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사랑과 문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사랑과 문화
  • 이남영 기자, 하지은 기자
  • 승인 2016.05.27 21: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날로그적 사랑은 무엇일까? 고전적이고 아름다운, 느리지만 진실 된 것들에 대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손편지, 삐삐, 학보사 신문 등으로 이성과 사랑을 싹틔우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 시대의 과학 문명이 발달하는 속도만큼 이성 간 관계의 양상도 바뀌게 된다. 이에 우리 부모님 세대에는 어떤 사랑의 양상과 데이트 문화가 있었는지 이선화 교수(유럽언어문화학부)를 만나 들어봤다. 

 아날로그적 사랑의 특성에 대해=과거엔 기본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를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새로운 인연을 맺는 것을 어렵게 생각했고, 그 시절엔 연인을 만나면 결혼을 염두에 두고 만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그래서 이성과의 만남이 진지할 수밖에 없었으며 순결에도 높은 가치를 부여했다.

 기기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의 사랑의 특성은 ‘기다림’이다. 그래서 다양한 IT기기가 발달하고 있는 현대의 젊은이들에게는 기다림이 낯선 것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이 교수는 “소통의 도구가 없어 불편하고 싸움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지만, 훗날엔 모두 추억이 됐다. 오히려 즉각적인 소통이 가능한 현대에는 참을성이 결여된 것 같다”고 했다. 문명기기의 발달로 자기감정을 순화하고 상대방을 이해할 기회가 줄어든 것이다. 사랑에 있어 ‘기다림’이 상실된 사회에서 우리는 너무 직설적이고 노골적으로 변해가는 것은 아닐까? 이 교수는 현대의 사랑에 대해 ‘공허의 위기’를 강조하기도 했다. “썸 탄다, 간을 본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질적 깊이 없이 단순히 양적 다양함을 추구하는 사랑은 어느 시점이 되면 공허해질 것”이라며 우려했다.

 연인과의 만남 자체가 귀하던 시절=현재도 미팅이나 소개팅이 있지만, 과거에는 대학생들의 이성 간 만남의 방식이 대부분 미팅과 소개팅으로 이뤄졌다. 미팅 후에 애프터 신청을 해서 만남을 이어가는 식이었다. 또 연락이 쉽지 않아 상대방이 다음 약속에 안 나오면 하염없이 기다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바람맞았다, 맞췄다"는 표현을 자주 썼다고 한다. 지금처럼 소통의 도구가 많지 않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IT기기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절, 지금의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이 하는 역할을 과거엔 무엇이 하고 있었을까? 고유 번호로 녹음 음성을 보낼 수 있는 삐삐가 소통 방법의 하나였다. 8282(빨리빨리)나 1010235(열렬히 사모) 등 숫자로 연인들 간에 암호를 만들어 보내기도 했다. 이 교수는 “부모님이 계시는 거실에만 전화가 있어 모두 잠든 밤에야,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 시간씩 전화를 나누곤 했다”며 어렵게 성사된 통화인 만큼 무척 달콤했다고 전했다. 인터넷이나 메일이 활성화되지 않아 글로 마음을 전하는 소통의 방법은 손편지가 유일했다. 마음을 활자 하나하나에 꾹꾹 눌러 담아 흑연이 날릴 때마다 그대를 생각하던 밤이 있었다.

 대학교의 신문인 학보가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하기도 했다. 미팅이나 연합동아리에서 만난 이성 친구들에게 안부 인사나 호감의 표시로 학보를 우편으로 보내는 게 하나의 대학문화였다고 한다. 우편물로 보내기 위해 묶는 띠 안에는 간단한 메모를 적기도 했다. 학과로 온 우편물의 개수로 인기를 증명하기도 했다고 한다.

 아날로그 문화가 현대에 미치는 영향; 인간미, 낭만에 대한 노스탤지어=자신의 유년, 청춘에 그리움을 갖는 것은 태생적인 것이다. 우리 부모님 세대와 그 이전의 세대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인간미와 낭만이 있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곧잘 토로한다. 최근 대중문화에서 복고와 아날로그 문화가 주목을 받는 것을 보면 문화의 보편적 지점이 디지털 세대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술, 음악 등의 문화에는 전세대를 아우르는 공통의 감수성을 건드리는 보편적 지점이 있다. 원형적 테마인 고전에는 현대에서도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재구성의 씨앗이 담보된 것이다.

 기존에 시대의 흐름을 주도하는 문화는 20대들의 문화였다. 그런데 요즘은 고정관념에 연연하지 않고 기성세대는 자기의 옛것을 다시 향유할 기회를 얻게 된다. 문화의 저변 확대라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교수는 이것을 ‘문화라는 미명 하에 상품이 재탄생되는 비즈니스 논리의 흐름’으로 볼 수도 있다고 했다.

 아날로그적 사랑과 그 문화의 흐름에 대한 양상을 살펴봤다. 대학생활에서 기승전취업이 현실인 개탄스러운 오늘날,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야 할 청춘을 조금 더 진실된 사랑으로 채워보는 것은 어떨까.
 


“우연히, 우연히… 그러나, 반드시”


 영화 <클래식>은 사랑과 감성이 가득한 영화이다. 주인공 지혜(손예진)가 엄마(주희)의 옛 편지들을 보면서 과거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액자식 구성이다. 극 중 손예진은 엄마와 딸의 역할을 맡아 준하(조승우), 상민(조인성)과의 사랑이야기를 보여 준다. 편지로 밖에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없어 더 애틋한 마음, 시대 간에 이어지는 사랑의 모습들이 아날로그 감성의 극치를 보여준다. 고등학교 시절 주희와 준하의 사랑은 보다 서정적이며, 2000년대 초반 지혜와 상민의 사랑은 연극 동아리 선후배라는 낭만적인 설정에서 비를 맞으며 뛰어가는 장면의 익숙한 향수로 이어진다.

 지금 다시 봐도 촌스럽지 않고 제목 그대로 클래식한 영화다. 누구에게나 있는 첫사랑과 그 떨림의 시간들에서 진실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이것저것 재지 않고 오롯이 사랑만이 이 영화를 쥐고 흔든다. 주희를 바라보는 준하의 간절한 눈빛, 표정, 망설이는 감정들은 여자를 더 빛나게 해주며 그 사랑을 고스란히 표현해준다. 이 영화를 본 순간, 당신은 곧 사랑을 하고 싶을 것이다.


영화 <접속> 현대적 아날로그

 


“언젠가 만날 사람은 꼭 만난대요”


 컴퓨터가 보급화 되기 시작하던 97년, 전화상담원인 수현(전도연)과 라디오피디 동현(한석규)이 pc통신으로 대화를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ID ‘해피엔드’와 ‘여인2’가 인터넷 알고리즘 속에서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끼며 위로와 이야기를 쌓아나간다. 모니터 너머의 남자와 여자가 pc통신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통해 감성을 나눈다. 모뎀 통신상에서 우연히 대화하게 된 두 남녀가 현실에서 사랑을 이루는 해피 엔드를 다룬 영화 ‘접속’은 상영 당시 굉장히 획기적인 영화였다. 90년대의 서툰 pc체계 특유의 아날로그적 감성이 담긴 영화다.

 통신 속 만남이 빈번해지면서 그들은 어느덧 서로에게 빠져든다. 일체의 모든 관계로부터 자유로워진 이들은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만남을 벗어나, 함께 얼굴을 맞대고 영화를 보기로 약속한다. 이들은 실제로 만났을까? 서로를 볼 수 없고 오로지 디지털의 연결만으로 관계를 유지했던 이들은 정서적으로 본인들의 마음을 울렸던 그 실체를 만났을까?


영화 <캐롤> 결국 아날로그, 회귀

 


“오직 그 사람만 보이는 순간이 있다”

 필름 영화는 디지털 영화에 밀려 점점 옛것 취급을 당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이 영화는 필름 영화로 제작돼 우아하고 감각적인 감성을 느낄 수 있게 했다. 화려하거나 인위적이지 않고 장면이나 색감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 아날로그 정서를 피부에 실감 나게 느낄 수 있다. 동성의 사랑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인 여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영화는 현대의 상업영화 중 아날로그적 사랑이 특별하게 빛난다. 여러 가지를 따지기보다는 영화의 시선, 흐름만으로 충분히 아름답다. 영화를 보면 한순간에 사랑을 알아보고, 마음과 몸을 움직이는 삶을 동경하게 될 것이다. 서로를 사랑하는 순간에 듬뿍 빠져 보는 이로 하여금 감정의 동요를 느껴지게 한다. 마지막에 서로를 확인하고 바라보는 눈빛은 감정의 충만함, 그 절정을 느끼게 해준다. 아름다움, 사랑, 그것이면 충분한 아날로그의 총체인 영화다. 깊이 있는 영화의 미학을 담고 있어 조용히 나에게만 집중하고 싶은 날 보면 좋을 영화다.

사랑의 단상 -상실의 시대에 부쳐

 ‘사랑’이라는 말은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을 전하기에 이미 너무 낡았다. 사랑은 쉽게 정의할 수 없고 그에 대한 담론은 굉장히 다양하다. 그런데 오늘날 사랑의 담론이 지극히 외로운 처지에 있다는 내용을 담은 책이 있다. 바로 프랑스 사유 체계의 복잡 미묘한 활력의 개척자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이다.

 “때로는 어떤 재앙이 그 사람의 이미지를 영원히 멀어지게 하는 것 같다, 또 때로는 엄청난 행복이 나를 그것에 결합시키는 것 같다… 사랑의 상상계의 극단적 행위 안에서 이 상상계의 붕괴가 이루어진다. 망설이는 짧은 순간에 나는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구조를 잃어버린다.”

 나와 당신이 결합하는 순간, 상상계 안에서 그 사랑의 상상계는 붕괴된다. 이는 상실의 순간이다. 롤랑 바르트에 따르면, 결합의 욕구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인간은 늘 상실의 위험을 갖고 살아간다. 사랑을 하는 이들은 완벽한 사랑을 추구하기도, 그렇다고 마냥 바라만 보기도 슬픈 불쌍한 처지에 놓여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의 단상』은 ‘나’라는 주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롤랑 바르트는 외적 화려함으로 물든 현대적 사랑에서 ‘허상’을 지적한다. 그는 사랑이 수많은 사람에 의해 논해지기는 하는데, 그것은 언어들로부터 버려지고 세상의 실제적인 것으로부터 추방당했다고 했다. 사랑의 근본 주체인 ‘나’에 집중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돼버린 시대에서 ‘나’로의 회귀는 당신이 외롭지 않을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상실의 시대에, 아름답고 느린 아날로그의 미학이 당신의 사유 가운데에 머물러보길 바란다.
 

현대인의 사랑, 그 이면에 관하여

 과거에 ‘낭만적인 사랑’이 주류를 이뤘다면 현대사회는 어떨까? 안타깝게도 과거와 비교했을 때, 현대는 연애와 데이트 문화에 숨겨진 어두운 이면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일어난 계기와 향후 방향은 무엇일까?

 왜 이런 일들이 생기나요?=현대가 개방적인 사회로 바뀌면서 사랑의 이면에 관한 문제가 하나둘 씩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지게 보이는 것이 ‘데이트 폭력’이다. 지난 16일, 경찰청에 따르면 ‘데이트 폭력’ 대응강화 방침이 내려진 후, 총 2천 627명의 데이트 폭력범을 검거했다고 한다. 매년 약 7천 건 정도로 지속적인 데이트 폭력이 발생하고 있으며 특히 가해자 연령대는 20∼30대가 58.2%로 전체의 절반을 넘어선 수치다. 특히 2016년 경찰청이 발표한 ‘연도별 연인 간 폭력 현황’에 따르면 성폭행, 살인 등을 포함한 데이트 폭력은 작년 7천 692건이 발생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러한 현상들이 발생한 여러 이유 중 하나로 우리나라의 급진적인 사회변화로 인해 현대인들의 낮아진 자아 존중감(이하 자존감)을 들 수 있다. 우리 사회에 비교문화가 정착하며 과거에 비해 현대인들의 자존감은 크게 떨어졌다. 특히 본인 스스로가 자존감이 낮아졌기 때문에 어떠한 일을 수행할 때 용기를 쉽게 내지 못하고 이는 연애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송창민 작가는 “이러한 문화의 도입으로 스스로 남들과 비교함으로써 열등감을 느끼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했다”며 “온전한 사랑을 하려고 하기 보단 사랑의 증거를 찾아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연애 중에 애인에 대한 의심과 본인 스스로 열등감을 느낄 경우, 상대방에게 ‘사랑’이란 감정을 확인받기 위해 물질적인 사랑, 보여주기 식의 사랑을 추구하게 된다. 이것이 변질될 경우엔 집착, 스토킹으로 이어져 사랑이란 이름 아래 숨겨진 폭력이 될 수 있다. 이에 송 작가는 “물질적인 것으로 사랑을 측정한다는 자체가 본인이 소중한 존재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남들의 시선을 의식한다는 뜻이다”고 말했다.

 사랑의 어두운 이면으로 인해 가장 큰 상처를 받는 사람은 피해자다. 데이트 폭력으로 인한 피해 경험은 피해자에게 오랫동안 트라우마로 남아 사회적 관계의 약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생긴다. 이에 박태훈 씨(화학공2)는 “데이트 폭력은 사랑의 이면이 아닌 잘못된 행동인 것 같다”고 했다. 이러한 데이트 폭력에 대해 강용길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은 “사랑하는 사람은 나의 소유물이 아니다”며 “사랑은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이 근본임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연애는 해야 한다=본지의 취재 결과 대부분의 취재원은 현대의 연애 전망은 ‘그다지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이유로 현대의 20대들이 과거에 비해 사랑과 연애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경쟁사회로 변하며 살기 힘들어지자 많은 20대들이 연애를 미루고 취업에 힘쓰게 되면서 연애의 가치가 상당히 추락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송 작가는 “디지털 시대에 낭만적 연애가 줄었다고 느끼는 이유는 현대의 사람들은 감정적이기 보단 현실적 판단을 해버리기 때문이다”고 했다.

 또한 매체의 발달로 인해 현대인이 생각하는 이성의 기준이 상당히 높아졌다. 스마트폰을 통해 전 세계의 수려한 외모를 가진 이성들을 보며 자극에 길들여지는 것이다.

 하지만 취재원 대부분은 연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20대가 연애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로 연애는 상대방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학습과정이라는 것이다. 또한 연애는 상대와 소통하고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현재 우리 대학교 내 캠퍼스 커플들 모두 “연애를 하기 위해 이성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했다.

 연애는 상대에게 무언가를 해주는 것이 아닌 ‘내’가 연인 관계에서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는 과정이어야 한다. 이를 통해 스스로가 사랑을 유지할 수 있는 존재가 돼야한다. 나를 온전히 알고 가치를 발견해야 상대방에게 나의 존재가치를 심어줄 수 있고 연인과의 데이트는 가치교환, 즉 성장하는 만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나를 알아가고 상대방과 소통하는 연애, 당신은 현재 어떤 연애를 하고 있나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