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있는 이야기]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이유있는 이야기]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 여현정 대학부장
  • 승인 2014.12.04 2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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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덧 필자는 신문사에서 세 번째 겨울을 맞았다. 올해 겨울은 유난히 일찍, 차갑게 다가왔다. 가을을 느낄 새도 없이 옷깃을 여미게 해버렸다. ‘겨울’은 신문사에 있어 상당히 의미 있는 계절이다. 필자가 신문사의 문을 처음 두드리게 된 것도, 그리고 그 문을 나가게 되는 것도 어쩌면 ‘겨울’때문일까.

 3년의 신문사를 계절에 비유하자면, 그 또한 ‘겨울’이다. 고됨과 힘듦이 유난히 길게 느껴지는 까닭일까. 하지만 겨울 속에서 따뜻함은 여름의 따뜻함보다 그 온도에서 나오는 열기가 훨씬 강하다. 필자는 그 겨울 속에서 따뜻함과 열기를 느꼈던 것 같다. 3년의 겨울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 따뜻함을 잊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신문사에서 기자 활동을 하는 동안 기자로서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만남은 하고 싶은 것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마냥 제자리에서 서성거리기만 했던 내게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있던 겨울은 혹독한 싸움이기도 했다. 그동안 17번의 신문 발행에 있어 많은 기사를 썼고, 잠자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은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는 시간이어야 했다. 기사 마감을 하는 동안 밤새기는 일쑤였고, 하루 이틀 밤새우는 것은 예삿일이 됐다. 그러다 보니 신문사를 나설 때 이미 깜깜해진 하늘은 익숙한 풍경이었다. 주변 지인들은 그렇게 힘들게 왜 하느냐고 물었다. 그럴 때마다 웃으며 넘겼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겨울에 대해 오기를 부렸는지도 모르겠다. 추운 것을 제일 싫어하는 내게 겨울은 혹독했다. 하지만 3년의 겨울을 버티고 나면, 나는 훨씬 성장해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3년의 겨울을 버틴 나는 무엇을 못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버티기란 쉽지 않았다. 겨울의 풍파는 어쩌면 당연했다. 신문사 내부에서 구성원 간의 관계가 삐걱거리기도 했고, 주간 교수, 부주간 교수와 기사를 놓고 논쟁을 하기도 했다. 외압 또한 존재했다. 기사에 대해 부당한 대우를 받기도 했고, 눈물이 날 만큼 억울한 일도 많았다. 이해되지 않는 일들도 많았으며, 일정 부분의 사실이 확인되었음에도 기사로 옮기지 못한 회한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를 겪으면서 나는, 그리고 우리는 더욱 단단하고 성숙해졌다. 

 나는 마지막 겨울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조금씩 했던 것 같다. ‘마지막’이란 생각을 어느 순간부터 말이다. 하지만 이제 그 마지막이 지금 이 순간으로 성큼 다가왔다. 몇 개월의 준비를 해왔음에도 항상 마지막은 익숙지 않다. 거의 매일 지금의 이곳에 왔고 3년을 함께 했기에, 몇 개월의 이별 준비는 모자란 시간일 수도 있겠다. 

 얼마 전 나는 천마지성강연회 준비로 한 출판사 관계자와 이메일로 긴 대화를 몇 번 나눴다. 그러다 한번은 ‘신문사 식구들’이라는 표현을 나도 모르게 썼나 보다. 이후 그 말이 참 다정해 보여서 좋았다는 회신을 받았다. 그때 나는 항상 진심으로 대하고 있었던 것을 그리고 어느새 나도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 속했던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때문에 마지막이 그리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했다. 

 나는 이제 새로운 봄을 맞을 준비를 한다. 겨울에 익숙한 나로서는 낯선 준비다. 하지만 내심 작은 기대도 해본다. 그리고 어쩌면 잔인한 말일지는 모르겠지만, 신문사는 계속 겨울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내게 그랬듯이 말이다. 하지만 명심해야 한다. 겨울에도 분명 따스한 햇볕은 언제나 존재하며, 뿌리 깊은 나무는 어떤 강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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