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人3色 강 따라 사람 따라
3人3色 강 따라 사람 따라
  • 이남영 기자
  • 승인 2016.03.14 11: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남영 기자의 '장인을 만나다'
▲ 술 만들기 체험 후, 김연박 전수자와 이남영 기자의 모습
▲ 밤의 월영교 모습
▲ 증류기로 민속주 안동소주를 내리고 있다

술 장인을 만나러 가며

 취업포털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국내 4년제 대학생 1,013명을 대상으로 “겨울방학 동안 해보고 싶은 로망은 무엇인가?”라는 설문을 한 결과, 전 학년 모두 ‘해외 배낭여행’을 1위로 꼽았다.

 유명작가인 조지 산타야나는 “길을 떠나기 전 여행자는 여행에서 달성할 목적과 동기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본지 문화부 기자들은 새로운 프로젝트로 여행 연재 기획을 준비했다. 그 첫 번째 여행은 이남영 기자의 ‘장인을 찾아서’다. 이번 여행의 주인공은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12호이자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20호 ‘안동소주’ 제조자를 만나러 안동으로 떠났다.

 앞서 대구에서 진행된 인물면 취재 일정이 끝나자마자, 문화부 기행을 떠나게 됐다. 취재 일정이 겹친다는 부담감과 동시에, 올해 문화부 프로젝트의 첫 선두주자로서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인물면 인터뷰가 끝난 후, 바로 대구 북부터미널로 향했다. 안동행 오후 12시 시외버스를 타서야 비로소 기행을 간다는 것이 실감났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면서 설레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사전 조사에 따르면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12호이자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20호인 민속주 안동소주 제조자는 조옥화 여사다. 하지만 94세의 고령으로 인해, 이제 그녀의 아들인 김연박과 며느리 배경화에게 제조기술을 전수했다. 조상 대대로 이어 온 우리나라 전통주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처음 김연박 전수자에게 인터뷰와 술 만드는 체험을 요청할 때도 걱정과 다르게 흔쾌히 응해주셨던 생각을 하니, 아침에 짓누르던 부담감은 어느새 좋은 기행문을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으로 변했다.

 금세 안동에 도착해 안동터미널을 구경하는 것도 잠시, 내리자마자 전수자가 있는 안동소주전통음식박물관으로 갔다. 박물관은 안동소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통음식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조옥화 여사가 안동소주 제조자일 뿐만 아니라, 전통요리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특히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안동을 방문했을 때, 조옥화 여사가 그녀를 위해 마련한 생일상 모형을 보니 ‘나도 저런 잘 차려진 음식을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물관에 전시된 660여 점의 전시물을 보며 신기해하는데 박물관 학예사가 우리에게 “영남대학교 신문사에서 왔나요?”라고 물었고 그렇다고 대답했다.

 “선생님께서 기다리고 계세요”
▲ 김연박 전수자

 장인을 만나러 가기 전까지, 보통 장인은 약간 깐깐하고 무서운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실제로 만난 장인의 전수자는 옆집 아저씨처럼 친근했다. 술 빚는 일로 평생을 살아온 김연박 전수자를 통해 그동안 궁금했던 민속주 안동소주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김연박 전수자는 과거 신라시대 때부터 전승되어온 안동소주가 1910년부터 한일합병으로 인해 80년 동안 단절됐었다고 했다. 그는 옛날부터 많은 외래주가 우리나라에 유입되는 것을 지켜보며, 자손 대대로 우리 술을 계속 전승·보존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한다.

 술을 빚으면서 좋은 일과 힘든 일이 있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 전수자는 한마디로 ‘정성을 들이는 일’이라고 운을 뗐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소주는 희석식 소주와 증류식 소주로 나뉘며, 상대적으로 증류식 소주가 더 정성이 들어간다고 한다. 증류를 하면 한 번에 많은 술이 나오지 않고, 한 방울씩 나오기 때문에 사람의 인내심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상당한 정성이 들어가는 것을 보면 술이 귀하지만, 동시에 많은 정성이 필요하므로 계속해서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힘든 점이라고 했다.

 민속주인 안동소주는 작년 11월, ‘2015 대한민국 명가명품 대상’을 받았다. 이에 대한 소감을 묻자 김 전수자는 “여러 심사위원의 공정한 심사를 통해 이런 상을 받아 영광스럽다”며 기쁜 마음을 표했다. 한편으론 품질관리를 잘해서 앞으로도 좋은 술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하는 장인을 보며, 민속주 안동소주를 포함한 우리나라 전통주의 장래가 밝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조상 대대로 술 제조법이 내려오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했다. 이에 김 전수자는 “외국 술이 우리나라에 많이 들어오고 있지만, 안동소주는 어떤 측면에서 봐도 뒤처지는 면이 없다”며 안동소주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더불어 “옛날에는 사람들이 안동소주에 대해 잘 몰랐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전보다 우리 술을 많이 알고 있다”며 “더 많은 사람에게 우리 술을 알리고, 세계화하는데 앞장서겠다”고 당당한 포부를 밝혔다.

▲ 누룩 만들기

 

 ① 누룩 만들기
 말린 생밀을 적당히 부숴서 물을 넣어 섞는다. 그 후 누룩 틀에 모시 보자기를 깔고 혼합된 재료를 넣은 후, 별도의 보를 한 장 얹어 발로 밟았다. 전수자는 내 발이 작아서 다행이라며 모양을 다 잡은 누룩을 틀에서 꺼냈고, 그 누룩은 20일 정도 띄운다고 했다.

▲ 고두밥 만들기

 ② 고두밥 만들기
 고두밥을 만들 때는 우선 잘 씻은 쌀을 물에 불린 후 시루에 쪄서 밥을 만든다. 멍석 위에 다 찐 고두밥을 깔고 그늘에 넓게 펴서 식힌다. 점심을 못 먹은 상태라 몰래 고두밥을 주워 먹다가 그 모습을 본 장인이 그만 먹으라며 웃으셨다.

▲ 전술 만들기

 ③ 전술 만들기
 식힌 고두밥과 숙성시킨 누룩에 적당량의 물을 넣어 섞는다. 생각보다 차가운 물에서 이것들을 섞는데, 손이 어는 듯한 고통이 전해졌다. 이렇게 섞인 것들을 항아리 안에 담고 약 15일 이상 자연 숙성시키면 전술이 된다고 한다.

▲ 소주 내리기

 ④ 소주 내리기
 발효된 전술을 솥에 넣고 솥 위에 소줏고리와 냉각기 역할을 하는 그릇을 놓는다. 증기가 새나가지 않도록 틈새마다 밀가루 반죽을 바른다. 냉각기 역할을 하는 그릇 안에 차가운 물을 붓고 불을 때면, 소줏고리 관을 통해 증류식 소주가 흘러나온다.

 

 민속주 안동소주를 만들고 장인과 얘기하다 보니 벌써 저녁 시간이었다. 허기도 달래고 안동을 구경할 겸 외국 관광객이 꼭 가봐야 할 '글로벌 명품시장'이자 중소기업청의 특성화시장 사업에도 선정된 안동구시장을 찾아갔다. 안동구시장은 조선 후기에 형성된 안동시의 가장 오래된 재래시장으로, 현재 시장의 유명골목은 찜닭 골목과 떡볶이 골목이다.

 찜닭 가게에 들어가 2~3인분의 찜닭을 시켰는데, 평소 시켜먹던 찜닭과 달리 양이 많고 맛있어서 놀랐다. 알고 보니 과거에는 찜닭 골목이 아니라 통닭 골목이었다고 한다. 한때 양념치킨으로 통닭상인들의 상권이 위협받자 생각해낸 대책이 바로 찜닭이었다. 비록 상권의 위협을 받았지만, 이 과정에서 찜닭이 탄생한 것에 대해 나는 조심스럽게 감사해본다.

 사실 떡볶이 골목이 유명하다는 것을 시장에 도착해 처음 알았다. 시장구경을 하는데, 떡볶이 노점상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평소 같으면 지나쳤겠지만, 이때까지 봐온 떡볶이 가게와 다르게 다양한 외국어로 적힌 팻말이 있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호기심에 한 가게로 들어가 떡볶이를 주문한 후, 가게 주인께 “외국인들도 많이 오나 봐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아휴, 당연하죠. 여기가 떡볶이 골목이라고 멀리서도 떡볶이 먹으려고 와요”라고 말씀하셨다. 찜닭을 먹어서 충분히 배가 불렀지만, 저 말을 들으니 떡볶이를 도저히 먹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자는 밥배, 간식배가 따로 있다고 했던가. 떡볶이가 나오자마자 맛있게 먹고 다음 여행지로 갔다.

>> 월영교를 찾아가다
 안동으로 취재 오기 전, 안동에서 가장 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바로 안동의 ‘월영교’다. 월영교는 먼저 간 남편을 위해 머리카락을 뽑아 한 켤레의 미투리를 지은 아내의 애절하고 숭고한 사랑을 기념하고자 미투리 모양을 담아 다리를 지었다고 한다. 게다가 안동의 야경이라 하면, 단연 월영교라고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기대가 컸다.

 하지만 안동구시장을 구경하는 도중에 비가 내렸고, 금방 그칠 거라 생각한 비는 예상과 달리 계속 내렸다. 그래도 꼭 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기에 주저않고 택시를 탔다. 월영교로 가는 길, 기사 아저씨께서 “월영교에 달이 떠야 예쁜데, 하필 오늘 비가 와서 어쩌냐”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생긴 걱정은 한순간에 없어질 만큼 월영교는 비가와도, 달이 없어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특히 비가 오면서 조명에 비친 월영정은 비가 오지 않을 때보다 훨씬 더 운치가 있었다고 자부한다. 그렇게 월영정에 앉아 한참 동안 야경을 보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집으로 돌아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