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영웅을 찾는 사회
여전히 영웅을 찾는 사회
  • 장보민 편집국장
  • 승인 2016.06.07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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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의 안녕을 지키며 살지만 답답한 세상 억울한 마음에 누군가 나타나 이 미친 세상을 바꿔주길 바라지는 않습니까? … 대단한 결기와 분노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비겁하지만 않는다면 당신도 ‘갑’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평범한 당신이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지난달 7일에 종영한 JTBC ‘욱씨남정기’의 기획의도이다. 욱씨남정기는 갑질의 시대를 살아가는 을들의 고군분투기를 그린 드라마로 연장방송 이야기가 나올 만큼 좋은 시청률로 종영했다. 드라마 중 등장하는 ‘러블리 코스메틱’ 회사원들을 대상으로 매회 갑들의 횡포가 벌어졌다. 이를 참을 수 없는 주인공 옥다정의 갑질을 향한 한방은 드라마 방영이 끝난 후 매회 화제가 됐다. 주인공 옥다정이라는 캐릭터를 ‘욱씨’로 탈바꿈해 보여준 소위말해 속 시원한 사이다 발언과 거침없는 행동은 녹록지않은 현실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적당한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며, 따뜻한 위안도 안겨주었다. 얼마전 인기리에 종영한 KBS 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약자의 편에서 정의를 실현하고, 소위말하는 빽하나 없이 지검장부터 재벌까지 부정부패를 일삼는 이라면 누구나 처벌했다. 매 회 조들호의 대사는 명대사로 떠올랐다.

 지금껏 우리는 지극히 평범한 여주인공이 잘생기고 능력 좋은 남자주인공을 만나 인생역전을 하는 마치 신데렐라와도 같은 이야기에 환호했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만큼 우리에게 대리만족을 안겨줬기 때문이다. 여전히 우리는 ‘정의’를 실현하는 옥다정을 보며 환호한다. 그들을 통해 신데렐라와는 조금 다른 또다른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지난달 28일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19세 김모 씨가 스크린도어 수리 작업 중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된 사건이 발생했다. 정비업체는 수리전 역무실에 보고 후 2인 1조로 작업해야 하는데, 구의역 직원들은 어떤 작업인지 확인하지 않은채 스크린도어 열쇠를 건넸고 안전수칙을 준수하는지에 대한 감시는 이뤄지지 않았다. 적은 월급과 과도한 업무량으로 밥을 굶기 일쑤였지만, 관련업무가 서울메트로 자회사로 이관된다는 소식에 ‘공기업 정규직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으로 버텨왔다고 한다. 한편 이번 사건은 하청정비업체가 원청인 서울메트로의 퇴임 임직원을 특별대우로 채용하느라 저임금과 인력부족 문제가 발생했고 사고로 이어진 것으로 언론과 사회는 서울메트로의 갑질에 꿈많은 청년이 희생됐다며 분노하고 있다. 일부 시민들은 사고가 발생한 승강장의 스크린도어 앞에 국화를 놓고, 추모글이 담긴 포스트잇을 붙였다. 그리고 지난 4일 알바노조 소속 조합원들은 구의역 출구에서 집회를 열었다. “사고의 책임은 김군의 안전불감증이 아니라 반복된 사고에도 업무 매뉴얼을 지키지 않은 외주업체와 그 관리를 나태하게 한 서울메트로, 공기업 비용절감에만 관심이 있었던 정부에 있다”고 말하며 말이다.

 지난해 산업재해 사망자는 1천 800명에 달했고 김모 씨 같은 청년노동자의 죽음도 계속돼 왔었다. 김모 씨의 추모글이 담긴 포스트잇과 알바노조를 비롯한 노동자들의 외침 위에 드라마 속 을들의 외침이 겹쳐진다. 옥다정과 조들호 같은 인물이 나타나 이를 시원하게 해결해줬으면 좋겠다. 우리가 옥다정의 행보에 환호한 만큼 옥다정이라는 인물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오늘도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가 더 이상 그들을 기다리지 않는 사회가 왔으면 좋겠다. 처한 현실을 해결해줄 드라마 속 영웅을 찾고 기다리게 만드는 시대가 막을 내리고, 이들 드라마 속 영웅에 대한 환호도 작은 신드롬으로 마무리되었으면 한다. 여전히 영웅을 찾는 사회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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