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적 풍경들에 대하여
나는 아주 좁은 골목으로 들어선다
자전거 바퀴를 갈아 끼우는 남자가 있고
녹슨 철문을 두드리는 아이의 그림자가 부풀어 오르는 곳
일렬로 널어 놓은 옷들에는 시멘트 냄새가 났다
이 징후들을 얼마나 오래 지나쳐야 노을의 표정을 지은
슬레이트 지붕을 마주칠 수 있을까
이불이 펄럭일 때마다 천천히 쏟아지는 어둠 따라
나는 그렇게 별의 길을 더듬어 보았다
고양이 한 마리가 반 쯤 부서진 벽돌 위를
서커스 하듯 넘어 다닌다
어쩌면 노을처럼 이 세상을 넘어가는 걸지도 몰라
돗자리에 앉아 남은 生을 흘려보내는 노인들 근처엔
소주병 몇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채 사방을 뒹굴고
골목 내부 모든 윤곽들은 점점 더 선명해진다
수천 년 동안 덧칠된 수채화처럼 두터운 색감을 가진 것들
어느 삶의 한 순간을 잘라보아도
담벼락처럼 배경 하나쯤은 품고 있겠지
아무 말 없이 팽팽해지는 빨래줄처럼
아무도 모르게 사라진다는 것
골목의 소란스런 침묵은 자꾸 나를 무디게 만든다
대체 무엇이 나의 전생 혹은 후생일까
고양이인가, 노인들인가, 혹은 저 빨랫줄인가
나비와 비닐 봉지의 펄럭임이 닮아 보일 때야
비로소 내 일생을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까
문득 나는 너무 많은 호칭들을 가지고 살아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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