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내 삶의 전부이자 원동력
축구는 내 삶의 전부이자 원동력
  • 장보민 기자, 이경희 준기자
  • 승인 2015.09.30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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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태용 동문(체육교육학과 88학번)은 우리 대학교를 졸업한 후, 성남일화(현 성남FC)에 입단해 13년간 축구선수 생활을 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하 ‘리우 올림픽’) 남자축구대표팀 감독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를 겸임했고, 현재는 리우 올림픽을 앞두고 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다. 그런 그를 만나 축구선수, 감독으로서의 그의 삶에 대해 들어보고, 모교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들어봤다.

축구선수 신태용

 13년간 성남일화(현 성남FC)에서만 선수생활을 한 이른바 ‘성남맨’이다. 성남일화 외에 다른 구단에서의 러브콜이 많았을 것 같은데, 한 팀에 계속해서 몸을 담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성남일화에 입단해 선수로 데뷔를 했었고 또 성남일화에서 대우를 잘해줬다. 1992년 입단과 함께 신인왕, 1996년 득점왕, 최우수선수(MVP) 2회, 역대 최다인 ‘베스트 11’ 에 9회 올랐다. 성남일화에서 축구선수로 승승장구하며 잘 된 덕분에 원클럽, 원맨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선수 생활 당시 본인만이 가지고 있던 신념이나 각오가 있었다면 무엇인가?
 ‘경기 당시에는 후회 없는 경기를 하자’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 신념으로 훈련을 하고 선수생활도 했다. 또 ‘항상 최선을 다하고 꿈은 원대하게 갖자’, ‘스트레스를 받지 말자’라고 생각하며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다.

 선수 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
 1995년 ACL(아시아챔피언스리그) 챔피언결정전 2차전이었던 포항원정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후반 45분까지 2:0으로 포항FC에게 지고 있었다. 내가 후반 45분에 교체로 들어갔는데 2골 1어시스트를 했다. 종료 직전 한 골을 더 먹으면서 3:3으로 비겼지만, 팀이 우승 후보가 될 수 있게 만들었다. 당시에 ‘명승부’, ‘각본 없는 드라마’라며 히트를 쳤었다.

 감독님께 축구는 굉장히 애틋한 존재일 것 같다. 혹시 축구를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는가?
 수도 없이 많았지만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고 하듯 내가 축구선수로서 축구를 하며 먹고 살아야하고, 앞으로도 재능을 후배들을 위해 베풀어야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때론 축구계를 떠나야겠다는 고민도 많이 했다. 축구를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많았지만 휴식을 취하고 나면 또 다시 ‘축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휴식을 취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축구와 다른 생활을 즐기며 살다가 다시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이 나면 그것을 또 축구에 접목시키고는 했다.

 2005년 10월 선수생활을 은퇴했다. 은퇴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인가?
 내가 K리그에서 정확하게 은퇴한 시기는 ‘04시즌’이 끝난 12월이다. 은퇴를 하고 2005년 4월 5일에 호주 A리그로 넘어가서 선수생활을 하다가 10월에 발목부상이 재발돼 선수생활을 그만두게 됐다. 이제 편하게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후련했다. 

 감독님이 생각하는, 축구선수로서의 신태용은 어떤 사람이었나?
 남에게 욕먹지 않고 피해 입히지 않고,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한다. 지방에서 왔지만 학연, 지연 없이도 열심히 선수로서 잘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감독, 코치로서의 신태용

 2004년 은퇴 후, ‘퀸즐랜드 코어FC’에서 코치로 활동하게 된다. 은퇴 후 다시 코치로 나선 이유나 계기가 있다면 무엇인가?
 우연치 않게 어시스트 코치가 된 것이 그 계기다. 호주에 선수로서 2년을 계약하고 갔는데 발목 부상이 재발돼 선수생활을 그만두게 됐다. 선수로 갔기 때문에 높은 연봉을 받고 있으니, 파트타임 식으로 시간 날 때 와서 코치를 해달라고 해서 코치 일을 시작하게 됐다.

 지난 6월 프랑스와 평가전을 위한 출국 길에서, “‘신태용 축구’에 얼마나 물들 수 있는가 보겠다”고 했다. 감독님이 말하는 ‘신태용 축구’는 무엇인가?
 ‘생각하는 축구’이다. 열심히 뛰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쓰면서 생각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 축구가 발전하려면 선수들이 한 단계 더 지능적으로 발전을 해야 한다. 예를 들자면, 스페인의 ‘티키타카*’라는 것이 있다. 티키타카의 축구와 우리나라의 축구를 접목시키는 것처럼 우리나라만의 업그레이드 된 축구를 만드는 것이 ‘신태용 축구’이다.

 감독과 코치로 있으면서 많은 선수들을 겪어봤을 것 같다. 재미있는 일화 한 가지만 이야기해 달라.
 최근에 있었던 일이다. 경기가 끝나고 코칭스텝이 맥주를 마시고 있으면 선수들도 마시기 위해 나온다. 예전에는 코칭스텝을 보면 무서운 마음에 바로 도망을 가거나 숨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선수들이 먹고 싶으면 나와서 맥주를 마신다. 그리고 술이 부족할 때 한 번씩 “감독님 술 한 잔 사주세요”라고 얘기한다. 이런 것을 보면 시대가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낀다. 또한 ‘우리가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깨뜨려야 겠구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국가대표팀 코치와 올림픽대표팀 감독을 겸직하기도 했었다. 감독과 코치로 활동하며 가장 뿌듯한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
 당연히 승리를 쟁취한 순간이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아시안컵 준우승’과 ‘동아시안컵 우승’을 한 것이 가장 뿌듯했다. 그 순간 ‘아, 내가 이 일을 정말 잘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올림픽대표팀 감독은 갑자기 맡게 됐지만 아직까지 5승 2무로 패배한 적이 한 번도 없다. 특히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은 한 단계 한 단계 커가는 것이 눈에 보이고, 성장하는 것이 보인다. 그런 것을 볼 때 가장 뿌듯함을 느낀다.

 반대로 가장 힘들거나 어려운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
 남들의 중상모략에 휩싸일 때이다. 백그라운드가 없다보니 주위사람들이 우리를 흔들거나, 일이 잘될 때 남들이 시기를 할 때도 있다. 또 내가 하지 않은 일이 와전돼 구설수에 오를 때가 가장 힘들다. 그럴 때는 ‘내가 이런 것까지 참으면서 왜 축구를 해야하나’라는 생각도 든다.

 감독님이 생각하는, 축구감독으로서의 신태용은 어떤 사람인가?
 지금까지는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 스스로의 주관만 확실히 가지고 있으면 좋은 감독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선수, 코치, 감독, 중계까지 ‘신태용’의 삶은 축구를 빼곤 설명이 되지 않을 듯하다. 감독님에게 있어서 ‘축구’는 어떤 존재인가?
 축구를 빼놓고 내가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축구와 관련하여 선수, 감독, 해설, 방송 등을 다 했다. 축구는 내 삶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축구를 통해 모든 인간관계을 만들었다. 축구로 또 무엇을 바꿀 수 있을지는 앞으로 내가 더 생각해 봐야한다. 축구는 나의 가장 기본적이고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감독님에게 영남대학교란 어떤 존재인가?
 나를 성장할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존재이다. 한 번씩 내가 수도권 대학을 나왔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 적은 있다. 하지만 영남대학교를 졸업한 것을 후회해 본 적은 없다.

 모교 축구부인 영남대학교 축구부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 영남대학교 축구부는 지금 너무 잘하고 있다. 지방에서 영남대학교 축구부의 인기는 최고 수준이다. 축구에 관심이 없는 학생은 잘 모를 수 있겠지만 축구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과 축구팬, 고등학교 축구부에겐 영남대학교 축구부가 선망의 대상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만해서는 안 된다. 영남대학교 축구부에 왔다고 끝난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다시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이명주(체육학부 10학번), 김승대(체육학부 10학번), 손준호(체육학부 11학번)와 같은 선배들을 롤모델로 삼아 준비를 잘하면 선배들보다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감독님에게도 힘든 시간이 있었고 이를 극복해왔다. 현재 많은 대학생이 취업준비 등으로 나름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모교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
 축구하는 후배들뿐만 아니라 영남대학교 후배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절대 쉽게 포기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살면서 기회는 언제든지 온다. 중요한 것은 기회가 오기 전에 준비를 하는 것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힘들 때 불안함은 떨쳐두고 쉬었으면 좋겠다.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힘들 때 조금 쉬다보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급하고 불안해지면 시야가 좁아진다. 귀와 눈을 열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을 넓게 볼 수 없다. 휴식 후 눈과 귀를 열고 넓게 보면 훨씬 좋은 것이 보일 것이다.

 또한 꿈은 원대하게 가져라. 그리고 절대 쉽게 포기하지 마라. 기회는 항상 온다. 다만 준비된 자만이 그 기회를 쟁취하는 것이다. 준비하지 않고 남을 탓할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준비를 해 놓고 기회를 기다리면 꼭 한 번은 기회가 오며,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잡아야한다. 남을 탓하기 전에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 생각한 다음 열심히 준비하면서 기다리면 기회를 쟁취할 수 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무엇인가?
 내가 대표생활에서 이룰 수 없었던 것들을 감독으로서 이루고 싶다. K리그를 비롯한 다른 리그에서도 연락이 왔었지만, 내가 축구선수 시절 대표팀에서 할 수 없었던 일들을 이루고 싶어서 대표팀 감독을 맡게 됐다.

 일단 올림픽대표팀 감독으로서 지금 당장 눈앞에 다가온 ‘2016 리우올림픽’ 최종예선을 통과하는 것이 1차 목표이다. 그리고 2차 목표는 2016년 8월 본선에 가서 좋은 결과를 거두는 것이다. 더 나아가 국가대표팀이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사상 최초 원정 8강에 올라가는 것이 3차 목표이다.

 *티키타카(스페인어: fútbol tiqui-taca): 스페인어로 탁구공이 왔다 갔다 한다는 뜻으로 축구에서 짧은 패스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전술

인터뷰를 마친 기자들의 이야기

 축구에 흥미가 많아 ‘천마로를 거닌 사람’을 통해 꼭 신태용 감독님을 만나보고 싶다고 늘 생각했었다. 감독님을 만나 뵐 수 있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기획서를 작성했다. 감독님의 첫 모습은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손을 흔드시는 모습이었다. 너무도 다정하게 인사를 받아주셨고, 아직 식사 전이라는 기자의 말에 식당에 데려가 밥을 사주기도 하셨다. 인터뷰 역시 기자에게 모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인터뷰에 적합한 장소도 함께 찾아주시는 등 적극적으로 함께 해주셨다.

 인터뷰를 마치고 지금까지의 어색하고 어렵기만 했던 인터뷰가 아닌 옆집 아저씨와 가벼운 대화를 하고 온 기분이었다. 항상 내가 보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그라운드 위 선수들을 지도하던 신태용 감독님이 아닌, 동문으로서의 신태용 감독은 다정다감한 선배님이었다. 따뜻했던 선배님의 모습을 잊지 않고, 앞으로도 감독님의 소망을 응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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