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봉] 스누피와 함께라도
[영봉] 스누피와 함께라도
  • 장보민 편집국장
  • 승인 2016.09.12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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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 10대 딸이 내 만화를 좋아한다고 할 때 가장 짜증이 난다. 나는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어른을 위해 그림을 그린다” ‘스누피’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피너츠』의 작가 찰스 슐츠가 한 말이다.

 『피너츠』는 1950년부터 50년 동안 연재되었으며, 전 세계 75개국 21개 언어로 소개돼 많은 독자들이 『피너츠』의 캐릭터와 함께 했다. 『피너츠』속 캐릭터들은 어린아이의 시선에서 일상의 기쁨과 슬픔 외에도 사회, 정치 등 다양한 내용을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주목할 만한 부분은 찰리 슐츠가 어른들을 위해 그림을 그렸듯이, 『피너츠』는 많은 어른 독자들의 눈길을 끌었다는 것이다. 찰리 슐츠는 『피너츠』의 주인공 찰리 브라운이 자기 자신이라 말한다. 과거 작가의 좌절과 실패가 만화 속 주인공들을 만든 것이다. 그렇기에 주인공들의 현실적이면서도 아픈 대사들은 우리의 마음을 콕콕 찌른다. 찰리 슐츠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약점들을 동글동글 귀여운 캐릭터에 녹여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많은 어른 독자들은 무슨 일을 하던 잘 안 풀리고, 평범한 것을 넘어서 실패를 거듭하는 주인공에게서 스스로의 모습을 보고 응원했다.

 만화영화와는 거리가 멀 것만 같은 ‘어른’들이 왜 『피너츠』를 보며 치유받고, 등장인물들에 열광했을까? 단순히 애니메이션 『피너츠』 뿐만이 아니다. 각박한 사회에 지친 어른들을 위한 ‘판타지’, ‘동화’를 충족시켜줄 애니메이션, 캐릭터 산업 등이 크게 성행하고 있다. 과거에는 아이같고 유치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으나, 이제는 ‘키덜트(kid와 adult의 합성어)’라고 불리는 엄연한 하나의 문화가 되어 소비산업을 주도 하고 있다. 20~40대 키덜트들은 수십에서 수백만 원을 키덜트 문화를 향유하는데 기꺼이 지갑을 연다. 캐릭터와는 거리가 멀 것만 같은 어른들을 대상으로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캐릭터와의 콜라보는 어린 시절 하나쯤 소유했었던 장난감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켜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혹자는 어른이지만 아이로 남고 싶은, 당시로 돌아가고 싶은 ‘향수’를 가진 ‘어른이’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에 씁쓸함을 느끼기도 한다. 동화같지 못한 각박한 현실에 지친 어른들이 자신들만의 동화, 판타지를 찾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판타지 속으로 손을 내민 것은 무엇보다도 지친 일상 중 그 속에서 ‘공감’을 찾았기 때문이 아닐까. 용감한 강아지 스누피, 적극적인 모습이 예쁜 찰리의 여동생 샐리 브라운 등의 캐릭터에서 잊고 있던 ‘나’를 발견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잊고 지냈던 순수했던 ‘나’, 꿈이 많았던 ‘나’, 겁 없이 용감했던 ‘나’를 말이다. 혹자는 이런 키덜트들을 보고 나약하다고 비판한다.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어른들이 키덜트가 된다는 글도 있었다. 하지만 우린 미성숙해서가 아니다. 동글동글 귀여운 캐릭터들이 전하는 메시지에 ‘공감’했고, 그들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찰리 브라운이 자신의 반려견인 스누피에게 한 말이다. 타인의 시선과 상관없이 우리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 길에 스누피가 함께여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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