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을 가지고 이슈를 따라가라
호기심을 가지고 이슈를 따라가라
  • 박상준 기자
  • 승인 2015.08.31 12: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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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석 동문(법학부 78학번)은 우리 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해 현재 우리문화재찾기운동본부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구MBC 보도기자로 시작해 꾸준히 성장해 온 박영석 동문을 만나 후배들에게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1984년 대구MBC에 입사를 했다. 언론인의 꿈을 언제부터 가지게 됐는가?
 고등학교 때부터 언론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이러한 관심이 동기가 되어 영대신문에 입사를 했다. 대구MBC 기자가 됐던 결정적인 이유는 영대신문 입사라고 생각한다.

 대구MBC에서는 어떤 일을 했나?
 기자로 입사하고 취재부장, 사회부장, 보도국장, 해설위원을 했다. 방송국에 들어와서 10년이 지나서부터 뉴스를 진행했다. 5년 동안 9시 뉴스데스크의 앵커로 지냈으며, 토론프로그램의 사회를 봤다. 또한 내 이름을 달고 지역 현안이나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시사프로그램을 3년 반 동안 진행했다. 그리고 최초로 대구MBC 출신이 대구MBC 사장이 됐다.

 기자로 지내면서 힘들었거나 실수를 했던 적이 있나?
 표준어 사용이 힘들었다.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해 실수를 많이 했던 것 같다. 방송 뉴스라는 것이 순간 자칫하면 큰 실수로 이어진다. 1분 1초가 중요한데, 한번은 스튜디오 방송 중에 에어컨이 고장났고, 조명이 강해서 굉장히 더웠던 적이 있다. 휴지로 땀을 닦았는데 휴지가 머리에 붙어 있는 채 방송을 진행한 적이 있다. 이 외에도 중계현장에서 원고가 바람에 날아가는 등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다.

 현재는 사단법인 우리문화재찾기운동본부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어떤 단체인가?
 문화재에 대한 전문가적인 식견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평상시에 문화재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국혼을 바로세우기 위해 김관용 경북도지사 등을 비롯한 뜻 있는 사람들이 모여 지난 2011년 6월 설립한 순수 민간단체다. 대구경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문화재가 있는 지역이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등의 시기를 거치며 상당수의 문화재가 도난되고 훼손됐다. 이러한 우리 문화재 환수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단체다.

 현재 국외반출 문화재 규모가 얼마나 되는가?
 문화재청에 따르면 약 15만6천여 점 정도 된다. 그 중 3분의 1 가량이 대구경북 지역의 문화재로 추정된다. 우리 지역이 신라 천년이 자리한 곳으로 유교와 불교가 꽃을 피운 지역이기 때문이다. 반출 문화재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어 현재 확인되지 않은 문화재의 수가 엄청날 것으로 확신한다.

 문화재 환수의 기준이 있는가?
 반출된 모든 문화재가 환수 대상이라 기준을 미리 정해두지는 않는다. 우선적으로 현재 어디에 반출됐으며, 어떤 경로로 나간 것인지에 대해 알아내야 한다. 그것에 대한 불법성 여부를 판단하고 불법적으로 반출된 문화재부터 환수를 해야 한다.

 현재 어떤 방법으로 문화재를 환수하고 있는가?
 세가지 방법으로 문화재가 환수되고 있다. 첫 번째는 상대 국가에서 우리나라로 기증해 주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임대 방법으로 정해진 기간 동안 비용을 지불하고 빌려오는 것으로 소유권은 임대해주는 나라에 있다. 임대기간이 끝이 나면 연장을 통해 계속해서 임대할 수 있다. 세 번째 방법은 경매사이트를 통해 직접 매수하는 것이다. 단, 직접 매수하는 방법은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현재 가장 시급한 환수 대상인 문화재가 있다면 무엇인가?
 굉장히 중요한 문화재가 많다. 직지심체요절, 왕오천축국전, 몽유도원도, 물방울 관음도 등 모든 문화재가 다 중요하다. 15만 6천여 점이 외국에 나가 있는데 하나같이 다 소중하다.

 현재까지 운동본부의 성과가 있는가?
 아직까지 환수한 문화재는 없다. 환수하기 위해서는 비용을 마련해야 하는데 현재 기금 조성에 많은 시도민의 참여가 잇따르고 있다. 환수기금 모금액수는 정부보다 많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본격적인 환수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체계적으로 문화재의 반환, 인도, 기증 방법 등을 통해 추진해야 한다.

 우리문화재찾기운동본부에서 활동하면서 보람을 느낀 점이 있는가?
 국외반출 문화재의 뜻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지금은 문화재 환수를 위한 기금도 많이 모이고 있고 홍보가 많이 되고 있다. 국내에만 우리 문화재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국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수의 문화재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서명 운동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준다. 이럴 때 가장 보람을 느끼고 있다.

 학부시절 기억 남는 추억이 있는가?
 모든 시간을 영대신문사 활동에 할애해 개인적으로 동아리 활동을 전혀 못해본 것 같다. 1980년 4월에 처음으로 총학생회장 선거가 진행됐다. 총학생회장에 출마를 했었는데 당당히 낙선을 했다.(웃음) 지금 생각해보니까 추억인 것 같다. 넓은 영남벌을 누리며 7개의 단과대학을 다니면서 선거운동 하던 기억이 추억에 남는다.

 다시 대학생으로 돌아간다면 하고 싶은 게 있나?
 너무 많다. 그 중에서도 전국 여행을 다니고 싶다. 전국의 땅을 밟아보고 싶다. 가보고 싶었는데 가지 못했던 곳들에 가서 우리의 얼을 느껴보고 싶다. 그리고 어학 공부를 충실하게 하지 못한 게 지금도 후회가 된다.

 언론인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있어야 한다. 호기심이 있어야 문제의식도 생기고 하고자하는 의지도 생긴다. 힘의 원천이 호기심이라고 생각한다. 지적 호기심을 통해 자기가 알고 싶은 내용뿐만 아니라 잡동사니를 내 머리 속에 넣어야 한다. 자기 관심분야 뿐만 아니라 전혀 무관심한 내용도 담고 있으면 좋다.
세상의 시사 문제에 대해 놓치면 안 된다. 사회의 이슈를 젊었을 때부터 놓치면 안 된다. 지금 대학생을 보면 자기 관심분야만 알고 우리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 도외시하는 경우가 많다. 적어도 언론인을 꿈꾸고 있다면 사회적 이슈를 놓쳐서는 안 된다. 그래야 비판력이나 판단력이 생길 것이다. 더불어 자신의 철학, 주관도 생겨날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뒷받침돼야 언론사 시험을 볼 수 있을 것이고 어떤 물음에도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교과서에 있는 것을 묻지 않는다. 어제 신문에 나왔던 중요한 이슈, 그런 것들이 나오지 책에서 나오지 않는다. 세상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언론사 시험 문제를 보여줬는데, 뜻도 모르는 학생들이 많았다. 신문을 들고 가서 뜻을 물어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해서는 언론인이 될 수 없다. 호기심을 가지고 잡다한 것들을 머리에 넣고 이슈를 따라가야 한다. 이슈를 따라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신문을 읽고 뉴스를 보는 것이다. 신문을 매일같이 다 볼 수는 없어도 제목을 보고 뜻을 아는 정도는 돼야 한다.

 대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언론인이 되려는 대학생이라면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 자기 관심분야에만 집중하지 말고 많은 것을 보고 듣고 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 기본적으로 되고 어학공부나 학과공부를 해야 한다. 비판력을 가진 사람이 됐으면 한다.

 계명대학교 교수, 우리문화재찾기운동본부 회장이 아닌 개인적인 목표가 있나?
 좀 더 바쁘고 좀 더 치열한 순간들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또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 세상이 좀 더 따뜻해지고 훈훈해지는 데 아주 작은 기여라도 하고 싶다. 이것이 목표고 소망이다.
계명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데, 교수로서 느끼는 생각이 있는가?
 학생들이 요즘 열심히 하는 것 같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것 같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치열함과 문제의식이 조금 부족해 보이는 것 같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과 같이 청년은 아픈 것이 또 다른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의무는 아니지만 누구나 겪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편한 상태로 20대를 보내는 것 보다 치열함과 간절함을 가지고 보내길 바란다. 지금 편안하고 부드러운 인생 보다는 아프고 뜨겁고 치열하고 간절하게 보내야지 나중에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 있다. 간절하고 치열하고 뜨거운 인생을 보내면 분명 길이 있을 것이다.
 나도 지금 그렇게 살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다. 아직 꿈도 있고 미련도 있는데, 20대의 후배들도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보내길 바란다.

 나에게 영남대학교란?
 
영남대학교는 어머니, 아버지 같은 존재다. 영원히 마르지 않는 에너지원이다. 그렇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고, 좋은 일, 나쁜 일, 어떤 일이 있어도 기둥이 되고 버팀목이 된다. 기댈 수 있는 언덕인 것 같다. 학부, 학창시절, 20대를 보낸 뜨거운 곳이었다.

 필자는 인터뷰를 마치고 박영석 동문과 가벼운 담소를 나눴다. 그는 오늘 아침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줬다. 인터뷰 장소를 섭외하기 위해 식당에 전화를 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아 그 옆에 위치한 편의점에 연락했다. 편의점 여직원은 그의 말을 듣고 직접 달려가서 식당이 영업 중인지 확인해 줬으며, 그것이 계속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함께 식당을 나와 편의점에 가서 여직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의 소망인 따뜻한 세상이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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