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문학사’의 역사, 그리고 일본이라는 거울
‘일본문학사’의 역사, 그리고 일본이라는 거울
  • 최범순 교수(일어일문학과)
  • 승인 2016.05.23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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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문학사의 탄생
 일본의 문학사는 1890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탄생했다. 그리고 일본 문학을 지칭하는 말인 ‘국문학’은 문학사가 탄생하기 1년 전인 1889년에 처음 등장했다. 일본 근대의 시작을 알린 메이지 유신이 1868년에 일어났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의 내용은 믿기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는 사실이다. 1889년에 제국대학(현재 도쿄대학) 문학부에 ‘국문학과’가 처음 설치되면서 국문학이라는 용어는 유통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학사가 국문학과 커리큘럼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면서 최초의 『일본문학사』가 출판되었다. 근대 이전에는 문(文)을 배우더라도 그 내용은 대부분 사서오경과 중국 역사였다.

 1889년에 당시 일본에서 유일한 대학이었던 제국대학에 국문학과가 설치되고 1890년에 일본 최초의 문학사가 출판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부단히 서양의 정치-경제-사회-문화 시스템을 참조하면서 일본식 근대국가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했다. 그리고 메이지 정부는 1889년에 비로소 일본의 국가시스템을 총괄하는 ‘제국헌법’을 반포하고 이듬해인 1890년에는 제국헌법의 규정에 따라 최초의 선거를 실시해 ‘제국의회’를 개설한다. 제국헌법 반포와 제국의회 개설은 일본의 근대국가 시스템 구축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일본의 문학사는 바로 이러한 중요한 사건들과 때를 같이 해서 탄생했던 것이다.

 일본에서 국문학은 근대국가 시스템 구축과 연동해 일본의 국민 정체성과 문화적 정체성 구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시스템은 서양의 것을 모델로 삼았지만 정신까지 서양의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에서 새롭게 탄생한 일본 국민의 정신적-문화적 일체감을 형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문학은 활용되었고 그에 따라 ‘일본’이라는 정신적-문화적 정체성을 역사적으로 구축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일본문학사가 제국의회 개설과 같은 해에 탄생한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 비롯되었다.

 ‘문학사’라는 권력장(權力場)
 일본문학사가 일본의 근대국가 시스템 구축과 때를 같이 해 탄생했다는 사실은 일본문학사가 매우 정치적인 텍스트라는 것을 함의한다. 실제로 최초의 일본문학사를 집필한 제국대학 교수들은 ‘일본(인)’이라는 통일된 정체성 구축에 적합한 문학 텍스트를 중심으로 이전 시대 문학의 흐름을 재구성했다. 그 과정에서 이전 시대 사람들이 많이 보고 중요하게 여겼던 문학 작품들이 예전의 지위를 상실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 반대 경우도 적지 않았다. 문학사는 일견 한 나라 문학의 역사를 시대마다 차곡차곡 정리해 축적한 것이라고 여겨지기 쉽지만 실상은 근대국가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처음 정리되었고 그 과정에서 실제와는 달리 재구성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와 같은 문학사 탄생 양상은 비단 일본의 경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최초의 일본문학사는 메이지 시대 이전까지만 서술했다. 1891년부터 등장한 또 다른 문학사 텍스트들이 대부분 메이지 시대 당대 문학을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최초의 일본문학사는 대상 시기 측면에서 특징을 드러낸다. 여기에 하나 더 특징을 덧붙인다면 집필진의 사회적 지위를 꼽을 수 있다. 메이지 시대 이전만을 대상으로 삼은 최초의 일본문학사는 제국대학 교수들이 집필한 반면 메이지 시대 문학을 대상으로 삼은 동시대 문학사 텍스트는 민간의 문학자나 저널리스트들이 집필했다. 최초의 일본문학사가 관(官)의 문학사였다고 한다면 당대 문학사를 적은 텍스트들은 민(民)의 문학사였다고 할 수 있다.

 초창기 메이지 시대 문학사는 숫자만큼이나 서술방식이 다양했다. 어떤 문학사는 새롭게 문학을 유통시키기 시작한 신문과 잡지에 초점을 맞추었는가 하면, 다른 문학사는 메이지 시대 주요 사상가들의 문학관을 중심으로 서술했고, 또 다른 문학사는 메이지 유신 이후의 중요한 정치-역사 사건과 문학의 흐름을 연결시키기도 했다. 20여 년밖에 지나지 않은 새로운 시대의 문학 흐름을 다양한 관점에서 서술한 문학사 텍스트들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양상은 러일전쟁(1904~5)을 계기로 중요한 변화를 맞는다. 당대 문학사 서술 작업에도 관(官)이 관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도쿄 제국대학 교수 이와키 준타로(岩城準太郎)가 러일전쟁 직후인 1906년에 출판한『메이지 문학사』는 ‘순문학’이라는 관점에서 당대 문학 흐름을 정리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전의 메이지 문학사 텍스트들이 정치, 역사, 법률, 미디어 등 다양한 관점에서 당대 문학을 이해하고 정리하고자 했던 반면에 이와키 준타로는 자신의 문학사를 순문학에 한정한다고 책 첫머리에서 못 박았다. 그리고 그렇게 정리된 메이지 문학사에서 이전 메이지 문학사들이 주목했던 다양한 문학 작품들은 적지 않게 배제된다. 예를 들어 1880년대 문학의 중심을 차지했던 ‘정치소설’, 1890년 무렵부터 수도 도쿄에 출현한 도시빈민에 관심을 기울인 작품들, 청일전쟁(1894~5)에서 승리한 상황에서 그 이면의 사회문제에 주목한 ‘비참소설, 암흑소설, 심각소설’, 그리고 1900년대 전반기 ‘사회소설’에서 ‘초기사회주의 소설’로 이어지는 문학 흐름 등은 그 비중이 많이 축소되거나 배제되었다. 즉 일본 사회 내부의 문제점에 주목하면서 반성적이고 내부고발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이 ‘순문학’이라는 기준 아래 문학사에서 배제되었던 것이다. 문제는 ‘순문학’이라는 미명 하에 매우 배타적인 태도에 입각한 이와키 준타로의 메이지 문학사가 이후 일본의 메이지 문학사 서술방식과 교육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다. 이와키 준타로의 메이지 문학사는 제국의회 개설과 때를 같이 해 출판된 최초의 일본문학사가 그랬던 것처럼 매우 정치적인 배제와 선택에 기초해 구성된 텍스트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텍스트들이 집필자의 사회적 지위에 힘입어 권위적인 문학사 텍스트와 교재로 자리 잡아가는 과정은 일본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치르면서 제국주의를 강화해갔던 과정과 정확히 겹친다.

 선택과 배제, 기억의 재구성
 메이지 시대의 일본문학사 텍스트를 둘러싼 상황은 시간을 뛰어넘어 현대 일본사회 이해와도 연결된다. 메이지 시대 문학사 텍스트를 둘러싼 상황은 현대 일본사회에서 불거진 역사 서술과 역사 교육을 둘러싼 상황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최초의 일본문학사는 통일된 국민 정체성과 동질의 문화 정체성을 일본 국민에게 심기 위해 이전 시대 문학 텍스트들을 선택과 배제에 기초해 재구성했는데 이러한 선택과 배제는 ‘기억의 재구성’에 초점을 둔 것이었다. 문학사를 포함한 역사 서술과 교육에서 ‘무엇을 기억시킬 것인가’라는 선택은 ‘무엇을 기억에서 지울 것인가’라는 배제와 짝을 이룬다.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주도하고 일본 정부가 암묵적으로 후원한 역사교과서는 일본의 제국주의 역사가 주변국에 입힌 상처를 일본 국민들의 기억에서 지우려는 텍스트이다. 달리 표현하면 기존의 반성적인 역사 교육을 ‘자학적’이라는 말로 부정하면서 이른바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방향으로 역사적 기억을 재구성하려는 텍스트인 것이다. 이는 러일전쟁 직후에 이와키 준타로의 메이지 문학사가 일본 사회 내부의 문제점에 주목하면서 반성적이고 내부고발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을 배제시키면서 문학사를 구성한 것과 마찬가지 작업인 것이다.

 나는 일본근대문학사 강의 마지막에 항상 ‘아이누 문학, 재일(在日) 문학, 오키나와 문학’을 언급한다. 아이누 문학은 일본 열도의 선주민이었지만 지금은 홋카이도 지역에서만 그 흔적의 일부를 확인할 수 있는 아이누인의 동화 같은 상상력을 담은 문학 세계이다. 작품에는 연어, 곰, 여우, 다람쥐, 나무, 별과 같은 다양한 자연 속 존재들이 등장하고 그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았던 아이누인의 문화와 정서가 잘 담겨져 있다. 좋은 동화를 읽은 기분을 주는 작품들이 많다. 하지만 일본문학사 어디에도 아이누 문학에 대한 서술은 없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재일 문학과 오키나와 문학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어느덧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니게 된 재일 문학도 분명 일본근대문학임에도 불구하고 일본문학사 교재나 강의에서 언급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마찬가지로 메이지 시대 초기에 일본에 복속되어 많은 차별을 받아 온 오키나와의 역사와 문학을 언급한 일본문학사 텍스트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기억에서 배제하기 측면에서 보자면 일본이 1945년 이후 역사에서 한국 전쟁을 언급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일본의 학교교육 현장에서 패전 이후의 역사는 주로 1955년 이후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는 1955년이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패전 복구 완료를 선언한 해라는 사실과 일본이 이른바 고도경제성장기를 맞이하기 시작한 해라는 사실 등이 작용한 결과이다. 참고로 일본의 자민당이 탄생한 것도 1955년이다. 많은 일본인들의 역사적 기억에서 1945년부터 1955년에 이르는 10년은 그 존재감이 미미하며, 그로 인해 1952년까지 미국이 일본을 점령했다는 사실과 그와 맞물린 한국 전쟁과 일본의 관계는 배제에 가까울 정도로 언급되지 않는다.

 일본에 비친 한국, 한국에 비친 일본
 일본에 대해 공부하면서 “일본에게 한국은 무엇인가”라는 화두 같은 질문이 떠올랐다. 그리고 한국이라는 거울에 비친 일본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한국이라는 거울에 비친 일본의 자화상은 마주하기 불편한 모습이 많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한국은 일본에게 많은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소중한 존재이다. 그리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일본에게 한국은 무엇인가”에 앞서 내 안에는 “한국에게 일본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먼저 있었다. 이는 “한국 사람이 왜 일본 사람들도 잘 모르고 어려워하는 메이지 시대를 공부하세요?”라는, 유학 시절 나를 가장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일본 시민들의 질문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 질문에 대한 내 나름의 답은 앞으로도 계속 채워가야 하겠지만, 자국 문학을 지칭하는 용어로 ‘국문학’을 사용하는 국가가 일본과 한국뿐이라는 사실, 한국 사회에서 많은 우려를 불러일으킨 일본의 ‘새로운 역사교과서’ 집필 진영이 구사한 표현들이 최근 한국의 역사교과서를 둘러싸고 그대로 재연되는 상황, 혹은 최근 경기 침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처방으로 내놓은 정책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것을 보도하는 수사법까지 아베 정권을 쏙 빼닮은 모습, 게다가 최근 한국의 대학정책이 고이즈미 정권 및 아베 정권의 그것과 많은 부분 닮았다는 사실들은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일본이라는 거울에 비친 한국의 모습, 그 속에는 분명 우리의 불편한 민낯이 많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한국 사회가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소중한 존재이다. 서로의 불편한 모습을 비추어주는 한국와 일본, 그 불편함 속에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상대의 상처를 보듬기 시작할 때 한일 관계는 좀 더 깊어질 것이다.

▲ 1906년에 출판된 이와키 준타로의『메이지문학사』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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