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의 라오스
14일의 라오스
  • 여현정 기자
  • 승인 2014.09.01 21: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라오스. 생소한 나라였다.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라오스로 떠났다. 
사실 해외 자원봉사를 지원하는 나라의 폭이 넓지는 않았다. 캄보디아, 필리핀, 라오스. 그중 가장 생소하면서도,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뜻밖의 나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많은 것을 주고 오리라 마음먹고 떠난 라오스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왔다. 어쩌면 처음부터 많은 것을 주겠다던 봉사자의 마음이 잘못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1 

설레는 나라 라오스

 

 라오스는 설레는 나라였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이자, 처음으로 가본 해외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떠나기 전, 라오스를 이미 경험한 사람들로부터 라오스는 좋은 나라이며 아마 앞으로 많이 기억나는 2주가 될 거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라오스에 대한 기대는 커져만 갔고, 아이들을 만날 생각에 들떠 있었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라오스로 떠나기 2주 전부터 우리 팀은 봉사 활동에 대한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했다. ‘함께라오’라는 이름으로 구성된 19명의 팀원들은 다시 3개의 팀으로 나눠 교육봉사 준비를 했다. 교육팀, 레크리에이션팀, 체육팀으로 나뉜 3팀은 각각의 교육 프로그램들을 팀별로 꾸리고, 때로는 함께 모여 프로그램들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현지 담당자와 휴대폰 메신저를 통해 간간이 궁금한 사항을 물어보기도 하고, 아이들 교육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생각했던 상황과 라오스에서 직접 겪은 상황은 달랐다!) 또한 라오어를 사용하는 라오스는 영어 등의 외국어를 잘 쓰지 않기 때문에 라오어를 공부하기도 했다. 영어와도 많이 다르고, 한국어와는 전혀 다른 라오어는 말이 특이해 입에 잘 외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공부한 간단한 회화와 라오스에 가서 직접 배운 말들을 조합하면 웬만한 의사소통은 될 정도였다)
 이렇게 준비를 하면 할수록 기대는 점차 커졌고, 우리는 지난 7월 6일 드디어 라오스행 비행기를 타고 한국을 떠났다. 

 

 

 

 

#2

 너는 내게 어여쁜 
눈을 맞춰 주었다

 라오스로 가는 여정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지난 7월 6일 아침 7시 50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10시 40분 비행기를 타고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Vientiane)으로 향했다. 총 5시간의 비행은 우리를 지치게 했다. 우리가 봉사하게 된 곳은 비엔티안에서 약 1시간가량 떨어진 나녹쿰 마을이었다. 우리가 봉사하는 동안 묵게 된 숙소는 나녹쿰 마을의 게스트하우스였다. 게스트하우스에서의 생활에서 우리는 라오스를 느낄 수 있었다. 게스트하우스는 놀라웠다. 문을 열고 나오면 마당이었고, 야외에서 밥을 먹어야 했다. 아침에는 6시만 되면 옆집의 닭이 울어 놀라서 깨기도 했으며, 한국과는 다른 신기한 화장실도 경험했다. 달라진 환경에 어떻게 적응할지 처음에는 걱정도 됐으나, 이는 신기하게도 불과 이틀 만에 적응할 수 있었다. 
 라오스에 도착한 다음 날, 우리는 아침에 나녹쿰 초등학교로 향했다. 하지만 살이 타들어 갈 듯한, 한국보다 훨씬 강한 더위와 강렬한 햇볕은 모두를 지치게 했다. 또한 초등학교는 학교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규모가 작고, 교실도 몇 개 없었다. 또한 교실에는 책상과 의자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이곳에서 어떻게 수업을 하는지 의문도 들었다. 
 우리가 가장 먼저 하게 된 봉사 활동은 운동장 잡초 뽑기였다. 관리가 되지 않은 운동장은 잡초라고 보기 힘든 풀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제초기마저 고장이 난 상황인지라 우리는 장갑을 끼고 손으로 잡초를 뽑았다. 이렇게 잡초를 뽑고 있으니, 학교에 놀러 온 아이들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첫 만남이었다. 아이들은 환한 웃음으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같이 잡초를 뽑는 모습이 고마웠고, 한편으로 낯선 사람들에게 서슴없이 다가와 같이 어울리는 모습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사람과의 첫 만남에서 누군가를 경계하고 탐색하고 혼자만의 벽을 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끔 해주었다. 맑고 큰 눈으로 눈을 맞춰주며 웃어주는 아이들에게 나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짓고 있었고, 손을 잡고 말을 걸고 있었다. 라오스 말이 능숙하지도 않고 발음도 정확하지 않지만 온몸을 함께 사용해가며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나이는 몇 살이냐’, ‘집은 어디냐’를 물었다. 또 함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놀이도 해보았다. 아이들은 우리에게 순수한 웃음으로 보답했다.


#3 

우리의 땀과 노력이 
그들에게 많은 힘이 되도록

 봉사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뉘었다. 노력봉사와 교육봉사. 2주 동안 오전에는 노력봉사를, 오후에는 교육봉사를 했다. 라오스는 아침부터 강렬한 햇볕으로 뜨거워졌는데 우리는 가장 더운 시간에 봉사를 했다. 
 잡초가 무성하고, 축구 골대조차 없는 운동장을 바꾸기 시작했다. 우선, 뜨거운 태양 아래 쭈그려 앉아 깊게 뿌리를 내린 잡초를 뽑는 일은 생각보다 여간 쉽지 않았다. 하지만 맨손으로 가시까지 돋친 풀을 뽑는 아이들을 보며 우리는 열심히 뽑았다. 더운 날씨에 땀도 나고 짜증도 났다. 모두들 많이 지쳐갔다. 하지만 잡초 사이에 핀 작은 꽃을 손에 쥐여주며 웃는 아이의 모습에 작은 배려를 느꼈고, 지친 기색 하나 내지 않고 묵묵히 일하는 팀원들의 모습을 보고 힘들다는 내색을 할 수가 없었다.
 운동장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다음에는 작은 초등학교 건물 옆 더 작은 유치원 건물 외벽과 내벽에 도색 작업을 시작했다. 내부에 붙어 있는 종이들을 다 떼어 내고 지저분한 것들을 정리했다. 외벽과 내벽을 페인트로 칠했는데, 대부분 처음 해보는 일이라 힘들기도 했다. 각자 역할을 나누어 부분 부분 꼼꼼히 칠했고, 아이들이 사용할 공간을 예쁜 색으로 꾸몄다. 아이들이 더 깨끗하고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교실 안을 정리하고 벽을 칠하면서, 열악한 환경에 다시 한 번 놀랐고 좀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교육열을 생각하니, 영어로 인사하는 법보다 서로를 배려하는 법을 먼저 배우는 라오스 아이들이 한편으로 부럽기도 했다. 맨발로 흙바닥을 밟으며 뛰어다니고 꽃반지를 만들며 예쁘다 하는 라오스 아이들의 순수함에 누가 더 좋은 신발을 신었고 더 예쁜 옷을 입었는지 따지는 우리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을 배웠고, 힘들지만 묵묵히 일하는 인내를 배웠다. 또한 평소 한국에서의 생활이 얼마나 편했던 가를 깨닫게 되었다. 우리의 노력이 모여 아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노력봉사 시간은 ‘나’보다는 ‘너’를, 그리고 ‘우리’를 생각하게 해준 시간이었다. 

①부채를 만들기위해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아이들. 교육과 의사소통을 도와주는 김진수 목사 ②라오스 해외장원봉사 '함께라오'팀. 총 19명의 학생으로 구성되어 14일동안 봉사를 함께했다. ③'함께라오'팀이 축구 골대를 만들기위해 나무를 자르고 있다. ④체육팀이 아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쳐주고 있다.

#4 

짜이쪼쪼! (집중하세요) 

해땀커이! (따라 해 봐요)

 라오스를 가기 전 가장 많은 시간을 소요했던 건 교육봉사를 준비였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줘야 할지, 어떻게 프로그램을 짜고 세부 교육내용은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다. 가장 먼저 우리가 고민한 것은 어떻게 교육 팀을 꾸려야 할 것인가였다. 고민 끝에 활동적인 교육을 하는‘체육팀’, 언어와 예절 등의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팀’, 그리고 창의적인 교육을 하게 될 ‘레크리에이션팀’으로 나눴다. 레크리에이션팀은 또 두 팀으로 나누어 라오스에서는 하기 힘들고 아이들이 가장 좋아할 것 같은 여러 재료를 통한 만들기 활동을 위주로 팀별 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가 나녹쿰 초등학교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여기에서 공부를 한다고?’였다. 책상과 의자들은 제대로 구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나마 있는 책상과 의자들은 나무로 만들어졌고, 아주 오래된 것들이었다. 크기도 제각각이었고 울퉁불퉁해서 균형을 잡고 앉아있는 아이들이 오히려 신기했다. 먼지가 가득했고 그 더운 나라에 선풍기 하나 없었다. 매년 여름 덥다 덥다 하며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으면 살지 못할 것 같았던 한국에서의 나를 반성하게 하는 풍경들이었다. 그리고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공부하는 교실에 불을 켤 수가 없는 것이었다. 전구, 전등, 스위치는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햇빛으로 공부를 했고, 날씨가 좋지 않고 흐린 날에는 글자 하나를 보기위해 눈을 가까이에 들이대야 했다. 생각보다 열악한 환경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라오스 아이들과 선생님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자연스러웠다. 
 교육봉사를 하며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집중하세요”라는 뜻의 “짜이쪼쪼”와 “따라 해 봐요”라는 뜻의 “해땀커이”였다. 장난기 많은 아이들은 우리가 편해지는 순간부터 장난꾸러기들로 변했고 가끔 우리를 힘들게 했다. 하지만 우리는 주입식 교육이 아닌 ‘함께 즐기기’ 교육이 목표였던만큼 아이들과 함께 즐기면서 교육봉사에 임했다. 
 체육팀은 축구, 피구, 페트병 볼링 등을 가르쳤는데,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았던 것은 태권도였다. 태권도를 가르치는 날에는 반 전체가 아이들의 기합소리로 가득 찼다. 많은 활동을 기획했지만, 막상 라오스에 가니 비가 자주 오는 탓에 운동장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을 불가피하게 못 한 경우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교실 안에서 할 수 있는 운동으로 대체하거나 때로는 다른 팀들을 도우며 유동적으로 교육을 했다. 
 교육팀은 크게 한국어교육, 영어교육, 위생교육, 예절교육으로 나눠 교육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한국어교육이었다. 아이들이 즐기면서 한국어를 배울 수 있도록 한국어 동요 ‘귀요미 송’과 ‘올챙이 송’을 준비했다. 율동과 함께하는 노래였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처음 이 동요를 가르쳐 주었을 때는 잘 따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이 싫어하는 것 같고 잘못 준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수업이 끝난 후 교실 한쪽 편에서 아이들이 꼬물꼬물 율동을 하는 모습을 보고 웃음이 났다. 단지 쑥스러웠던 것이었다. 매 수업 시간 같이 노래를 하고 그날의 프로그램을 했는데, 어느덧 쉬는 시간에도 집에 갈 때도 흥얼거리는 유행가가 되었다. 꼬물거리며 율동과 노래를 하는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러워 보였다. 
 가장 고생을 한 것은 레크리에이션을 준비했던 팀이 아니었나 싶다. 처음에는 레크리에이션 A팀과 B팀으로 나누어 각자 다른 프로그램으로 꾸렸다. 하지만 막상 초등학교에 가니 반을 3개로 나눠야 했고, 이는 우리가 처음 생각했던 것과 달라 소위 말하는 ‘멘붕(멘탈붕괴)’을 경험했다. 하지만 ‘당황하지 않고~’ 한 팀이 되어 다양한 프로그램을 함께했다. 만들기 프로그램이 많았는데, 아이들이 잘 만들고 있는지 한 명 한 명 도와주고 살펴주는 등 신경을 많이 써야 했다. 하지만 그만큼 아이들이 가장 즐거워했고 좋아해 줬다. 
 

# 5

다시 만날 그날까지, 
안녕

 라오스는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봉사로 시작한 활동이지만 준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받았다. 우리가 가 있는 동안 라오스는 우기였는데, 하루에 한 번 더위가 모두 씻겨 나갈듯한 소나기가 쏟아졌다. 그 덕분인지 비가 오면 힘들었던 모든 것들이 씻겨나가는 기분이었다. 더운 날씨도 점차 익숙해졌고 힘든 환경도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한국에 온 지금은 그곳이 많이 그립다. 14일 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한편으로 많은 것을 비웠다. 몸은 힘들었을지 몰라도 마음은 평온해졌다. 
 라오스에 갔다 온 후 나에게 한 선배는 “얼굴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그래서 웃으며 “살이 쪘나 봐요”라고 했더니, “라오스에서 좋은 기운을 받아 왔다 보다”라고 말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라오스에서 가장 놀란 점은 마을 사람들이 우리에 대한 경계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우리는 외부인이었지만 마치 평소에 원래 보던 사람들 마냥 대해줬다. 지나가다 마주치면 합장을 하며 “사바이디(안녕하세요)”라고 웃으면서 먼저 인사를 해주었다. 평온한 나라였다. 길가에 가축들도 끈으로 매어놓는 일이 없었다. 자유롭게 풀어놓곤 했다. 길을 가다 귀여운 고양이를 만져보면 다른 고양이도 데려와 보여주었고, 귀여운 아기에게 인사를 하면 데려 나와서 인사도 시켜주었다. 시장에 가서 물건값을 깎으려 할 때 안 된다 해도 “하오 악 푸악 짜오(사랑해요)”한 마디면 마음이 약해지는 게 라오스 사람들이었다. 
 2주, 14일, 10일 하고도 4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같이의 가치’를 배웠다. 느림의 미학을 배웠고 평온한 웃음을 배웠다. 다시는 하지 못할 경험들에 감사하며, 또 언젠가 다시 한 번 갈 날을 기다리며 ‘폽 깐 마이(다시 만나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