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주 교수의 따뜻한 시 읽기
김문주 교수의 따뜻한 시 읽기
  • 김문주 교수(국어국문학과)
  • 승인 2016.02.29 17: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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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病院)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女子)가 흰 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日光浴)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女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病)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病)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試鍊), 이 지나친 피로(疲勞),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女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花壇)에서 금잔화(金盞花)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病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女子)의 건강(健康)도 속(速)히 회복(回復)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본다.
 -윤동주의 「병원(病院)」(1940.12) 전문

 71년 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한 윤동주(1917∼1945)가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로 인해 대중들에게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첫 시집이자 유고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초판본이 다시 발간되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윤동주에 대한 관심이 2016년 ‘헬조선’에서 급상승하고 있지요. 이준익 감독이 <동주>를 제작하게 된 동기가 ‘윤동주’에 관해 아는 게 너무 없다는 죄책감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지요.

 위의 시는 시인이 연희전문 졸업을 기념하여 1942년 초에 출판하려고 했던 시집의 최초 표제작이었다고 합니다. 육필원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8년간 소장하였던 학우 정병욱 교수의 증언입니다. 시집의 제목으로 삼으려고 했을 만큼 「병원」은 윤동주에게 중요한 작품입니다.  

 이 시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셋입니다. 화자인 ‘나’와 “가슴을 앓는다는” ‘여자’, 그리고 “늙은 의사”. 두 사람은 젊고, 모두 아픕니다. 눈 여겨 보아야 할 대목은 여자와 내가 매우 깊은 친연성을 띠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자’는 “가슴을 앓는다”고 했는데, 그녀의 병명을 단순하게 해석하면 ‘폐병’이 되겠지만, 시의 전체 문맥에서 보면 이는 마음의 병, 정신의 병을 앓고 있는 ‘나’의 상태와 통합니다. ‘나’는 “오래 참다” 병원을 찾았지만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르”고 내가 “병이 없다”고 말합니다. 아픈데다 병이 없다고 진단되는 상황, 아픈데다 상태가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는 이 참담한 상황이 나에게 “지나친 시련”과 “지나친 피로”를 주는 것입니다. 이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화자는 “성내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를 단속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나’가 한 것은 아픈 여자가 “누웠던 자리에” 자신의 몸을 눕히는 일이었습니다. 참으로 경이로운 정경입니다. 그것은 ‘나에게 병이 없다고 한 늙은 의사’의 모습과 달리, “젊은 여자”의 병을 인식하고, 나아가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공감의 행위-풍경입니다. 어찌 보면 윤동주의 시와 삶의 길이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그날」)는 말로 시인 이성복은 1970년대의 비정상적인 상황을 정리한바 있지요. 고통스럽지 않은 시대인들 없겠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곳>은 참으로 “지나친” 시절입니다. 그래서 이 시를, 「병원」의 마지막 부분을 다시 손으로 짚어봅니다. 우리가 병든 것을 같이 알고, 당신과 함께 아프고 싶습니다. 아니 당신과 함께 아파야겠습니다. “지나친 시련”과 “지나친 피로”를 통과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저 「병원」의 결미처럼 당신이 누운 자리에 내 몸을 눕히는 일뿐일 것입니다. 참으로 눈물겨운, 그래서 아름다운 봄입니다. 이 봄에 당신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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