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경험에 몰입하다...가상현실(VR)
새로운 경험에 몰입하다...가상현실(VR)
  • 안의진 교수(언론정보학과)
  • 승인 2016.05.11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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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영상 미디어가 만들어 낸 가상세계에 몰입하며 그 내용을 즐기고 경험해 왔다. 예를 들어 영화 ‘국제시장(2014)’을 보는 관객들은 6.25 한국전쟁의 시간과 공간 속으로 몰입되는 것을 경험 할 수 있으며, 자신이 속한 현실을 잊고 주인공인 ‘덕수(아버지)’와 더불어 그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존재하는 듯한 환상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TV나 영화의 이러한 능력은 영상 미디어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상상 속의 즐거움에 빠지게 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영상미디어의 이런 능력을 극대화하는 새로운 매체가 인류사회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뉴스에 자주 언급되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 미디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VR을 사용해본 사람들의 반응은 무척 뜨겁다. 다음은 VR을 처음 경험한 어느 기자가 사용 경험을 적은 글이다.

 “그것은 신세계였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봐도 사방으로 가상현실이 보였고, 내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 변했다. 무릎을 굽혀 앉으면 물체가 올려다 보이고, 가까이 다가가면 커 보였다. 가상이라고 생각하기 힘들만큼 생생했다. 가상현실에서 나는 시가지 전투의 한 가운데 놓여있었다. 미사일을 쏘는 거대로봇에 맞서 군인들이 싸우고 있는데, 느린 화면으로 총알이 날아다니는 게 보였다. 로봇이 박살 낸 건물에서 돌이 튀어 눈앞으로 다가오는데 나도 모르게 손을 휘저으며 옆으로 피했다(과학동아 기자 변지민, 2015)."

 영화나 TV 등 기존의 미디어에서도 경험할 수 있었던 가상현실은 이처럼 VR의 등장으로 질적으로 완전히 색다른 경험을 가능하게 해주고 있다. 그 강력한 효과에 가장 발 빠르게 반응하고 관심을 기울이는 산업 영역은 게임과 포르노 업계이다. VR 포르노를 관람한 남자들은 “만질 수는 없지만 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했다”, “진짜 서로 교감하는 느낌” 등의 놀란 소감을 표현한다. 최근에는 게임과 포르노뿐만이 아니라 여행, 교육, 저널리즘, 의료 분야 등 다양한 비즈니스 영역에서 VR이 적극적으로 활용되어 그 여파가 확장되 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VR은 우선 기계적인 측면에서 기존의 영상 미디어와 차이를 보여준다. 기존 영상 미디어와 다르게 VR은 사용자가 헤드셋을 착용한다. HMD(Head Mounted Dispaly)로 불리는 이 헤드셋은 몇 가지 주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 첫째는 사용자의 시각과 청각을 제한시켜 오로지 HMD 안에서 제시되는 시청각 자극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도록 만든다. 둘째는 HMD 안에서 제시되는 시각적 내용을 3D입체로 경험케 한다. HMD를 착용한 사람의 왼쪽 눈과 오른쪽 눈에 약간의 각도적 차이(binocular disparity)가 나는 영상을 보여 줌으로써 마치 인간의 두 눈이 실제 사물을 보는 것과 같은 상황을 만들어 3D 입체감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HMD 사용자의 머리 움직임을 인식하고 그에 연동된 비주얼을 보여 줌으로써 사용자로 하여금 가상현실의 상호작용적 느낌을 구현시켜 준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HMD가 기계적으로 발전된다면 앞으로는 안경과 같은 형태로 진화할 수도 있으며, 혹은 인간의 눈에 착용하는 렌즈의 형태로 변형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HMD 헬멧기구는 VR 구현을 위해 미래사회에서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될 것임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실제로 최근 LG전자에서 개발한 ‘LG360VR’은 무게가 118g 정도로 가볍고 모양도 헬멧이 아닌 안경과 같은 형태로 출시된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왜 가상현실을 보며 실재감을 느끼는 것일까?
 VR이 주는 흥미로움은 커뮤니케이션 학자들에게 하나의 이론적인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우리는 왜 가상현실을 보며 실재감을 느끼는 것일까? 분명히 실재가 아닌 허구적 영상이라는 걸 알면서도 진짜처럼 반응하기 때문에 이러한 궁금함이 생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VR을 사용했던 과학잡지 기자가 자신에게 튀어오는 돌덩이를 손을 휘저으며 피했다는 점은 사실 모순적인 반응이다. VR사용자들은 영상 속의 그 돌이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따라서 위험하지도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손을 휘저으며 피하려는 행동을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행동적 반응뿐만이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 생리적(맥박이 빨라지거나 땀이 나는 등)으로 흥분하거나, 심리적으로도 두려운 감정 반응까지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모순적인 반응이 왜 일어나는지를 설명하는 연구들은 그리 많지 않다. 예를 들어 미국의 리브스 교수와 내스 교수는 인간은 작은 화면보다는 큰 화면에서, 정적인 물체보다는 움직이는 물체에서 더 실재감을 느끼며 이는 모두 진화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크거나 빨리 움직이는 물체들은 인간에게 위협이 될 수 있으므로 자신도 모르게 뇌가 반응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며 따라서 미디어가 만든 비주얼에 인간이 반응하는 이유도 모두 진화적으로 형성 된 자동화된 뇌의 작용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너무나 순간적으로 돌이 날아와서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으로 피했다면 이러한 설명이 이해가 되겠지만 가상현실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의식적인 상황에서 이뤄지는 것들이다. 왜 VR사용자들이 자신의 의식상의 믿음(영상적 허구라는 믿음)과 어긋나는 반응을 보이게 되는지는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블랙박스로 보여지는 VR사용자의 인지과정(cognitive mechanism)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가상현실 효과에 대한 철학자들의 논쟁 
 흥미롭게도 1970년대부터 철학자들도 영화나 TV에 의해 경험되는 가상현실의 모순적 현상에 주목하고 그 해답을 위해 논쟁을 벌여왔다. 철학자 래드포드는 1975년 그의 논문을 통해서 관객이 영화의 허구적 인물과 사건에 대하여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모순적”이라고 규정했다. 그가 제시한 세 가지 전제를 VR사용자의 맥락에 맞춰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VR사용자가 자신에게 날아오는 돌덩이에 의해서 공포감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공포의 대상인 돌덩이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2)VR사용자는 가상현실의 그 돌덩이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지 않는다. 그러나 (3)가상현실의 돌덩이는 VR사용자에게 공포감을 이끌어 낸다. 이상의 세 가지 전제는 각각 틀림이 없는 명제이지만 서로를 조합해 보면 모순이 되는 결과를 낳는 것을 볼 수 있다. 래드포드는 만일 세 가지 전제에 문제가 없다면 결국 가상현실을 사용하며 감정적으로 반응을 하는 미디어사용자(인간) 자체가 모순적이고 비이성적인 존재라는 받아들이기 힘든 결론을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엉뚱해보이는 결론은 모순적인 현상을 설명하기 보다는 현상을 묘사하는 것에 그치고 있어서 많은 다른 철학자들의 이론적 주장을 촉발하게 된다. 

 가장 먼저 제기된 이론적 흐름은 환영이론(Illusion theory)의 입장이다. 시인이자 철학자인 콜러리지는 유명한 “자발적 망각(willing suspension of disbelief)”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콜러리지의 주장을 VR 맥락에서 이해하자면 VR사용자는 가상현실 속에서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돌덩이가 실제로 존재 하지 않는다는 믿음(disbelief)을 미디어 내용을 즐기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중단(willing suspension)한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VR사용자는 그 돌덩이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게 되며, 결론적으로 돌덩이의 존재를 믿기 때문에 공포감을 느끼게 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환영이론은 많은 학자들로부터 심각하게 비판을 받았다. 철학자 월튼이 반박한 것처럼 만일 미디어 사용자가 미디어 내용이 조금이라도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다면 그 감정적 반응은 너무나 감당하기 힘든 것일 것이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영화에서 드라마적 갈등을 위해 제시되는 살인, 지진, 테러 등의 내용은 만일 관객이 그 내용을 실제라고 믿는다면 영화관에 앉아 있을 수 없을 만한 것이며 감정적 반응은 극한에 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공포감으로 인해 영화관에서 도망을 가거나 혹은 경찰을 부르는 등의 행동 반응을 보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발생하지는 않기 때문에 환영이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미디어 사용자가 미디어의 내용을 실제라고 믿는다는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자 이외에 많은 영화이론가들이나 영화감독들은 영상매체는 관객에게 환영적 믿음을 만들도록 제작된다는 주장을 하며 환영이론의 시각을 유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환영이론의 주장을 비판하는 미국의 철학자 캐롤은 대안으로 미디어 이용자의 인지적 생각 혹은 상상에 의해서 감정을 경험할 수 있다는 사고이론(thought theory)을 제안하였다. 이는 마치 맹수가 눈앞에 있다는 생각만으로 감정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것처럼, 가상현실에서 주인공에게 돌진하는 돌덩이의 위협적 모습을 보며 VR사용자는 자신이 당하게 될 처 참한 결과를 생각하거나 상상함으로써 공포감을 경험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고이론에 대한 중요한 비판은 가상현실의 이용자가 왜 허구에 반응하는가에 대하여 사고이론은 실제로 설명하는 것이 없다는 점이다. 생각 때문에 감정반응을 한다고 주장하지만 생각이라는 것 또한 실체(물리적 돌덩이 같은)가 아닌 영상과 같은 허구적 내용일 뿐이기 때문이다. 당초에 제기된 질문이 허구(영상비주얼)가 어떻게 인간의 반응을 촉발시키는가인데, 생각도 실재가 아닌 허구이기 때문에 사고이론은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없다는 비판이다. 따라서 생각만으로 반응할 수 있다면 생각이 어떻게 반응을 유도하는지 그 인지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야할 것이다.

 가상현실 사용자의 인지 매커니즘에 대한 이해
 지금까지 가상현실의 패러독스적 현상을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아직까지 어떤 이론도 지배적이거나 만족할만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해 VR사용자의 인지 매커니즘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저자 또한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해답을 찾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 보았다. 우선 인간의 믿음체계와 별도로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인지과정을 상상해 보았다. VR사용자가 자신에게 날아드는 돌덩이를 피하려고 손을 휘저으며 몸을 수그린다는 사실은 그 사용자가 그 돌덩이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돌덩이가 존재한다는 생각도 없는데 몸을 피하려고 수그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따라서 돌덩이가 눈앞에 존재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하지만 VR사용자는 그 돌덩이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돌덩이가 존재한다는 생각”은 믿음과는 전혀 관련 없는 생각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돌덩이가 존재한다는 생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인간의 논리적인 사고체계는 그 돌덩이가 영상적 허구라고 판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돌덩이가 존재한다는 생각이 어떻게 머리속에 발생하는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 

 기존 문헌을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 요인들이 해답으로 가능성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많은 학자들이 비주얼의 생생함(vividness), 상호작용성(interactivity), 서사성(narrative) 등에 의해서 VR의 수용자 효과가 커지는 것을 보고하고 있다. 이처럼 VR미디어의 매체특성, VR컨텐츠의 특성, VR사용자의 특성 등 다양한 요인들이 VR효과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많은 연구들이 보고하고 있지만, 왜 허구의 영상 내용을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하는지 이론적인 설명이나 이해는 찾기 힘들다. 

 앞에서 저자가 언급한대로 가상현실의 존재에 대한 생각이 사용자의 반응을 유도 한다면 그러한 생각이 어떻게 생성되는지 밝히는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가상현실이 허구인 것을 알고도 반응하는 현상을 고려한다면 인간의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사고체계에 의한 것이 아닌 감각적 혹은 지각적 과정을 거친 생각일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으며 결론적으로 어떤 지각과정에 의해서 구성되는 인지 내용인지를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현상적으로 대중적 흥미를 주는 가상현실 미디어의 인기는 커뮤니케이션 학자들에게는 사용자의 인지 매커니즘을 이해하기 위한 이론적인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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