乙의 눈물을 닦아주는 甲을 바라며
乙의 눈물을 닦아주는 甲을 바라며
  • 문희영 기자, 장보민 기자, 주은성 기자
  • 승인 2015.03.16 1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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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의 횡포

 

 ‘갑, 을, 갑질’ 이란 단어가 언제부턴가 우리에게 익숙해졌다. 하루가 다르게 언론에서는 갑질에 대해 다루고, 을의 분노가 인터넷과 SNS를 달구고 있다. 사람들은 갑질에 분노하고 갑이 처벌받는 모습을 통쾌해 한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주변을 둘러보라. 자신은 누군가에게 갑질을 하고 있지는 않은 지, 을의 눈물을 외면하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갑질이란 갑을 관계에서 ‘갑’에게 어떤 행동을 뜻하는 접미사인 ‘질’을 붙여 만든 말로,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행위를 의미한다. 이처럼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악용해 을을 억압하는 갑들은 우리 주변에 늘 존재한다. 갑-을 관계라는 것은 사회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관계이다. 그런데 이러한 ‘갑질’은 왜 이렇게 이슈가 됐을까. ‘갑질’이 만연한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갑과 을은 상생할 수 있는지 알아본다.

사회에 만연한 ‘갑질’ 바이러스=최근 갑질 사건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이러한 논란이 이슈화된 배경에는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있다. ‘땅콩회항’으로 유명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기내에서 승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사건, 남양유업의 지역대리점 물건 강매사건, 백화점 모녀가 주차요원에게 폭언을 하고 무릎을 꿇게 해 논란이 된 사건 등을 등이 해당된다. 이런 논란에 대해서 백승대 교수(사회학과)는 “지금까지 이슈화되지 않았던 일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기 때문에 논란이 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굉장히 바람직하다”며 “다만 갑질이 성행하는 풍조에 대해서는 강자에서 약자에게로 흘러가는 횡포에 대한 사회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했다.

 백 교수의 말대로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SNS와 같은 소통매체의 발달이 ‘을의 고발’을 빠르게 확산시켜 주고, 파급력을 더해주고 있다. 실제 백화점 모녀 사건도 주차요원에게 폭언을 했다는 정황이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오면서 이슈화됐다. 위메프의 경우 수습사원 부당해고 사건 발생 후 SNS를 통해 논란이 불거졌다. 백 교수는 이에 대해 “실제로 사회적 힘이 부족한 을은 쉽게 폭로하거나 비난하기 어렵다. 그 역할을 SNS가 맡으면서 부당한 사건의 사회적 공론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이라고 했다.

 대학가라고 해서 갑질논란을 피해 갈 수 있을까. 최근 서울의 한 교수가 인턴 여학생을 대상으로 성추행한 사실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처럼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수가 벌인 추행, 부당해고 당한 시간강사, 청소노동자와 용역업체의 관계 등 대학가 또한 갑질 논란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갑질’을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백 교수는 세 가지 이유를 꼽았다. 첫 번째로 자기가 지배적 위치에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 두 번째는 자신의 이익을 확실히 확보하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우월적 위치에 서고 싶어서이다. 하지만 사회적 지위는 사회적 지위일 뿐 어떤 사람이 우월하다고 할 수 있는 지표가 될 수 없으며 애초에 더 ‘우월한’ 사람을 나누는 생각 자체가 문제가 된다. 사회적 지위가 높아 더 많은 권리를 가졌다면, 그 권리에는 윤리와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갑-을, 상생을 도모하라= 갑-을 관계는 사라질 수 없는 관계다. 그렇다면 우리는 갑과 을이 상생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백 교수는 “핵심은 상대를 ‘인격적 대상’으로 보는 것”이라고 전했다. 상대방을 나보다 ‘약하거나 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상대방에 대한 갑질이 시작된다. 갑-을 관계라고 생각하기보다, 한 명의 인격체라고 보면 배려하는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고 하지 않는 정신도 필요한 부분이다. 

 또 문제가 되는 부분은 갑질을 당한 사람이 갑의 위치에 섰을 때 다시 갑질을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최근 tvN 코미디빅리그 ‘갑과 을’에서도 이를 패러디해 인기를 끌기도 했다. 식당 사장(갑)이 에어컨 기사(을)를 불러 갑질을 하는데, 거기에 화가 난 에어컨 기사는 수리가 끝난 후 다시 그 식당에 손님(갑)으로 들어가 사장(을)에게 갑질을 하는 식이다. 물론 개그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보고 통쾌함을 느끼고 웃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도 이처럼 위치가 바뀌면 갑질을 하는 행동은 큰 문제가 된다. 백 교수는 이를 “이율배반적이고 언어도단적인 행동이며, 상대를 인격적으로 존중하지 못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실생활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한 번만 더 상대의 입장에서, 갑은 을의 입장을 한 번 더 헤아려주고, 자신이 을이었을 때를 기억한다면, 이 사회에서 갑과 을은 상생해 나갈 수 있을 것이며 언젠가 갑과 을이라는 말은 법률책에서만 찾아볼 날이 올 것이다.

 

乙의 눈물

 A 씨(20세)는 올해 3월, 대학에 입학했다. 입학 전만 해도 A 씨는 대학의 낭만적인 캠퍼스를 기대하며 꿈에 부풀어 있었지만, 입학과 동시에 그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입학식 날 A 씨의 손에 들린 것은 전공 책이나 시간표가 아닌 커다란 명찰이었다. 학과 선배들은 모든 신입생에게 명찰을 나눠주며 등교부터 하교까지 항상 차고 있어야 하며, 절대 잃어버리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다. 각자의 이름이 크게 적혀있고, 학과마다 색이 정해져 있다. 이제 선배들은 명찰의 색을 보고 자신이 속한 학과의 후배임을 알아보고, 후배들은 그 선배에게 90도로 인사하며 ‘안녕하십니까, 선배님’이라 외쳐야 한다. 첫 수업이 있는 날 신입생들은 오후 6시 학회실로 집합하라는 선배의 문자를 받았다. 신입생들이 집합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용모가 단정하지 못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자유로운 대학 캠퍼스를 꿈꿨던 A 씨는 이제 선배들의 눈살에 머리스타일도 옷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며, 커다란 명찰을 달고서 언제, 무슨 일로 선배들의 호출을 받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휴대전화 진동 소리가 무섭기만 하다.

 이는 실제 새내기가 겪은 일을 각색한 것이다. 이처럼 대학가에서도 갑질 논란이 문제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외에도 대학가에는 어떤 갑질들이 있을까?


 “갑질 전에, 당신들이 ‘을’이었던 시절을 생각해보길”=대학교 2학년이 된 B 씨는 용돈과 등록금 마련을 위해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갑질을 당한 적이 있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B 씨는 “사실 이야기를 하자면 끝도 없다”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무엇보다 B 씨는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면 손님이 소리를 지르면서 화를 내는 경우가 정말 많다고 했다. 그런 경우 일단 손님에게는 웃으면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뒤에서 우는 아르바이트생이 정말 많다며 뒷이야기를 털어놨다. 그뿐만 아니라 아르바이트생에게 교육이 제대로 안 돼 있다며 화를 내고, 이어 아르바이트생들이 달고 있는 이름표를 보면서 이름을 가르쳐 달라는 손님도 많다고 한다. B 씨는 그때 상황들을 상상하기도 싫다고 하지만 다시 그런 상황에 놓여도 웃으면서 죄송하다고 고개 숙여 사과할 것이라고 했다. 소위 말해 진상 손님의 갑질에 못 이겨 B 씨가 화를 낸다면, 추후에 사유서를 작성하는 등 뒷일이 두렵기 때문이다.

 B 씨는 “갑이 되기 전에 분명 을의 시절이 있었을 텐데, 갑질을 하기 전에 본인이 을이었을 때를 떠올려 보기를 바란다”며 갑들의 갑질에 일침을 가했다. 그리고 을에게는 “버티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언젠가 갑이 되는 순간이 있을 텐데, 을이었을 때를 생각하며 갑질하지 않는 갑이 되길 바란다”며 당부했다.


 말로만 “우리는 한 구성원이다”=우리 대학교 비정규직 교수인 C 씨는 학교와 학생을 위해 열심히 수업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대한 배신감을 느낀 적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이전에 C 씨가 시간강사로 수업하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C 씨가 수업하고 있던 중인데도 불구하고 수업과 전혀 관련 없는 학내 직원이 강의실밖의 창문을 통해 C 씨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교직원으로부터 수업권을 침해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수업 중인 강의실에 들어와서 돌아다니며 C 씨의 수업하는 모습과 수업 분위기를 감시했다. C 씨는 강의를 맡았고 강의를 맡은 순간부터 이는 어디까지나 강사의 권한인데 이러한 직원의 행위는 명백한 수업권의 침해라고 말했다. 

 여러 학교에서 시간강사로 활동했던 C 씨는 이 외에도 강의 시간 배정, 정규직 교수와의 차별 등 비정규직 교수로서 겪었던 또 다른 갑질에 대해 털어놨다. C 씨는 “ 학교는 늘 비정규직 교수도 학교의 구성원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는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며 “작은 배려가 이뤄지지 못해서 발생하는 갈등들이 서럽게 만든다”고 말했다.

 이처럼 대학가에도 ‘갑-을 관계’가 존재하고 갑들의 갑질이 이어지고있다. 세상에 영원한 갑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갑의 갑질에 을의 눈물은 마를 새가 없다. 을에게는 “지금 모습을 잊지 말라”고 갑에게는 “영원한 갑은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乙의 눈물  을닦아 주세요

 지금까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을’을 만나 봤다. 실제 경기자주연대는 경기도 내 대형할인점과 백화점 등에서 일하는 유통서비스 여성노동자 454명을 상대로 ‘감정노동 및 처우’에 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30%는 ‘개인적으로 참는다’고 답했고, 65%는 ‘주변 동료에게 하소연한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이런 ‘을’을 위한 치료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화를 다스리고, 나를 다스린다=대구대학교 이종한 교수(심리학과)는 “갑과 을의 관계에서 을은 심리적으로 부정적인 요인을 모두 갖추게 된다”며 “그 중 화병이 가장 심각하다”고 말했다. 미국 정신의학회 및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분노 증후군’으로 화병의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다.

 화병을 다스리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명상이다. 이는 동양의 오랜 수행방법으로 화병의 핵심 증상인 분노와 불안, 우울 등 심리증상의 조절에 도움을 준다. 원광대학교 강형원 교수(한방신경정신과)는 “명상훈련을 통해 억울한 내면을 관찰자의 시각으로 한걸음 떨어져서 자신을 바라보게 되면 내면의 힘과 여유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건강한 심신이 결국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횡포를 부리는 ‘갑’을 향해 “가진 것에 대해 너무 자부심 느끼지 말고 상대방에 대해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책으로 다스리는 乙의 마음=최근 땅콩회항 사건과 백화점 모녀사건 등 갑질 논란이 대두하면서 인간관계에 대한 책이 베스트셀러를 차지하고 있다. 그 중 개인 심리학의 창시자 ‘아들러’의 심리학을 다룬『미움 받을 용기』는 지난해 11월 출간 이후 각종 인터넷 서점에서 꾸준히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미움 받을 용기』는 기시미 이치로와 고가 후미타케의 공동 저서이다. 이들은 대인 관계 속에서 스트레스 받고 삶에 무력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향해 행복해지기 위한 용기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기대를 만족하게 하기 위해 살지 말라’고 말한다.

 그 외에도 교보문고 자기계발 베스트셀러 20위 순위(2월 넷째 주 기준)에는『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6위),『상처받을 용기』(9위),『잠자기 전 읽기만 해도 나쁜 기분이 사라지는 마음의 법칙 2』(10위),『 관계 수업』(12위),『욱하는 성질 죽이기』(14위),『보이지 않는 심리』(16위) 등 인간관계에 초점을 둔 책들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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