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연결고리”
“너와 나의 연결고리”
  • 이형선 편집국장
  • 승인 2014.12.04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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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숙한 멜로디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유행에 민감하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연결고리’라는 단어만 보고도 몇 마디의 가사를 읊조릴지 모른다. 이는 2014년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한 힙합 레이블의 노래 제목이다.

 하지만 올 한 해 동안 교내 구성원들 간의 ‘연결고리’역할을 해야 했던 나에게는 그 의미가 새삼 무겁게 다가온다. 많은 이들이 흥얼거리는 노래 가사에 불과한 가벼운 단어가 나로서는 지금까지 품고 있던 책임이자 무게처럼 느껴진다. 곧 그 무게를 내려놓아야 할 지금, 돌이켜보면 나와 우리는 천마 인들의 충실한 연결고리였는가.

 학내 언론이 죽어간다. 학보사가 죽어간다. 자조 섞인 탄식의 목소리를 학보사 활동을 하면서 그리고 편집국장의 자리에 있으면서 수도 없이 들어왔다. 단순히 사명감만을 위해 스스로에게 그리고 동기와 후배들에게 며칠 밤을 새우며 신문 발행을 위한 작업을 강요하는 것은 잔혹한 일이었다. 격주 월요일마다 발행된 신문을 보며 뿌듯함보다는 독자들이 얼마만큼의 손길을 내밀어 줄 것인가를 걱정했다.
걱정이란 필연적이게도 두려움으로 연결되는 것 같다. 독자들에게, 취재원이 곧 주 독자층이 되는 좁은 대학사회 내에서의 그 독자들에게 기자로서는 절대로 갖지 말아야 할 막연한 두려움이 마음 한편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본다. 더불어 대학신문으로서 ‘영남대학교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대변합니다’라는 사시(社是)를 떳떳이 내걸고 있었음에도, (부)주간 교수의 감독 아래, 총장의 명의로 발행되는 양날의 칼을 가진 상황 아래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수도 없었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혹자는 20세기를 폭력의 시대, 21세기를 소통의 시대로 규정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되돌아볼 때, 이는 지극히 타당한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캠퍼스에는 20세기를 지배하던 힘의 논리를 뛰어넘어 소통으로 대표되는 대화와 타협의 논리가 자리 잡았는가.

 ‘기자들이 기사를 마음대로 쓴다’며 취재를 거부하는 특정 부서의 팀장이나 납득할 수 없는 논리를 들이대며 언론사와의 교류를 끊겠다고 협박하는 일부 학생회의 모습을 보면 아직까지 우리 대학사회 내에서는 힘의 논리가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 듯하다. 그들의 행태는 학내 언론사와의 연결고리를 제 것이라도 되는 양 잡아 흔드는 언론사와 일반 학우들에 대한 횡포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은 사람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그것은 각자의 위치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돼 하나의 유기체로서 기능하는 대학사회에도 역시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다른 조직들과의 관계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언론사에게는 말할 필요도 없는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이 연결 선상 위에는 언론사, 학생회, 본부의 특정 부서뿐만 아니라 대학 내의 모든 구성원이 자리해 있다. 이 선을 끊는다는 것은 대학사회 내에서 소통의 통로를 차단하고 20세기 폭력의 시대를 답습하자는 것으로 보인다.

 정들었던 신문사를 떠나며 필자는 그 동안 학생 기자로서 품어왔던 책임과 무게를 내려놓는다. 곧 학사모를 던지며 캠퍼스를 떠날 날이 머지않았음에도, 나는 우리의 선배들이 그래 왔듯 평생 영남대학교와의 연결고리를 끊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 영대신문 역시 우리 안의 소리를 대변하는, 너와 나, 천마 인들의 훌륭한 연결고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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