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논단]플라톤이 시라쿠사에 간 까닭은?
[천마논단]플라톤이 시라쿠사에 간 까닭은?
  • 장문석 교수(문과대 역사학과)
  • 승인 2016.08.29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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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그리스인들은 우리에게 소중한 것 두 개를 선물했다. 철학과 정치가 바로 그것이다. 철학은 앎을 사랑하는 것이요, 정치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토론하고 의사결정하며 그 결정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것이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에서 철학은 플라톤에서 그 진수가 표현되었고, 정치는 아테네 민주주의에서 그 정점에 도달했다. 그런데 같은 하늘에 태양이 둘일 수 없듯이, 고대 그리스에서 철학과 정치의 관계가 좋지는 않았다. 정치(아테네 민주정)는 철학(소크라테스)에 대해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이유로 사형에 처했고, 철학(플라톤)은 정치(아테네 민주정)에 대해 인류의 위대한 스승을 사형에 처했다는 이유로 맹렬히 비난했다.

 플라톤은 자신의 나라인 아테네보다 이웃 스파르타가 훨씬 더 이상적인 공동체라고 생각했다. 스파르타에서 시민들은 어려서부터 군사 훈련을 이수하고 단체 정신을 함양하면서 전사로 성장했다. 특히 스파르타의 공동 식사 제도는 유명한데, 맛없기로도 유명했다. 한 외국인은 공동 식사를 맛본 뒤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제야 스파르타인들이 전장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역설은 플라톤이 스파르타를 찬양했지만, 정작 스파르타는 플라톤과 같은 비판적 지성이 활동할 자유를 보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데 있다. 그는 스파르타 사람이 아니라 아테네 사람이었기에 우리가 아는 위대한 철학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플라톤은 아테네 민주주의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대중의 지배보다는 철학자-왕이 다스리는 유토피아를 꿈꿨다. 실제로 플라톤은 그런 철학자-왕의 후보를 시칠리아 섬의 그리스 식민 도시인 시라쿠사에서 발견하고 그를 가르쳐보려는 꿈에 부풀었다. 그는 총 세 차례에 걸쳐 시라쿠사에 갔다고 하는데, 그 시절에 시라쿠사로의 항해는 결코 녹록치 않은, 심지어 목숨을 건 모험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도시에서의 이상적인 실험은 실패했고, 플라톤은 환멸만을 안고 간신히 시라쿠사에서 탈출하여 아테네로 돌아올 수 있었다.

 플라톤의 이야기는 이상과 현실의 간극에 대해 말해준다. 이 대목에서 불가리아 출신 프랑스 비평가 츠베탕 토도로프의 감동적인 말이 생각난다. 그에 따르면, 사회 제도의 이상과 현실은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 제도에 완벽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 제도가 완벽하다고 강변하는 것은 전체주의적일 것이다. 우리가 받아들일 만한 사회는 이상과 현실이 다를 수 있음을 직시하고 실수와 결점을 인정하며 구성원들의 비판을 허용하는 사회다. 즉 토도로프의 생각에서 좋은 사회는 완벽한 사회가 아니라 열린 사회인 것이다.

 이런 생각은 사회만이 아니라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좋은 사람이 되고 좋은 사람과 어울리고 싶어 한다.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토도로프의 논리에 따르면, 좋은 사람이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열린 사람이다. 내가 옳다고 강변하는 사람은 독선적일 것이다. 열린 사람은 내가 틀릴 수 있음을 알고 부단히 배우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이는 일찍이 플라톤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말한 것이기도 한데, 앎은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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