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라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라
  • 장보민 기자 최무진 수습기자
  • 승인 2015.06.01 17: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동기 동문(행정학과 72학번)은 우리 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해 현재 대구광역시 교육감직을 수행하고 있다. 영남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를 시작으로 꾸준히 교육자의 길을 걷고 있는 우동기 동문을 만나 그 삶의 이야기와 교육자의 꿈을 꾸고 있는 후배들에게 전하는 말을 들어보자.

 대학 시절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그런데 교육자로서의 길을 걷게 된 이유가 있는가?
 처음부터 교육자를 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원래 내 꿈은 기자였다. 하지만 대학 졸업 후 나이 제한에 걸려 기자를 할 수 없었다. 그러다 당시 교육과학기술부가 주최하는 전국 사회과학분야 학술발표대회에서 ‘환경행정의 당면과제와 개선방안’ 논문을 썼는데 우수상을 받았고 그 계기로 국토개발연구원에 공채로 들어갔다.
 연구원에 들어가 보니 연구 활동은 재밌는데 박사학위가 없다는 이유로 많은 차별을 받았다. 그래서 유학을 갔다 왔다. ‘모교에서 교육자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학위를 받고 국내에 들어와 보니 모교에서 행정학과 교수를 뽑아서, 교수로 오게 됐다.

 긴 시간을 교육자로서의 시간을 보냈는데, 교육자만의 매력이 있다면 무엇인가? 
 다른 교수에 비하면 긴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다. 교육자는 다른 직업과 달리 직업을 통해 인적가치를 창출한다. 인적가치 창출은 그만큼 교육활동을 통해 개인의 삶을 변화시키고, 더 나아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이다.

 교육자로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이 있었다면?
 대학에 있으며 교육활동, 연구활동, 학생들의 변화를 통해 보람을 느꼈다. 
 영남대학교 총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가장 큰 보람은 개교 60주년 기념 천마아트센터 건설, 향토생활관 건축, 로스쿨 유치 등이다. 그리고 대학에 남학생들이 입학하면 졸업까지 6~7년 정도가 걸리는데, 사회에 빠른 진출을 위해 3학기제를 도입했다. 또한 영남대학교에서 ‘위기관리 협상론’ 교과목을 개설했는데, 이는 전국 대학 중에 처음이다. 특히 영남대학교 로스쿨이 최근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어서 보람이 크다.

 교육자로 있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인가?
 2011년 학교폭력문제, 학생자살 문제로 인해 가장 힘들었다. 교육감의 직책이 타인의 삶을 바로잡아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을 때 가장 힘들다. 그래서 학생 자살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중·고등학생 뿐 아니라 대학생들도 자살 문제가 심각하다. 대학생의 경우 통계로 잡히지 않는 상황이 많아 파악이 어렵지만 대학생들도 정서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학생이 많다는 것을 영남대학교에 재직하면서 알게 됐다. 그래서 보건소에 정신과 의사를 상시적으로 배치했다. 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긍정적인 삶을 살게끔 해줘야 하고, 대학에서도 관심을 많이 가져야 한다. 

 교육자로 지낸 시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제자가 있다면?
 기억에 남는 제자가 5월 23일 결혼했다. 내가 속해 있던 연구소에 오래 있었고, 굉장히 힘들게 살았던 제자이다. 혼자 살아서 안타까웠는데, 결혼한다고 해서 굉장히 기쁘다. 이처럼 교육자는 사소한 부분에서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교육자로서의 신념이 있다면 무엇인가?
 인기 있는 교육감이라기보단 신뢰할 수 있는 교육감이 되는 것이다. 개인적인 신뢰, 정책의 신뢰다. 영남대학교 총장일 때도 인기있는 총장보단 신뢰받는 총장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총장 취임식을 하지 않았고, 대신에 퇴임식을 했다. 퇴임식을 하고 나갈 수 있는 총장이 되고 싶었다. 

 영남대학교 총장으로 재직 당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2005년 무용학과가 체육학전공(현대무용)과 국악전공(한국무용)으로 분리·통합되는 구조조정안으로 인해 7박 8일간 감금돼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간 적이 있다. 그때가 가장 힘들었다. 통합을 하려 했던 이유는 당시 무용학과 학생들이 교직 선택이 불가했는데, 음악대로 가게 되면 교직선택이 가능했다. 총장 입장에서는 학생들의 취업뿐 아니라 앞으로의 미래를 내다 봐야했다.

 교육감으로서 힘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힘든 부분은 교육이 다양한 이해관계와 얽혀있다는 것이다. 한 학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유치원부터 많은 영역을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체적으로 학교 수업이 어려운 학생, 학교를 중도에 그만둔 학생 등 다양한 학생들과 그 학부모들의 이해관계까지, 다양한 이해관계 중에서 최적의 정책을 모색해야 하는데, 이것이 어렵다. 

 교육감으로서 현재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제일 신경 쓰는 부분은 정규분포곡선으로 보면 양쪽의 꼬리 부분에 있는 학생들이다. 특수교육대상 자, 장애학생들, 학교생활 부적응학생들, 일반 교육으로 충족하지 못하는 영재들이 교육감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다. 그리고 정신적, 정서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애들이 많다. 대구에 학생이 한 해 1만 명씩 줄어들고 있지만 장애학생 절대수는 계속 늘고 있다. 장애학생은 특수교육학생이라 하는데 기존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더라도 낙오되지 않게 전체적으로 신경 쓰고 있다.

 교육감으로서 앞으로의 각오, 목표는 무엇인가?
 대구가 학생들의 정서건강이 상위권이고, 전체적으로 좋은 학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교육수도로 구축해 나갈 것이다. 현재 특허청에서 대한민국 교육수도 특허이장등록 특허를 받은 상태이다. 대구의 미래는 결국 교육에서 찾아야 한다.
 일자리도 마찬가지이다.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교육열이 가장 높다. 대구의 교육이 서울을 앞지른다면 많은 일자리가 대구로 몰려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교육 연관산업이 발전하면 많은 학생이 걱정하는 일자리도 창출될 것이다. 이게 대구로 봤을 땐 새로운 발전전략이 될 수 있다.

 교육감이 아닌 개인으로서의 목표가 있는가?
 개인의 목표는 ‘내가 공부하고 개발한 능력을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환원하는 것’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공공의 이익을 위해 힘쓴 만큼 개인의 행복을 위해 고민을 많이 할 것이다. 시골에서 학교에 다니다 보니 음악에 대한 교육을 못 받았다. 여유가 생기면 악기를 하나 다뤄보고 싶다. 그리고 중국어도 배워보고 싶다. 영어, 일본어는 유학하며 익혔는데, 중국어는 배울 기회가 없었다. 공직을 퇴직하면 악기 한 가지랑 중국어를 배우고 싶다.

 어떤 대학 시절을 보냈었나?
 
굉장히 바쁜 대학생활을 보냈다. 4년 대학 과정에서 1학년 2학기 때 군대를 다녀왔고, 2학년부터는 행정고시를 준비했었다. 그러다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두고 논문을 썼다. 대학생 때는 거창한 목표를 설정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개인의 경제적 이익이나 이해를 추구하는 직업보다는 공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직업에 관심이 많았다.  

 지금까지의 자신을 만들어준 원동력이 있다면?
 할아버지께서 굉장히 엄하게 키우셨다. 하루에 ‘천하 일등충효’를 신문지에 두 장씩 썼는데, 그걸 쓰지 않으면 학교에 가도 놀지를 못했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아무리 추운 날이어도 아침에 일어나 마당을 쓸고, 학교에 갔다 와 개똥을 줍고 그게 내 일상이었다. 저녁에는 저녁을 먹고 숙제를 하고 할아버지께서 주무실 때까지 다리를 주물러 드렸다. 할아버지의 그런 엄한 가정교육이 나에게 큰 원동력이 됐다.

 교육자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
 교육자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있어야 한다. 많은 학생이 사범대를 나오거나 교직을 이수해서 교사를 하고자 하는데, 안타까운 것은 직업의 안정성만 가지고 선택한다는 것이다. 물론 직업의 안정성이 중요하지만 교육자라는 것은 직업의 안정성으로만 버틸 수 있는 한가롭고 쉬운 직업이 아니다. 정말 어느 직업 못지않게 타인에 대한 이해와 헌신, 사랑이 필요하다. 그런 각오가 없다면 교직에 들어오더라도 굉장히 힘든 교직 생활을 하게 된다. 단순하게 ‘이 직업은 편할 것이다’, ‘정년이 보장된다’ 이런 생각만 가지고 선택할 안일한 직업이 아니다.

 모교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영남대학교에 다니면서 지방대학이라고 비관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영남대학교를 나와서 국토개발연구원을 다녔고, 장학금을 받고 유학도 다녀왔다. 영남대학교 총장도 했고, 대구광역시 교육감이 됐다. 그래서 긍정적인 사고로 적극적으로 행동하면 무슨 일이든 추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남대학교란 본인에게 있어 어떤 존재인가?
 떼려야 뗄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다. 영남대학교를 위해서라면 내 양심도 팔 수 있다고 생각한다.(웃음) 남다르기도 하고 영남대학교가 나에게 좋은 기회를 많이 줬다. 영남대학교가 아니었으면 난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