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 '토고'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 '토고'
  • 편집국
  • 승인 2007.05.07 15: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대인의 국제활동

‘토’할 것같이 덥고, ‘고’생문이 확 열려 있을 나라 토고. 나는 Goodnews Corps(국제청소년연합의 해외봉사활동프로그램)을 통해 토고에서 1년간 살다 왔다.

 홍콩, 케냐, 가나를 거쳐 토고의 수도인 로메의 땅을 처음 밟는 순간 사우나실 문을 막 열었을 때의 느낌과 흡사했다.
 똥, 쓰레기더미가 너저분하게 흐트러져 있는 흙길, 금방이라도 고장날 것처럼 쾌쾌한 연기를 뿜어대는 낡은 자동차, 붕붕거리며 어디든지 질주하는 오토바이, 길거리에 서서 소변을 보던 여자들, 10원짜리 ‘아쵸’라는 나무 열매가 담긴 광주리를 머리에 인 채 아기를 업고 뜨거운 햇빛 아래를 걸어다니는 어린 십대 소녀들을 보면서 로메가 토고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규모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가다가 낡은 양철을 덕지덕지 붙여 만든 집에 들어가 보면 ‘정말 집인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그런 집도 없어서 길거리에 ‘빤느’라는 천을 덮고 사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던지…
 토고에서는 옥수수 가루가 음식의 기본이다. ‘라빠뜨’라는 옥수수 반죽에 토마토 소스, 곰보 소스들을 얹어 손으로 먹는다. 뜨거운 빠뜨를 손으로 떼어먹는 게 힘들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손가락으로 가위처럼 잘라먹는 요령도 생겼다. 특히 콧물처럼 늘어지는 곰보 소스와 함께 먹을 때면 너무 행복했다.
 월드컵을 통해 토고 사람들은 한국이라는 나라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매주 로메대학교(토고에는 로메대학교와 카라대학교, 단 두개의 대학교가 있다)에서 열리는 한국어 클래스, 영어 클래스, 태권도 클래스에는 늘 많은 학생들이 있다.
 나는 그 곳에서 한국어 클래스를 맡아 인사말부터 가르쳤다. 토요일에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위한 클래스를 담당하였고, 일상대화를 만들어서 영어를 가르쳐 주기도 하였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노래를 가르쳐주고, 준비해 간 색종이나 크레파스를 이용해서 만들기 교실도 하였다. 아이들은 난생 처음 색종이를 들고 너무 기뻐하며 비행기를 만들었다.
 11월 말에는 ‘컬쳐’라는 주제로 프랑스 대사관 소속의 프랑스 문화원에서 토고 사람들을 위한 문화공연을 했다. 토고, 한국, 미국, 일본, 중국, 인도 등 각 나라의 전통 춤와 부스를 만들었다. 로메대학교 학생들이 자원봉사를 담당하여 함께 춤도 추고, 부스도 만들며 우정을 나눌 수 있었다.
 그곳 친구들은 한복을 입어보고서는 ‘덥지만 너무 예쁘다’고 했다. 이런 행사를 위해 우리는 한 달 전부터 스폰서를 받으러 토고에 진출해 있는 다국적기업의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다.
 인도 사람, 레바논 사람, 프랑스 사람, 토고 수자원 공사 사람들의 스폰서를 직접 얻어내고, 우리 손으로 준비한 ‘컬쳐’에 많은 토고 사람들과 외국인들이 참여해 기쁨을 나눌 수 있었다.
 토고에는 나의 잊을 수 없는 엄마, 마리에뚜가 있다. 그녀는 수도인 로메의 가장 큰 시장에서 토마토 소스, 담배, 마카로니, 물을 파신다. 토고에서는 교통수단 없이 주로 보행을 하였는데 나의 토고 엄마는 내가 1시간 넘게 걸어올 때마다 내게 10원짜리 물을 손에 쥐어주셨다. 플라스틱 통이 아닌 비닐봉지에 담긴 물이다.
처음에 나는 별로 귀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6월의 어느 날 나는 마리에뚜를 도와 물건을 판 적이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물을 팔기 위해 기다렸지만 겨우 7개정도가 팔렸다.
 그 때서야 깨달았다. 10원짜리 물이 보통 물이 아님을. 마리에뚜는 내가 그녀를 도왔던 그 날 삶은 계란이 얹어진 밥을 사주셨다. 삶은 계란 100원, 밥 100원. 그날 난 참 많이 울었다. 삶은 계란은 내가 토고 와서 가장 먹고 싶었지만, 너무 비싸서 먹을 수가 없었다. 내게 그 계란 하나 사주기 위해 마리에뚜는 10원짜리 물을 10개 팔아 자기의 치마천에 동동 감아놓으셨던 것이다. 계란은 한국 돈 100원이지만, 나는 금보다 더 귀한 사랑을 받은 셈이었다.
 ‘아딱바메’라는 시골에서 3주간 지내면서 지붕 없는 야외 샤워실에서 샤워를 하며 밤하늘을 보면 수많은 별들이 어두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런 아름다운 광경들을 보면서 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오직 나를 위해 공부하고, 성공해서 행복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지 마지막은 씁쓸한 허무로 마음에 커다란 구멍이 났었다.
 같이 ‘빠뜨’도 먹고, 우물물도 기르고, 춤도 추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며, 내 마음을 사간 그들!
 나는 토고 사람들의 잊을 수 없는 넓은 사랑으로 마음이 녹아 정말 행복했다.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처럼 토고 사람들은 나의 어두웠던 마음을 가득 채워줬고, 그 별들은 지금도 내 마음속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내 마음의 고향인 토고에 사는 내 사랑하는 가족들이 너무 보고 싶다.

이순향(영문 3)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