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현의 도시 경산, 대학을 통해 발전을 꾀하다
삼성현의 도시 경산, 대학을 통해 발전을 꾀하다
  • 천정우 기자, 박민정 준기자, 지민선 준기자
  • 승인 2015.09.14 1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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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두 대학의 상생을 통해 젊은 창의력과 상상력 동원해야
 

 최영조 동문(행정학과 73학번)은 우리 대학교 행정학과 재학 당시 행정고시에 합격한 이후, 지금까지 공직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2012년에는 경산시장 재·보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후 지금까지 경산시의 기초단체장으로서 활동 중이다. 그를 만나 현재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고, 모교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들어봤다.

 행정학과 재학 당시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행정고시를 준비한 이유는 무엇인가?
 당시에는 지금처럼 직업이 다양하지 않았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농업인, 교사, 공무원 정도였던 것 같다. 그 중 공무원을 중학교 때부터 꿈꿔왔고, 영남대학교 행정학과에 진학한 후 자연스럽게 행정고시를 준비하게 됐다.

 행정학과에 진학하게 된 계기가 있나?
 대구상업고등학교 출신이다. 그 당시 주변 친구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해 대부분 은행원이 됐다. 대학 가는 사람이 적었다. 나는 운이 좋아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고, 기왕이면 영남대학교에서 가장 경쟁률이 높은 학과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 학과가 당시에는 행정학과였다.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후배들을 위해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지금은 내가 행정고시를 준비할 때보다 시험이 훨씬 어려워졌다. 나는 3년 동안 공부를 했는데, 처음 1년은 그냥 시간만 보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다음해부터는 꼭 합격해야 된다는 절실한 마음으로 치열하게 공부했다. 당시에는 남들보다 집중력이 뛰어났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혼자서 공부를 했는데, 지금은 학교에 훌륭한 교수님들도 많고, 같이 공부를 하는 사람들도 많으니 본인이 노력한다면 우리 후배들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1979년에 행정고시에 합격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공직생활을 하고 있다.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인가?
 공직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당시, 농촌은 정말 가난했다. 지금과 같은 경제발전이 있기 전이다. 당시에 전통 부엌과 재래식 화장실 등의 구식 생활시설을 현대식으로 바꾸는 사업을 맡았는데, 도민들에게 인기가 굉장했다. 내가 맡은 정책으로 도민들의 생활에 편리함을 느끼게 해줬던 순간이 가장 뿌듯했던 것 같다.

 그 외에 기억에 남은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
 경북도청 문화체육국장으로 재직할 당시 하회·양동마을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그리고 경주 엑스포 사무처장을 맡았을 당시, 상징물로 탑 모양의 전망대를 만들었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

 2012년에 경산시장에 출마했다. 계기는 무엇이었나?
 2011년 연말에 명예퇴직을 했다. 공무원 정년에 따르면 원래는 올해까지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경북도청에 근무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갖추었고, 이 경험을 토대로 나의 고향인 경산의 발전을 위해 힘쓰고 싶었다. 경산 시민들에게 행복감을 주고 싶었다. 그 당시 경산시장이 없어 시정운영은 정체되어 있었고, 내부적으로 갈등이 많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도청에 사표를 제출하고 선거에 출마했다.
 주변에서는 내가 당선된다면 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선거가 치열했다. 당시 후보자가 6명이 있었는데, 다들 지역에 연고도 많았고, 인물 개개인도 알려진 분들이 많았다. 그에 비해 나는 주로 도청에서 근무했고, 고향 경산에서는 일한 적이 없어 경산 시민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선거운동이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도청에서 다양한 경험을 한 나의 이력과 진심이 전해진 탓인지 시민들이 연고주의에 흔들리지 않고 지지해줬다.

 경산시장으로서 내세운 공약 중 일자리 창출에 관한 현재의 진행 상황이 궁금하다. 그동안 어떤 노력을 했나?
 우리 경산시의 제일 큰 특색을 뽑는다면 ‘12개 대학의 상생’이라고 생각한다. 대학들도 경산시의 중요한 구성원이다. 이 소중한 자산이 우리 경산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 경산지역 12개 대학 총장님들이 모두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신 덕에, 정기적으로 모여 경산의 발전을 위해 의논도 하고 협력하는 부분이 늘고 있다. 또한, 경산시 부시장과 각 학교의 대외협력처장들이 모여 실무적으로 어떻게 하면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인지 고민을 나누고 있다. 지난해 처음으로 청년문화 콘텐츠 관련 사업을 경산시에서 진행했는데, 올해는 지난해 보다 더욱 알차게 사업을 구성해 경산지역 대학생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행사로 만들 예정이다. 이외에도 다방면으로 대학생들을 지원해줄 것이다.

 이 외에 경산시장으로서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일이 무엇인가?
 시민들이 잘 사는 것이다. 시장으로 취임한 이후 많은 것들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경제자유구역의 경우 경산에서 진행 중이었는데, 취임 당시 개발되지 못한 채 방치돼 있었다. 경산시는 금년도 1월 국토부에서 진행한 도시형첨단산업단지 공모에 참여했고, 그 결과로 9만평 규모의 도시형첨단산업단지를 유치했다. 사업은 전액 국비로 진행된다. 경상북도 내에서 처음으로 첨단산업단지가 들어온다. 들어선 이후에는 젊은 대학생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도시형첨단산업단지이기 때문에 기존 대형 공장 형태보다는 젊은 사람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동원한 사업이 가능할 것이다. 이런 여러 가지 사업들을 실행 중에 있다.

 타 도시와는 다른 경산시만의 자랑을 한다면?
 경산에는 ‘삼성현’이 있다. 원효, 설총, 일연이다. 다들 보통 분들이 아니다. 이런 학문을 존중하고 좋아하는 삼성현의 고장이 경산이기 때문에, 경산에 많은 대학들이 생겨난 것 같다. 12개의 대학이 상생하고 있는 것이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영남대학교는 그 중에서도 경산에 가장 먼저 들어선 대학이다.

 경산시장으로서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
 우리 지역에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경산 시민들이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고 다 같이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도시를 만들고 싶다. 무엇보다 우리 경산시민들이 다른 어떤 지역보다 남을 좀 더 배려하고 이해하고 희생하는 그런 정신자세를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대학시절의 최영조 동문은 어떤 학생이었나?
 평범한 학생이었다. 운동도 좋아하고,  술도 자주 마셨다. 주로 막걸리를 많이 마셨다. 그리고 가끔씩 장학금을 받기도 했다.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다녀온 후에는 복학생들끼리 어울려 다녔다. 재밌었다. 그리고 행정고시를 준비했다.

 다시 대학시절로 돌아간다면 하고 싶은 것이 있나?
 영어회화 공부를 할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머릿속으로는 영어가 생각나는데 입이 잘 안 떨어진다. 젊었을 때 미리 영어회화를 해 놓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도 한다. 가끔 외국인들과 대화할 일이 있을 때, 통역 없이도 일상적인 대화를 할 수 있으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공직생활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많은 학생들이 공직생활을 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 하지만 공직생활은 제약이 많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욕도 많이 먹는다. “공무원들이 썩었다, 나태하다” 등의 이야기를 쉽게 듣는다. 스스로에게 굉장히 엄격해야 한다. 사회 전반적으로 성희롱, 음주운전 등에 민감하기 때문에 공무원들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 일반인들의 경우 음주운전을 했을 경우 벌금을 내거나 면허정지가 되면 그만이다. 그런데 공무원들은 그것과 더불어 공직 내부에서 추가적으로 징계를 받는다. 봉급이 깎이거나, 진급에 제약을 받는 등이다. 때로는 가혹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렇듯 본인 스스로 청렴하고 도덕성이 있어야 한다. 단순히 “월급 받아서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공직생활을 희망한다면, 국가적 차원에서도 희망이 없다. 진정으로 시민들에게 봉사하려는 사람들이 공직생활을 희망했으면 한다.

 모교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영남대학교는 민족의 대학교다. 동문들이 굉장히 많다. 거의 사회 모든 곳에서 영남대학교 동문들이 일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대학생들은 극심한 취업난으로 삼포세대, 오포세대 등의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런데, 사실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힘들지 않은 세대는 없었다. 그렇기에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했는지 따지는 것보다 매사 자신을 믿고 젊은이답게 패기 있게 무엇이든 준비한다면 얼마든지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대기업만 고집하면 힘들다. 조금은 관계없는 얘기지만 요즘엔 농사를 지어도 고소득을 유지하며 여유로운 생활이 가능하다. 이렇듯 폭넓게 사회를 바라봤으면 한다. 당장 어렵다고 쉽게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준비하면 길은 보인다.
또, 본인만 생각하지 말고 나의 형제, 부모 등 주변 사람들도 챙길 줄 알았으면 좋겠다. 이러한 생각으로 살아간다면 우리 사회 전체가 좋은 사회, 행복한 사회가 될 것이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주변 사람들을 챙겨야 한다.

 최영조 동문에게 영남대학교란?
 경산시의 아주 작은 동네인 남산면에서 처음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그리고 행정고시도 합격하고, 지금까지 떳떳하게 일을 하고 있다.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영남대학교 출신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기 때문인 것 같다. 현재 행정학과 동문회장을 맡고 있는 등 동문회 활동에도 즐겁게 참여하고 있다. 이렇듯 영남대학교에 애정이 많다. 우리 지역의 대표적인 대학 영남대학교에 대해 후배들이 항상 긍지와 자부심을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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