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있는 이야기] 아다지오; 천천히
[이유있는 이야기] 아다지오; 천천히
  • 여현정 대학부장
  • 승인 2014.09.01 2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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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름~ 빠름~ 빠름~” 

 아마 위 문구를 본 순간 한 통신사 광고가 떠올랐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조금 우습게도 이 광고 카피 하나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격을 이해할 수 있다. ‘빨리빨리 문화’, ‘냄비근성’등으로 칭해지는 우리 민족 특유의 습성(?)은 삶 곳곳에서 살펴볼 수 있다. 자판기에 동전을 넣고 어떤 커피를 마실지 버튼을 누른 후, 커피가 나오는 순간을 참지 못하고 곧바로 입구로 손이 향하는 당신을 발견한 적이 있을 것이다. 혹은 동영상 재생 중 50%에 멈춰 더 이상 진행될 기미가 안 보이는 버퍼링 때문에 속이 타들어 가는 경험을 해보진 않았나?

 사실 필자는 이렇게 ‘빠름’을 추구하는 우리의 습관이 좋다고 생각했다. 일의 효율이 올라가고, 빠른 일 처리만큼 개운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유일하게 ‘최빈국’에서 ‘공여국’이 된 대한민국의 배경에는 빠른 성장을 추구하는 국민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두 달 전쯤부터 바뀌게 되었다. 필자는 지난 7월, ‘라오스(Laos)’라는 생소한 나라로 해외 자원봉사를 가게 됐다. 라오스에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재촉’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누구도 “빨리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들의 표정에는 우리에게서 잘 찾아볼 수 없는 여유가 묻어났다.
필자는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Vientiane)에서 한 시간가량 떨어진 나녹쿰 마을에서 봉사를 했는데, 봉사가 끝난 시간에 마을 어귀를 자주 둘러보곤 했다. 그곳은 차도, 오토바이도 잘 찾아볼 수 없는 시골 마을이었다. 

 그러나 라오스에 있으면서 사람들에게 바쁜 모습이나, 혹은 급한 표정으로 뛰어가는 모습을 한 번도 발견한 적이 없었다. 비엔티안으로 갈 때도 그랬다. 우리는 트럭으로 이동했는데, 비엔티안에 도착하는 동안 경적을 울리거나, 과속하는 차를 한 대도 보지 못했다. 차선도 제대로 구비되지 않았고, 좁고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가 대부분이었는데도 말이다. 이는 아마 서두르지 않는 라오스 사람들의 자세와 타인을 먼저 생각하고 기다리는 배려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봉사를 하는 2주 동안 필자는 많은 것을 배웠다. 라오스의 사람들과 아이들은 나에게 느림의 미학을 생각하게끔 했다. 그 덕분인지 라오스에 있는 동안은 바쁘게 무엇인가를 꼭 해야 하고 빨리 해치워야 하는 것이 아닌 나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그동안 빨리, 바쁘게 해야 했던 일들에 밀려 잊어버렸던 중요한 것들을 상기시켰다.

 우리는 언제부터 빠른 것을 최우선으로 치는 민족이 되었을까. 라오스 사람들과 아이들을 보며 과연‘빠른 것이 최선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앞에 닥친 일들을‘빨리빨리’처리하기 위해‘대충대충’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것을 지워왔던 것은 아닐까. 불과 6개월 전 시리도록 차가운 바닷속에서 식어간 아이들을 애도하던 당신을 잊은 것은 아닌지. 혹시 생일에 선물을 받고 좋아하던 당신의 모습을 잊은 것은 아닌지. 지나가던 아이에게 순수하게 지어주던 미소를 잊은 것은 아닌지. 지하철에서 힘들어 보이는 어르신에게 선뜻 자리를 내어주던 배려를 잊은 것은 아닌지. 혹시 지난날의 당신을 잊은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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