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융합의 시대; 창조 혁명
[학술] 융합의 시대; 창조 혁명
  • 권순학 교수(공과대 전기공학과)
  • 승인 2016.06.07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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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과 인공지능(AI)간의 바둑 대결, 2016년 3월 9일 13시에 시작된 제1국 그리고 이어진 총 5번의 대국 결과 1승 4패를 당한 이세돌 기사는 대국이 끝난 후 이렇게 말했다. “내가 졌을 뿐 인간의 패배는 아니다”그러나 왜 사람들은 이 결과에 대하여 경이로움과 함께 두려움을 느끼며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알파고(AlphaGo)는 그리스 문자의 첫 번째 글자로 최고를 의미하는 '알파(α)'와 '바둑(碁)'의 영어 단어 'Go'를 합성한 것으로 데미스 허사비스(Demis Hassabis)가 2010년 영국 런던에서 '딥마인드 테크놀로지'라는 이름으로 설립한 회사를 2014년 구글에서 4억 달러에 인수하여 만든 구글의 자회사인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이다. 알파고는 1920개의 중앙처리장치(CPU)와 280개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이용하였으며 심층 신경망 기술에 기반한 '가치 네트워크'와 '정책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기계 학습과 트리 탐색 기술을 조합하여 인간과 자신으로부터 얻어진 자료를 감독 및 강화 학습하는 방식으로 훈련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이다.

 오늘의 우리가 이 대국을 지난 시간 속 수많은 대국 중 하나로 넘기지 않고 왜 그렇게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필자는 그 이유를 오늘의 우리는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영국에서 있었던 ‘산업혁명(아널드 토인비의 Industrial revolution)’을 능가하는 ‘창조 혁명(Creative revolution)’의 물결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여기서 필자가 명명한‘창조 혁명(Creative revolution)’은 아직 통상적으로 공고히 정의된 용어는 아니지만 추후 기회가 되면 이에 대하여 정리하기로 한다. 산업혁명은 당시 영국이 정치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석탄이나 철광석과 같은 풍부한 지하자원, 노동력 및 자본을 보유하고 있었고 영국 내외에서 면직물 수요의 급증이라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었기에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에 반하여 오늘의 세계는 어떠한가? 부족한 자원과 일자리, 양극화된 자본 그리고 개개의 정체성 및 독립성 강화라는 제한적 현실 속에서 인간의 삶과 수행 능력(performance)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20세기 중엽에 태동하여 창조 혁명을 이끌고 있 것이 융합과학(融合科學)이다.

 과학의 뿌리는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16세기 이전의 르네상스 시대까지만 해도 지식은 분화되지 않은 채 철학이라는 이름하에 존재하였고 학문 분화는 16세기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 그리스 철학이 중요한 이유는 우주의 본질적 질서를 논리적으로 성찰하고자 했던 당시의 사상이 후에 융합과학의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학문 분화 추세는 환원주의의 영향으로 더욱 가속화 되었으며 엄청난 양의 지식 발굴에 기여하였다. 16세기 이후 17~18세기의 계몽사상이라든가 오스트리아의 빈 학파의 논리실증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전개된 지식 통일 운동이 있었지만 20세기 전반까지 일반적인 학문의 추세는 세분화 전문화를 지향하고 있었다.

 20세기 중엽에 서로 별개라고 여겨졌던 다양한 학문들 간에 상호 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하나둘 밝혀짐에 따라 학문 간의 연계 및 융합이 활성화되어 과학 발달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20세기 중후반 생화학, 분자생물학, 진화의학, 계산언어학, 메카트로닉스 등등의 등장과 초고성능 디지털 컴퓨터, 인공지능 및 인지과학 분야의 급격한 발전은 마이크로 및 나노 수준의 세계뿐만 아니라 유전자부터 생명에 이르기까지 복잡하고 불확실하며 거대한 대상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초래하였으며 이는 학문 간의 융합을 가속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융합과학에 대하여 위키 백과*를 기반으로 상세히 알아보기 전에 2014년 출간된 졸시집 「바탕화면」(시학사 간)에 수록된 시 <비빔밥>을 소개한다.

 비빔밥=언제 저렇게/내려놓을 수 있을까//해도 달도 띄운 무지개거늘/눈 감은 한 입 위해/저리 활짝 웃으며 몸 던질 수 있을까//겉도 속도 서로 다른데 어찌/한데 모인 짧은 몸짓만으로/저 깊은 맛 낼 수 있을까//무얼 어찌하면/저리 될 수 있을까

 우리 전통 음식 중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만드는 사람과 재료에 따라 서로 다른 수많은 맛을 내는 것이 비빔밥이다. 비빔밥은 수십 종류의 재료가 한데 어우러져 오묘한 맛을 낸다. 그렇다고 하여‘비빔밥 맛을 결정하는 재료는 이것이다’라고 특정 할 수 있을까? 잘 알다시피 비빔밥의 맛은 어느 특정 재료에 의하여 결정되기보다는 다양한 재료들의 적절한 조합을 넘어선 융합으로 만들어진다.

 융합이란 무엇인가?= ‘융합(Convergence)’이라는 개념은 딱‘이거다’라고 명확하면서도 통일되게 정의되고 있지는 않지만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기술의 수렴과 학제적 연구의 개념에 초점을 맞추어 정의하고 있고 한국에서는 서양의 이러한 정의에 덧붙여 통섭의 개념까지 포함하고 있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융합과학은 철학에서 복잡하고 높은 단계의 사상이나 개념을 하위 단계의 요소로 세분화하여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견해를 말하는 환원주의(還元主義, reductionism)와 상반되는 개념으로 주어진 하나의 대상을 다양한 학문적 관점에서 각 학문의 개별적인 특성은 유지하되 각각의 요소를 모두 고려하여 서로의 공통 개념을 만들고 통합적인 탐구를 이루어내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융합과학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융합과학기술, 학제간 과학, 통섭으로 나누어진다.

 융합과학기술=융합과학기술은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여러 분야의 기술이 합쳐지지만 하나가 된 후 각각의 기술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병렬적 기술로 남아 있는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면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로 자연과학 분야의 온실가스 저감 기술 개발 연구, 사회과학 분야의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 정책개발 관련 연구 그리고 경제학 분야의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제시되고 있는 여러 기술에 대한 가치와 비용에 대한 연구 등등은 지구온난화 억제라는 주제를 서로 다른 분야가 각각 연구하고 각각의 분야를 유지하여 결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융합과학기술의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학제간 과학=학제간 과학은 대체적으로 단일학문의 범위를 벗어나는 크고 복잡한 주제에 대하여 관련된 다양한 과학기술분야가 단순한 부분의 합이 아니라 완전히 통합되어 하나의 융합된 연구를 하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 예로는 1938년 당시 모두 물리학자들로만 구성된 파리의 퀴리를 중심으로 하는 연구팀과 로마의 페르미 연구팀 보다 앞서 우라늄 핵분열을 발견한 방사화학자 오토 한, 물리학자 리제 마이트너 그리고 분석화학자 슈트라스만으로 이루어진 베를린 팀의 학제간 연구를 들 수 있다. 대표적 연구기관은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표현과 소통에 관한 교육과 미래를 학제간 연구 방식으로 연구하고 있는 MIT 미디어랩을 들 수 있다. 이 기관은 공학에 예술과 인문학 등 이질적인 학문을 접목시켜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용 즉 사용자 인터페이스 주제 관련 많은 연구 성과를 쌓아 왔다.

 통섭=1840년 윌리엄 휴얼(W. Whewell)이 「귀납적 과학」이라는 철학 책에서 처음 사용한 "Consilience"은 ‘서로 다른 현상들로부터 도출되는 귀납들이 서로 일치하거나 정연한 일관성을 보이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 후 Consilience은 잘 사용되지 않다가 1998년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Edward O. Wilson)의 저서 「Consilience : The Unity of Knowledge」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우리나라에서는 이 책을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가 「통섭, 지식의 대통합」으로 번역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번역에 있어서 통섭의 한자 표기를 ‘사물에 널리 통함’이라는 뜻을 가진 ‘통섭(通涉)’이 아닌 '큰 줄기를 잡다'라는 뜻을 지닌 ‘통섭(統攝)’으로 하였으며 지식의 대통합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연구 동향=융합과학에 관한 세계 각국의 연구 동향을 살펴보면 먼저 미국의 경우 미국 국립 과학재단이 나노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미래 과학기술의 틀을 모색하는 초기 단계에서 융합의 개념에 도달하여 일차적으로 GRIN(유전학(Genetic), 로봇공학(Robotics), 정보과학(Information Science), 나노공학(Nano technology))의 틀을 제시하였다. 이후 2001년 말에 유전학이 생명공학으로 확장되고 로봇공학이 정보과학에 포함되었다. 그 후 인지과학이 추가되어 2002년에는 NBIC(나노공학(Nano technology), 생명공학(Biotechnology), 정보과학(Information Science),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로 융합과학기술의 틀이 완성되었다.

 이후 유럽공동체가 2004년 유럽지식사회를 위한 융합과학기술(CTEKS: Converging Technologies for the European Knowledge Society)을 제시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도 2008년 삼성경제연구소가 국가가 주도해야 할 6대 미래기술로 지능형 인프라 구축, 바이오 제약, 청정에너지, 군사용 로봇, 나노소재, 인지과학을 발표하였는데 이는 해외 융합과학기술에 포함되는 과학기술을 모두 포함하였으며 서울대, 이화여대 등에서 융합과학에 대한 활발한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맺으며=미래에 기술 변화 속도가 급속히 변함으로써 그 영향이 넓어져 인간 생활이 되돌릴 수 없도록 변화되는 기점을 뜻하는 기술적 특이점(technological singularity)**이라는 용어를 처음 만든 미국의 버너 빈지(Vernor Vinge)는 1993년 '초지능(superintelligence)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인간은 더 이상 미래의 발전 속도를 예견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1999년 저서 「The Age of Spiritual Machines」에서 ‘수확 가속의 법칙’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도 초지능이 기술적 창조를 한다는 개념을 풀이함과 동시에 이러한 초지능의 기술적 창조 능력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져 우리의 인지 능력 범위를 벗어나 그 의도나 능력을 상상하거나 짐작하기 어려워 현재 인간이 미래의 기술적 특이점을 예측하기는 어렵다고 하였다. 이 두 미래학자는 기술적 특이점을 초래할 기술로 초지능을 꼽고 있는데 초지능의 실현은 이미 우리 앞을 지나 저 멀리 달려가고 있는 ‘알파고’를 볼 때 아주 먼 미래의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비록 융합과학이 기술적 특이점 이후의 인간을 위한 하나의 길이라 할지라도 융합과학 연구에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지적하듯이 단지 연구비만을 위한 무늬만의 융합과학 연구가 아니라 환상적 비빔밥과 같은 진정한 융합과학 연구가 이루어지려면 어떻게 해야만 할 것인가?  이에 대한 소견으로 2016년 「시와시학」 여름호에 실린 졸시 <그릇>의 일부를 소개한다.

 그릇=무엇이든 비우면/그릇이 된다/비우면 비울수록 큰/그릇이 된다/(중략)/비우려 채우는 무엇이든/그릇이 될 수 있다/채우면 채울수록 더 큰/그릇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마무리하면서 딥마인드의 최고경영자 허사비스가 ‘이세돌 vs 알파고’의 대국이 끝난 후 한 말 “인공지능은 인류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구축되어야 한다”를 맺음말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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