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논단]생각하는 인간을 만드는 교육
[천마논단]생각하는 인간을 만드는 교육
  • 주형일 교수(언론정보학과)
  • 승인 2016.03.14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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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세돌과 인공지능기계 사이의 바둑시합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인간의 자존심을 건 시합이라고 말이 많았지만 냉철히 따져보면 인간은 이미 오래전부터 기계에 모든 면에서 뒤쳐져 있었다. 힘, 속도, 정교함, 논리적 계산 등 도구적 능력의 차원에서 인간이 기계를 이길 수 있는 영역은 없다. 기계에 맞선 인간의 철저한 패배는 역설적으로 인간이 기계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인간을 기계 혹은 다른 동물들과 비교할 때 독특한 존재로 만드는 것은 생각하는 능력이다. 인간은 어떤 자극 앞에서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찾고자 하는 유일한 존재이다. 아무리 뛰어난 인공지능이라 할지라도 자극에 대해 단순히 반응할 뿐 스스로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는 못한다. 바로 그 질문을 던지기 때문에 인간은 망설이고 실수할 수 있으며 절망하거나 행복할 수 있다. 기계든 동물이든 “왜?”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면 그 순간부터 인간의 지위를 갖게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행위는 타고 난 것이 아니라 교육받는 것이다. 인간은 그런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잠재 능력을 갖고 태어나지만 누구나 그런 질문을 던질 줄 아는 것은 아니다. 자극에 단순히 반응하는 것을 넘어서서 자극 자체에 대해 생각할 수 있을 때 이 질문은 가능해진다. 교육이란 외부의 자극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자극에 단순히 반응하는 생물학적 인간을 생각하는 사회적 인간으로 만드는 것에 교육의 본질이 있다. 우리가 흔히 인문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본질적 교육의 내용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문학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인간학(humanities)이 더 정확한 명칭일 것이다.

 인간학, 즉 인문학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생각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교육의 핵심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두보의 시를 아는지, 헤겔의 변증법을 이해하는지는 사실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하다고 비난할 때 그가 목민심서의 내용을 모른다거나 톨스토이 소설을 읽어보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그 비난의 핵심은 바로 그가 인간과 사회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할 줄 모른다는 것, 다시 말해 생각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에 있다.

 일상생활이나 취업에는 직접적 도움이 안 되는 고전이나 철학, 역사 등에 대한 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구체적 지식의 습득과는 무관하게 그런 공부 자체가 “왜?”라는 질문을 할 수 있는 힘,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기 때문이다. “왜?”라는 질문이 불필요한 도구적 지식이나 기술에 있어서는 이미 기계가 인간을 압도하고 있다. 발달된 인공지능을 가진 기계들이 도구적 지식이 필요한 자리를 차지해가고 있다. 클릭 몇 번으로 세상의 모든 지식을 불러올 수 있는 시대에 중요한 것은 클릭하는 방법이 아니라 “왜 클릭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줄 아는 힘을 갖는 것이다.

 이제 인간은 자신보다 뛰어난 기계를 만들고 통제해야 하는 문제에 봉착했다. 생각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인문학 교육에 기대지 않는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 것이다. 이미 모든 면에서 기계가 인간을 초월한 상황에서 인문학적 소양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도구적 기술과 지식 교육은 기계보다도 못한 인간을 길러낼 뿐이며 결국 인간 자신을 파멸로 이끌 것이기 때문이다. 도구적 지식에 압도당한 사람들이 인간을 열등한 기계로 만드는 교육을 계속 기획하는 현재는 암울한 미래를 앞서 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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