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자원 전쟁의 시작
생물자원 전쟁의 시작
  • 석호영 교수(생명과학과)
  • 승인 2015.08.31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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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3) 우리나라 고유종인 잔가시고기(Pungitius kaibarae). 현재 하나의 종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남쪽과 북쪽 집단들은 유전적으로 많이 다르다는 것이 최근의 유전학적 연구 결과 밝혀졌다. (자료제공: 배한규, 영남대학교 생명과학과 박사과정)

 국가 생물자원의 재산권
 요즈음 TV 드라마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소재 중 하나는 주인공이 어렸을 때나 어려운 시기에 억울하게 재산을 강탈당하고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되찾으려 노력하며 모진 시련을 겪게 된다는 내용이다. 결말은 늘 뻔하다. 주인공이 재산을 다시 찾거나, 부당한 재산을 거둔 자들이 파멸의 길을 걷게 된다. 하지만 현실 사회에서 한 번 잃은 재산을 온전히 되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어떤 재산이 있는지,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빼앗긴 사람들은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일지 몰라도, 현실 세상에서는 그리 명석하지 못한 이로 낙인찍힐지 모를 일이다. 이는 국가 단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 국가의 정부가 영토 내 무슨 재산이 어떻게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면, 다른 나라에서 그 재산을 마치 내 것인 것처럼 사용하고 이득을 취하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만들어 질 수도 있다.

 2009년 전 세계 260,000명을 감염시키고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을 사망케 한 신종플루(H1N1 인플루엔자 A)의 유일한 치료제였던 ‘타미플루(Tamiflu)’를 만든 스위스 제약회사 로슈(Loche)는 이 약 하나로만 무려 수조원을 벌어들였다. 사실 타미플루는 1996년 중국 남부지역의 자생종 팔각회향이라는 식물에서 추출한 시키믹산을 이용해서 개발한 항바이러스제이다. 중국은 결정적인 원천 자원을 제공한 셈이지만 타미플루로 거둔 이득을 전혀 공유하지 못했다. 우리나라에도 유사한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크리스마스 트리인 구상나무는 우리나라의 한라산과 지리산 등이 원산지로 1900년도 초반 우리나라에서 반출되어 개량된 종이다. 개량에 이용된 기준 표본을 직접 제공한 국가가 그 종에 대한 경제적 재산권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정작 이 종에 대한 재산권은 미국에 있고 우리나라는 원료를 제공하고도 돈을 지불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마치 열심히 가꾸어 수확한 사과를 사과주스 회사에 납품하고도 오히려 돈까지 지불하는 그런 형국이다. 설상가상으로 이 구상나무의 자연 군락지가 우리나라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슬픈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미스킴라일락’이라 불리는 유명한 정원수의 원천도 70여년 전 미국으로 반출된 우리나라 토종 식물인 ‘수수꽃다리’이다. 이처럼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은 인간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일종의 자원이고 현재 또는 미래에 사용될 소중한 자산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아시아 국가들은 생물자원의 가치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고, 결국 함께 취할 수 있는 엄청난 경제 이득을 눈 앞에서 날려버렸다.

 본격화되는 세계 생물자원 전쟁 - 자생 생물자원 확보가 유일한 해답
 자국에서 자생하는 모든 생명체와 그 다양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면 위와 같은 억울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다른 나라의 생물자원을 함부로 이용하거나 여기서 발생하는 불합리한 이익 편취를 막기 위해, 2010년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제 10차 생물다양성협약 총회에서는 ‘생물유전자원 이용 시 생물자원 제공국에게 정당한 이익을 분배한다’는 의정서가 채택되었다. 우리 생물자원의 부당한 유출을 막을 수 있는 국제적 법 장치가 마련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우리에게 또 다른 시련을 줄 수도 있다. 이제부터 우리 역시 외국의 생물자원에서 유래한 화학 성분을 이용할 때에 따로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외국 생물 재료를 주로 이용하는 화장품, 의약품, 원예, 농업 등의 산업에 엄청난 타격이 예상된다. 의정서가 정식으로 발효되면 이들 산업들은 수천억원을 외국에 추가로 지급해야 하고, 제품의 가격은 상승할 것이다.

 현 상황에서는 생물자원의 유출도 막고 생물산업의 해외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유일한 해답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서둘러 생물산업 원천 소재인 자생 생물종을 발굴하고 체계적인 생물 유전자원 은행을 구축해야 한다. 생물자원의 목록 정보와 유전자 정보를 손에 쥐고 있어야, 이들의 재산권 행사가 가능하고 새로운 원료 물질을 개발할 수 있는 잠재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우리나라 영토 내에서 과학자들이 발견하여 기록한 종은 약 4만여종 정도이다. 하지만 이러한 수치는 일본의 절반 정도이며, 실제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생물 종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학자마다 약간씩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지만, 적어도 약 10만종의 생명체가 국내에 서식할 것으로 추산된다. 많이 잡아 매년 약 1000여종의 새로운 종을 발견한다고 가정해도 40여년은 족히 지나야 7만종 정도가 겨우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유전자 정보의 중요성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다양한 생물 중 꽤 많은 종들이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유일하게 나타나는 고유종이다. 고유종이 아니라 해도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모든 종들은 과거 특별한 역사적 사건을 겪고, 이후 우리나라의 기후와 토양 등 다양한 환경적 요인과 상호작용을 하며 정착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 있는 같은 종과는 전혀 다른 절대 고유성을 지닌다. 한마디로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모든 생물은 대체불가한 것이다.

 이러한 생물들의 고유한 특성은 그 ‘유전자’에 잘 나타나 있다. 서로 다른 종의 생물들은 유전적으로 다르며, 같은 종이라도 다른 지역에 사는 집단들 역시 그 유전적 특징이 다를 수 있다. 따라서 하나의 개체나 집단, 종의 유전적 특징을 조사하면 쉽게 생물의 고유한 특성을 밝힐 수 있고, 생물다양성을 보다 정확하게 정량할 수 있다. 유전 정보는 어느 종이 어떻게 우리나라에 정착했는지, 어떻게 퍼져 나갔는지 등 다양한 역사적 과정을 복원하는데 이용될 수도 있다 (그림 1). 또한 유전적 다양성 정보는 특정 종이 우리나라에서 안정적으로 자생하는지 그렇지 아닌지에 대한 통찰력을 주기도 한다. 흔하게 발견되거나 넓은 분포역을 가지는 종은 높은 유전적 다양성을 가지고, 드물게 발견되는 종이나 멸종위기종은 아주 낮은 유전적 다양성을 가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면에서 유전자 정보는 단순한 생물 종 목록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더 다양한 응용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새로운 종의 발굴을 시도하는 생명과학자들에게 유전학은 또 다른 ‘힘’을 부여한다. 간혹, 같은 종이지만 계절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기도 하고, 암컷과 수컷이 다른 외형을 띄는 경우도 많다. 어릴 때의 모습만으로는 구분이 어려운 종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완전히 다른 종이지만 (인간의 눈에는) 똑같이 생긴 경우도 적지 않다. 너무나 작은 미생물의 경우 현미경을 통해 관찰한다고 하더라도 종 구분이 그리 쉽지 않다. 외형으로 정확한 종의 구분이 어려울 경우 유전학적 조사를 통해 아주 간단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림 2; 그림 3). 특정 생물 종을 빠르고 정확하게 식별할 수 있도록 하는 고유 DNA정보는 그 생물 종의 신분증과도 같으며 이를 흔히 ‘DNA 바코드’라고 부른다. 동물에서는 미토콘드리아 DNA에 있는 시토크롬산화효소 1 유전자 (cytochrome oxidase I; 줄여서 COI 이라고도 부른다)가 가장 효율적인 DNA 바코드로 알려져 있다.

 생명자원 관리를 위한 솔루션 - 유전자 은행의 구축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다양한 종을 발굴하고 이를 목록화하는 작업도 중요하지만, 어느 종이나 집단의 특징을 대표하는 유전자 정보가 얻어지면 이를 보관하고 체계적으로 관리 할 수 있는 유전자 정보은행이 구축되어야 한다. 환경부 산하 국립생물자원관을 비롯한 유수 국가 기관의 자생생물 발굴 및 유전자 다양성 조사 사업 등을 통해 저자와 많은 생명과학자들이 매년 상당한 양의 자생 생물과 유전자 정보를 획득하고 있으나, 이를 도서관식으로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유전 정보를 생물자원 자체 정보 및 원산지 등 관련 정보와 직업 연동할 수 있는) 정보은행은 아직 완벽하게 구축되지 않은 상태이다. 생명과학자들이 자생생물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온전한 개체를 채집할 수도 있지만, 몸이나 잎의 일부, 흔적, 분비물이나 배설물, 화석 등의 형태로 확보할 수도 있는데, 이럴 경우 DNA 바코드를 정보은행의 자료와 비교하여 자신이 새로운 종을 발견하였는지 아니면 기존에 알려진 종을 찾은 것인지 쉽게 판단할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 자생 생물자원 발굴의 속도도 가속화 할 수 있다. 또한 대다수 국가 생물자원의 DNA 바코드가 유전자은행에 저장되어 있다면 가짜 한약재, 한우로 둔갑한 육우나 수입고기, 원산지를 속인 수입 채소 등을 눈앞에서 바로 확인해 볼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생명과학 및 공학 기술의 발전으로 최근에는 야생 생물의 완전 유전체 정보를 해독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은 작업이 되었다. DNA 바코드 정보은행과 더불어 우리나라 고유종의 완전 유전체(genome) 정보를 획득하여 저장하는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우리나라 자생종을 이용한 산업기술 개발이 보다 쉬워질 것이고, 희귀종이 완전히 멸종된다 하더라고 그 종의 원천물질을 합성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이다.

 다소 두서없지만 생물자원 전쟁을 앞둔 우리나라의 현실과 연구 동향을 그대로 나열해 보았다. 저자가 보기에 지난 10여년 간 우리나라 정부는 자생생물 발굴과 유전자원 정보 획득을 위하여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재정을 투자해 왔고, 이로 인한 성과도 그리 나쁘지 않다. 하지만, 구미 선진국이나 가까운 일본과 비교할 때 이 정도의 재정 투자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자생생물 및 유전자원의 확보 사업과 관련 연구는, 과거 엄청난 국부 유출을 겪고 자원부족국가라는 멍에를 지고 살아가는 우리 국민에게 새로운 미래를 보여주는 일이라는 점을 간과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미 많은 국가가 앞으로 벌어질 생물자원 전쟁에 대비하여 치밀한 계산과 전략을 짜고 있는 이 순간, 우리는 아직 기초조사 과정에 머물러 있고,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기초조사를 끝내려면 최소한 몇십 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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