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 말하는 시대 ‘패션’
청춘이 말하는 시대 ‘패션’
  • 이수진 준기자, 추송이 준기자
  • 승인 2014.11.19 0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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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대학생들에게 ‘옷’은 그저 신체보호의 수단이 아니다. 과거에는 반항의 수단으로 사용됐으며, 현재는 ‘나’를 나타내기 위한 개성 표현의 도구가 됐다. 어린 시절, 엄마가 사주는 ‘시장’표 룩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의 교복을 거쳐 우리는 자유롭게 개성을 뽐낼 수 있게 됐다. 우리 대학교 학생들의 개성 넘치는 패션을 살펴보고, 최근 대학생들의 관심사인 ‘구제’에 대해서도 알아보기 위해 서울과 대구를 누볐다.

 패션은 나를 나타내는 또 다른 수단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옷을 보면 사고 싶어 하고, 자신을 꾸미고 싶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촌스러워 보이진 않을까 걱정하곤 한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달라져 온 패션유행과 현재 우리 대학생들은 어떻게 패션을 공유하고 있는지 알아봤다. 

 ◆20대가 이끌어 온 패션, 1960년부터 2010년까지=우리는 언제부터 패션을 즐기고 누리게 된 것일까? 의류패션학과 김정숙 교수는 “1960년대 학생들이 아르바이트에 뛰어들게 되면서 경제력을 갖게 됐고 본인의 패션에 대한 결정권을 갖게 되면서 주체적으로 패션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산업혁명 이전, 계층을 나타내는데 충실한 역할을 하던 의복이 1960년대 들어 처음으로 20대들의 개성을 표출하는 수단이 된 것이다.

 1960년대는 한국 패션의 다양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으며, 대중문화가 패션에 큰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시대다. 1967년, 가수 윤복희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등장해 사회, 문화 전반에 큰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미니스커트가 늘 새롭고 신선한 것을 선호하는 젊은이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준 것이다.
1970년대에는 섬유 산업의 발전으로 의복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저렴한 기성복 시대가 시작됐다. 또한 당시 여성들은 미니스커트와 더불어 화려한 패턴의 원피스나 여성스러운 선을 강조한 블라우스 등을 즐겨 입었다.

 1980년대에는 청바지에 통기타를 들고 노래한 포크 가수와 배우들의 영향으로 20대들은 너도나도 청바지를 입었다.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어깨에 패드가 들어간 잠바나 재킷에, ‘스노우 진’이라는 색이 불균등하게 워싱 된 청바지가 인기를 끌었다. 발목 폭이 좁은 8부 바지인 ‘디스코바지’에 ‘핀컬파마’는 당시 ‘옷 좀 입는다’는 이들의 대표패션이었다. 멋쟁이라면 형형색색의 디스코바지에 어깨 패드가 들어간 재킷을 입고 디스코 장에서 손가락을 이리저리 찔렀다는 후문이다.

 1990년대에는 가수 한 팀으로 패션을 정의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혜성처럼 나타난 ‘서태지와 아이들’은 헐렁한 복장과 벙거지 모자에 마스크까지, 당시로선 생소했던 미국의 힙합 문화를 전국적으로 확산시켰다. 또한 떡볶이 코트라 불리는 ‘더플코트’는 학생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복고풍이 선풍적인 유행을 끌고 있다. 지난해에는 1960년대의 패션이 유행했으며, 올해는 1970년대의 옷이 유행하고 있다. 앞으로도 복고열풍은 식지 않을 전망이다. 김 교수는 “유행은 돌고 돌지만, 예전의 옷이 지금의 옷과 완전히 같다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1970년대 청바지는 젊은이들의 사회에 대한 반항의 상징물이었지만 2014년 청바지는 패션 자체로 해석되는 것처럼 그 안에 담겨있는 내용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패션 공유 전문 플랫폼 등장해=최근 서로의 패션을 공유하는 패션 소셜 미디어 사이트가 늘어가는 추세다. SNS에 자신의 데일리 룩이나 스트릿 사진 등을 타인과 공유하기 시작하면서 패션만을 전문적으로 공유하는 플랫폼도 만들어졌다. 대표적인 패션 공유 사이트와 애플리케이션은 ‘스타일쉐어(StyleShare)’, ‘캠스콘(CAMSCON: Campus Style Icon의 약자)’등이 있다. ‘스타일쉐어’는 사용자들이 사진을 통해 자신이 일상에서 입는 옷과 패션 아이템을 게시하며, 작성자와 사용자가 댓글을 통해 사진 속의 옷이나 액세서리 등의 정보를 묻고 답할 수 있다.

 ‘캠스콘’은 전국에 있는 대학별로 캠토그래퍼를 선발해 전 세계 대학생들의 패션을 공유하는 사이트이다. 비싼 브랜드의 옷을 캠퍼스 패션으로 제안하는 기성 잡지에 대한 반항을 기반으로, 있는 그대로의 캠퍼스 패션을 보여준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캠토그래퍼로 활동 중인 서서린 씨(언론정보2)는 “캠스콘의 활동이 나의 장래희망인 에디터가 하는 일과 흡사하다고 생각해 활동하게 됐다”고 말했다. 대학마다 선발된 캠토그래퍼들은 캠퍼스의 패션룩을 촬영해 공유함으로써 대학생들이 직접 이끌어나가는 소셜 플랫폼으로 자리 잡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캠토그래퍼: 캠퍼스 포토그래퍼(Campus Photographer)의 줄임말로 대학생들이 직접 대학생의 패션 룩을 촬영하고 인터뷰 등의 활동을 한다.

 구제시장에서 보물을 찾다

자신만의 개성을 찾기 위해 백화점이나 옷 가게가 아닌 구제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최근 한 TV의 프로그램에 방영돼 화제가 된 서울의 동묘 벼룩시장과 대구의 교동시장을 기자가 직접 방문해 구제만의 매력을 찾아봤다. 또한 구제 옷을 즐겨 입는 학생들에게 구제 옷을 요령 있게 구매하는 비결에 대해 물어봤다.

 ◆서울vs.대구, 구제시장 탐방=동관왕묘(東關王廟)의 이름을 따서 ‘동묘’라고 불리는 이 구제시장은 실제로 돌담 밑에 많은 상인들이 장사를 하고 있었다. 옷뿐만 아니라 헌 책과 옛날 음반, 심지어 카메라까지 각양각색의 물건들이 판매되고 있었다. ‘노인들의 홍대’라 불리던 동묘시장은 구제를 찾은 대학생들과 상인들의 목소리로 활기가 넘쳤다. 돌담 밑에 단 돈 ‘1000원’이라고 대충 매직으로 끄적인 골판지 옆에서 사람들은 옷을 집어 몸에 대보면서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지 꼼꼼히 살펴보고 있었다. 동묘 벼룩시장에서 만난 장연서 씨(21세)는 “부담이 없는 가격이 구제의 가장 큰 매력이다”며 “백화점에서 구매하는 옷 한 벌 가격에 구제시장에서는 여러 벌을 살 수 있다”고 구제를 찾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한편 대구 교동시장의 구제골목은 동묘 벼룩시장처럼 노점상이 없다. 특히 교동시장의 ‘양키 골목’은 미군부대의 영향으로 지어진 이름이다. 그래서 군복, 군화, 침낭 등 군대와 관련된 제품을 판매하는 곳이 많다. 서울 동묘시장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마음에 드는 옷을 보며 고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교동시장 구제 골목에서 만난 김민주 씨(21세)는 “새 것 보다는 손때를 탄 옷이 멋스러워 구제를 찾는다”며 “구제만의 옛 느낌이 나는 것이 매력적이다”고 말했다. 

 ◆보물 찾는 숨은 노하우=구제시장을 찾는 이들에게 구제 옷을 살 때의 비결에 대해 물었다. 현재 패션 디자인을 전공 중인 김지언 씨(21세)는 “자신의 신체 사이즈는 알고 있어야 한다. 특히 인터넷으로 구제 옷을 구매할 때, 치수 측정을 통해 대략적인 사이즈를 알고 나서 구매를 한다”고 했다. 우리 대학교에서도 구제 옷을 즐겨 입는 학생을 찾을 수 있었다. 정해진 씨(정치외교1)는 “구제매장을 처음 방문한다면 매장 직원에게 조언을 구하라”고 했다. 그는 매장 직원에게서 몰랐던 의류브랜드에 대한 정보나 옷을 고르고 입는 노하우에 대해 배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 외에도 구제는 환불이 되지 않기 때문에 옷을 사기 전에 여러 사항들을 잘 따져봐야 한다. 옷의 오염 상태, 즉 목이나 팔의 소매가 얼마나 닳았는지, 구멍이 난 곳은 없는지, 단추가 떨어진 곳은 없는지 살펴본다. 옷의 상태를 살펴봤다면, 자신의 옷장을 떠올려 가지고 있는 옷과 어울리는지 따져본다. 이들의 비결을 통해 자신만의 보물을 잘 찾을 수 있길 바란다. 앞으로 우리 대학교에서 더 많은 ‘멋쟁이’들을 볼 날이 머지않을 것 같다. 

 ※동관왕묘(東關王廟): 중국 촉나라의 장수 관우를 모신 사당으로,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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