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주 교수의 따뜻한 시 읽기] 한 잎의 女子
[김문주 교수의 따뜻한 시 읽기] 한 잎의 女子
  • 김문주 교수(국어국문학과)
  • 승인 2016.08.29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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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女子, 그 한 잎의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女子만을 가진 女子, 女子 아닌 것은 아무 것도 안가진 女子,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닌 女子, 눈물같은 女子, 슬픔같은 女子, 病身같은 女子, 詩集같은 女子, 그러나 누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女子, 그래서 불행한 女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女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女子.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1978) 전문 오규원

 여러분은 무엇을 꿈꾸시나요? 여러분은 꿈을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위의 시에는 수없이 많은 女子들이 수런거리고 있지요. 적어도 열일곱의 女子들이 살고 있지요. 그렇게 많은 여자들을 어찌 사랑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요. 저 1연에는 한 사람의 순결한 여인이 나옵니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맣고, ‘솜털’ 같이 가볍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女子, 이러한 여인은 대부분의 남자들에게 이상향 같은 존재입니다. 1연의 서술과는 달리 2연에는 이 女子와 관련하여 이해할 수 없는 정보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많은 女子들이 등장하여 우리의 이성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이 내용 중에 결정적인 것은 이 女子가 ‘病身같은 女子’라는 사실, ‘병신’이란 몸이 불구(不具)라는 것이고, 그것은 이 女子가 몸이 문제임을 암시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女子는 몸이 없는 존재입니다. 몸이 없는 존재는 둘 중에 하나지요. 귀신이거나 마음 속 존재이거나. 마음 속 女子이기 때문에 ‘누구나 영원히 가질 수 없고’ 그리고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女子’이지요. 이 시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이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요. 이상에 관한 것이기도 하고 사랑에 관한 것이기도 합니다. 꿈이란 그런 것이지요. 생뚱맞기는 하지만 체 게바라는 이런 말을 했답니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는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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