문사회영역에서 적정기술의 적용과 성과
 B팀은 라오스 관광산업의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현지적합형의 관광캐릭터를 개발하였다. 폐쇄적, 은둔적 통치체계에서 개방사회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라오스는 관광자원 개발에 의한 국가경쟁력 향상에 국가적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서 라오스의 전통과 문화를 활용한 적정기술의 개발을 시도하였다.

 첫째, 현대사회에서 캐릭터는 20세기 디자인과 소통의 아이콘으로서 문화적 측면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으며, 동시에 미키마우스, 무민 등과 같이 홍보영역에서도 큰 의미를 띨 수 있다. 라오스 관련 기존의 캐릭터와 상징물에 대한 조사를 통해 라오스 사회와 라오스인들의 정체성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캐릭터를 고안할 수 있었으며, 특히 라오스에서 관광시장이 매년 급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주목하였다.

 둘째, 캐릭터의 선정은 라오스 역사와 문화를 고려하여 이루어졌다. 라오스 최초의 통일왕국으로 란상왕국이었는데, 이 왕국의 의미는 ‘코끼리 백만 마리’를 뜻한다는 사실에 유념하였다. 라오족은 8세기 무렵부터 중국남부에서 하천을 따라 남하하였고, 13세기 무렵 몽골제국의 세력 확대에 따라 라오족을 포함한 타이계의 여러 민족들도 함께 이동하였다. 이에 각지에 무앙으로 불리는 호족 정치체제가 성립하였고, 이중 라오계는 치앙마이를 중심으로 한 란나왕국과 루앙프라방을 중심으로 한 란상왕국을 각각 건국하였다. 이후 란나왕국은 쇠퇴하였고 1353년 란상왕국이 세력을 키우게 되었고 이 란상왕국이 현재의 라오스를 대표하게 되었다. ‘코끼리 백만 마리’라는 의미를 지닌 란상왕국은 한때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가장 큰 면적을 지닌 왕국이었고, 그에 따라 란상왕국은 현재까지도 라오스 영광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셋째, B팀은 라오스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반영한 그들만의 관광캐릭터를 고안하였고 캐릭터를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사람들의 관심과 호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티셔츠와 조끼를 제작할 수 있었다. 그림은 B팀이 직접 만든 티셔츠와 조끼모양이다.

 B팀이 제품화한 티셔츠와 조끼는 대학입학자가 동일연령의 3%수준에 불과하며 공산품의 대다수를 인근의 태국 등지로부터 수입할 정도로 산업인프라가 열악한 라오스의 상황을 고려할 때 관관산업의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라오스의 전통문화를 재조명하는데도 이바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컴퓨터 디자인에 의한 티셔츠와 조끼제작은 큰 비용을 들이지 않으면서 라오스인의 자부심과 유서 깊은 문화를 자연스럽게 홍보할 수 있으며, 그리고 현지주민들의 직업창출은 물론 이에 의한 그들의 삶의 질 향상에 다가설 수 있다. 나아가 이는 라오스인의 상징을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게 형상화함으로써 전통문화와 현대문화를 이을 수 있는 가교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었다.

 적정기술을 둘러싼 논의는 글로벌적 현안의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적정기술에 의한 지속가능사회의 실현여부는 국가 간 및 개인 간 영역에서 간격과 격차가 심화되는 경제사회적 현실에서 중요한 시대적 아젠다라 할 수 있다. 대자본에 의한 거대기술체계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에서 한층 멀어지면서 성장과 발전에서 탈락된 수많은 약자들을 양산하고 있다. 이에 적정기술은 점점 가속화되는 첨단 기술사회에서 문명화된 인간이 기술 없이 살 수 없음을 인정하고 기술을 부정하는 대신 기술에 인간의 색을 입힘으로써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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