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에 혼을 담아서
글씨에 혼을 담아서
  • 박상준 기자, 주은성 준기자
  • 승인 2014.12.04 2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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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서예가, 영묵 강병인 선생을 만나다

 작가라는 수식어 이외에도 서예가, 캘리그래퍼, 디자이너, 한국캘리그라피디자인협회 부회장 등 그를 지칭하는 말이 많다. 강병인 작가는 <미생> <정도전> <착한남자> <신의> <엄마가 뿔났다> 등의 인기 드라마의 타이틀, 우리가 흔히 마신‘참이슬’의 로고를 직접 썼다. 그의 손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은 글씨가 탄생한 것이다. 

 강병인 작가는 초등학교 때부터 붓을 잡았고, 현재의 캘리그라피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그가 쓴 글씨에는 자연과 인간, 그 단어의 의미가 모두 담겨있다. 캘리그라피라는 미개척지를 개척한 그는 지금 대한민국 캘리그래피 1인자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글씨 하나에 미쳐 위험한 도전을 시작한 강병인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붓을 잡는 순간, 운명이 되다

 - 서예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무엇인가요.
 “초등학교 6학년 선생님의 권유로 서예를 시작했고, 좋아하게 됐다. 일반적으로 좋아한 것이 아니라 운명적이었던 것 같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중학교 때 교과서를 통해 추사 김정희를 만나 막연히 좋아하던 서예에 대한 꿈을 가지게 됐다”

 - 그렇다면 캘리그라피를 시작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90년대 일본 여행을 갔는데, 일본은 순수서예뿐만 아니라 상업서예도 같이 발전하고 있었다. 일본은 길거리에 보면 광고나 상품에 서예가 활용됐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기존 활자를 이용하다보니 타 제품과 차별성이 없었다. 같은 서예문화인데 일본은 되고 우리나라는 안 될까 하는 생각에 도전하게 됐다.
 또한 서예와 디자인을 접목한 캘리그라피를 하나의 디자인 장르로도 발전시키고 싶었다. 디자인 계열에서는 한글이 단순해서 멋이 없다는 편견이 있었다. 이러한 편견도 깨고 싶어 캘리그라피를 시작하게 된 것 같다”

 - 스스로를‘영묵 강병인’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영묵은 무슨 의미인가요.
 “중학교 때 스스로 호를 하나 지었는데,‘영원히 먹과 함께 살겠다’는 뜻을 담아‘영묵’으로 정했다. 거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호는 나의 꿈과도 같고 나를 키워준 것이라 생각한다”

 - 캘리그래퍼라는 호칭 이외에도 강병인을 지칭하는 말이 많습니다. 불리고 싶은 호칭이 있나요.
 “‘서예가’로 명칭을 정하면 명료해지기는 하지만 정확한 표현이라 하기엔 애매한 부분이 있다.‘한글을 보다 한글답게 한 현대 서예가’로 불렸으면 좋겠다. 어떤 분들은‘글씨 예술가’라고 칭하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전자로 불렸으면 한다”

 ■미개척을 개척하다, 우리나라의 캘리그라피 길을 열다

 - 캘리그라피가 생소한 한국에서 성공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위험한 도전을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나 자신에 대한 변화였다. 디자이너로서,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는 오너로서 일을 해왔지만, 성과가 크지 않았다. 특히 IMF로 인해 거래하던 회사들이 부도가 났다. 나 역시 회사를 처분하면서 신용불량자가 됐다. 일을 다시 시작했지만 보람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면서 예전부터 준비해왔고, 언젠가는 해야겠다고 생각한 캘리그라피를 꺼내들었다. 일종의 마지막 도전이었다. 분명한 목표가 있었기에 도전 가능했던 일이라 생각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그 일을 즐기게 되면 결과가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디자이너로서 일을 할 때는 막연하게 성공을 위해 달렸고, 돈을 쫓아다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일을 시작하면서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즐기자’, ‘즐겨보자’라는 생각을 했다. 즐기다보면 돈도 생길 것이고, 어쩌면 명예도 따라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으로는 이 분야를 디자인 장르로 발전시키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글의 디자인적 가치를 캘리그라피로 보여주고 싶었다. 한글의 다양성, 조형성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다짐과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어려웠지만 생소한 캘리그라피에 도전할 수 있었다”

 - 일본여행을 하며 어떤 점을 배우셨나요.
 “글씨를 돈을 주고 사용해야 된다는 개념은 없었다. 그러나 일본은 이미 그러한 상업서예가 발전돼 있었고, 우리나라 역시 그런 사업이 있긴 했지만 소극적인 관계였다. 나는 적극적인 관계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기존의 활자가 정보만 나타내는 것이라면 캘리그라피는 다양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지리산이라면 웅장함이나 역사와 같은 것을, 참이슬이라면 소주가 가지고 있는 서민적인 것, 깨끗한 것을 글씨에 담아낼 수 있다”

 - 어렸을 때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것으로 압니다. 직업으로 미술을 하기에 많이 힘들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연습하고 공부했나요.
 “서예는 돈이 많이 들지는 않았고 초등학교 때 이후에는 독학으로 공부해 부담이 되지는 않았다. 서예전도 찾아다니고 고민도 많이 했다. 잘 쓰지는 못했지만 늘 붓을 가지고 다녔다. 마음이 괴로울 때나 슬플 때나 그 감정을 붓으로 표현했던 것 같다. 또 군대 보직이 기록병이어서 자연스럽게 글씨를 쓸 수 있었다. 새벽 근무를 나가면 근무 후에 30분정도 연습했다. 어찌 보면 힘든 와중에 서예가 나를 지켜준 것 같다. ‘하고 싶은 일은 노력하다보면 직업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캘리그라피 1인자, 끊임없이 생각하고 쓴다

 - 현재 한국의 캘리그래피 1인자라 할 수 있다. 다양한 드라마 타이틀, 소주 로고를 직접 작업하셨는데, 글씨를 어떻게 구상해서 그리나요.
 “소비자도 좋아해야하고, 광고주도 좋아해야한다. 그래서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한다. 예를 들어 최근 드라마 ‘미생’을 보면 사회초년생의 겪는 여러 이야기를 담아내는 드라마이다. 일종의 해석이 필요하고 드라마의 내용에 따라, 작가의 생각이 담긴 글씨가 나와야한다. 보는 사람들은 몇 번 그려서 나오리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수백, 수천번의 시도 후에 나오는 글씨이다. 광고주와 입장이 안 맞는다면 조율을 많이하는 편이다. 제품은 내가 생산하고 파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것은 하나가 있다. 바로 소비자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 가장 먼저 작업한 캘리그라피가 무엇인가요.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1999년도에 ‘多vision’이라는 일러스트 그룹 모임의 로고를 하나 그리게 됐다. ‘多’자에 새가 날아가는 모습을 그려 모임의 발전을 담았었다. 지금도 그 모임에 나가고 있다”

 - 캘리그래피 1인자라 불리게 된 작품이 있나요.
 “1인자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1인자라는 말은 있을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웃음). 혹 누가 나를 좋은 글씨를 쓰기위한 부단한 노력을 했고, 그 속에서 한글의 가치를 찾고 알리고 자 했다고 평가하곤 한다. 한글의 서예적 가치를 좀 더 끌어 올렸다고 봐 줬으면 좋겠다. 물론 이름 있는 제품을 썼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제품을 썼을 때 그 제품의 가치도 같이 올라간다. 그리고 그 제품을 만들고 파는 사람들은 소비자의 평가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들이 내겐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인 것 같다. 예를 들어 영화가 흥행하면서도 ‘저 제목은 누가 썼는지 참 좋다’라는 말이 캘리그라퍼에게 가장 좋은 말이라 생각한다”
 
 - 드라마 타이틀이나 로고를 제작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시나요.
 “상황에 따라 다르다. 광고주의 사정에 따라서 달라진다. 드라마 촬영은 시작해야하는데, 드라마 타이틀이 아직 쓰이지 않았을 경우 기한이 촉박해진다. 드라마 대본이 나가기 전에 드라마 타이틀이 완성돼야 배우들의 몰입도와 자세가 달라지고, 그 글씨와 배우들이 호흡해야할 수 있으므로 빠른 시일 내에 만들어야한다”

 - 이렇게 작업하신 글씨가 드라마 제목이나 상용화되었을 때 어떤 느낌이 드나요.
 “드라마 같은 경우에는 그 드라마가 잘 만들어져 시청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받았으면 한다.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쉬움과 기쁨이 교차한다. 하지만 이미 내 손을 떠나면 잘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작품을 내 놓고 난 후에 후회할 때도 있고, 부족하다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혼자 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작가의 생각이 많이 들어갈 수는 없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최근에 끝난 드라마 <정도전>이 기억에 남는다. 사람의 이름을 쓴다는 것은 어렵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대왕세종> 타이틀이다. 세종대왕은 업적이 너무나 다양하다. 캐릭터가 하나가 아니다. 대왕세종의 경우 세종대왕의 전체 삶을 다 들여다 봐야하는데 그것을 함축해서 글씨에 담아내는 것이 어려웠다. 정도전 같은 경우에는 조금 좁혀진다. 하나는 군주의 나라가 아니라 백성의 나라를 만드는 곧은 모습. 하나는 파란만장한 삶의 모습이 있었다. 그 두 가지를 글씨에 담아내야 했다. 앞의 것은 두께의 변화를 주지 않고 올곧음을 표현하고, 파란만장한 모습은 붓을 흘려 역동적인 모습을 표현했다. 다행히 시청자들과 드라마 제작자들의 반응이 좋았던 것 같다.”

 - 작품을 제작하면서 특별했던 에피소드가 있나요.
 “호남에 가면 전라남도 광주 지역의 ‘잎새주’가 있다. 가족과 함께 여수에 여름휴가를 갔었다. 그 당시‘참이슬’의 글씨를 내가 썼는데도 불구하고 지역 술을 먹고 싶어‘잎새주’를 마셨다. 정말 기분 좋게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며칠 뒤 평소 아는 디자이너가 연락 와서 술 글씨를 써달라고 부탁이 왔다. 그 술은‘잎새주’였다. 이때부터 잠깐 스치는 인연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매 순간 잘해야 되겠다고 깨달았다. 미리 공부가 다 되어있어 글씨를 쓰는데 도움이 됐다(웃음)”

 - 작업하시면서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요.
 “류성룡 선생은‘먼 것은 가까운 것이 쌓인 것이다’고 말했다. 훌륭한 사람들을 보면 성공한 사람들의 현재만을 보고 평가를 많이 하는데 그러면 안 된다. 그들은 성과를 이루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을 것이다. 사소한 것들 하나하나가 쌓여서 오늘의 결과를 만든 것이며,‘오늘’이란 하루아침에 있을 수 없다. 모든 분야를 아우를 때 자기 분야를 더 잘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 이러한 것들이 하나둘씩 쌓였을 때 외면으로의 표출이 가능하다”

 - 앞으로의 계획이 있나요.
 “이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렇고 한글의 가치를 서예로서 지킬것이며,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곧 지킨다는 말이 된다. 서예가나 캘리그래퍼에서 머물지 않고 다양한 분야를 통해 한글의 아름다움을 전달하고 싶다”

 - 캘리그라피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현재는 너무나 지나치게 사용되고 있다. 우리가 경계해야 될 것이 한 분야의 성취가 있으면 너도나도 달려들어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캘리그래퍼들이 해야 할 일은 좋은 글씨를 쓰기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이미 캘리그라피의 가치는 많이 보여줬다. 앞으로도 보여줄 것이다”

 ■대학생들이여, 도전하라! 미쳐라!

 - 위험한 도전 앞에 두려워하는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새로운 것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도전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새로운 것을 하고 싶다는 의지가 있다면, 다른 생활을 함께 하며 그 분야를 계속해서 공부해 나가는 것이 좋다. 당장 하고 싶은 분야만을 하는 것도 좋으나 급하게 마음먹지 마라. 정말 하고 싶다면 그 분야에 대해 고민하고 분석하고 실험 해봐라. 나 역시 그랬다. 디자이너를 하면서 캘리그래피에 대한 고민하고 공부했다. 만약 처음부터 한 분야에만 뛰어 들었다면 중간에 그만뒀을 것 같다.
 그리고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한 분야가 생긴다면, 세분화시켜야 한다. 분야를 세분화하면 기회가 많이 생긴다. 경험은 다양하게 하되 내가 평생 할 일은 좁혀나가야 한다. 세분화하면 틈새가 보이고 내가 잘하는 것이 보일 것이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결국은 좋아하면 잘할 수 있다. 자기 일을 사랑해야 성공할 확률이 높다. 내가 선택했으면 최선을 다하고 즐겨야 한다”

 - 마지막으로 대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어떤 분야든 간에 배움이라는 것은 중요하다. 배움에는 직접배움과 간접배움이 있다. 직접배우는 것도 좋지만 책을 통한 간접배움이 중요한 것 같다. 독서를 많이 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어떤 분야든 간에 내가 좋아하는 것에 미쳐봐라. 몰입이라는 것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게 할 수 있는 시발점, 혹은 원동력이 될 것이다. 반항자들이 세상을 새롭게 한다는 말이 있듯이. 대학생이면 미쳐봐라”

 두 시간의 긴 인터뷰가 끝났다. 그는 많고 까다로운 질문에도 차분하고 진지하게 그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한 번쯤 그의 말처럼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미쳐봤으면 한다. 그것이 새로운 도전이라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길 바란다. 우리는 대학생이기에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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